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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 Jun 19. 2024

‘사랑해 보고 잃는 것이 차라리 낫다’

1995년 2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전선에 나섰다. 

1995년은 부지런히 입사서류 내고 돌아다녔다. 직장에 정착하려고 분주했던 1995년이 후딱 지나가 버렸다.


1996년 나는 서울 명동에 있는 회사에 다녔다. 그 때 우연히 동갑내기 동료에게 2년 전 첫사랑에게 편지를 보내고 못 나갔다고 말했다. 동료는 지금이라도 다시 편지를 보내보라고 했다. 나는 용기를 내 또다시 S의 집으로 편지를 보냈다. 그 때는 삐삐가 있었다. 나는 편지에 내 삐삐 번호를 적었다.   


며칠 후, 삐삐가 울렸다. 전화해보니 S였다. 중학교 졸업 9년 만에 드디어 S를 만났다. 2년 전 수유역 그 커피숍에서. 1990년대, 그때는 레스토랑과 커피숍에 흡연이 허용되었고 붉은 조명등을 써서 실내가 은근히 어두운 것이 유행이었다. 붉은 조명등 아래서 차 한 잔을 두고 S와 마주 앉았다. 근 10년이 흘러서였을까. 내 기억 속에 있는, 중학생 때의 ‘미소년’ 이미지는 없었다. 

우린 스물다섯 살이었다. 그를 불러낸 내가 먼저 물었다.


“혹시 쌍문중학교 다닐 때, 저라는 사람이 있었던 거 알았나요?”

“본 것 같기도 하네요.”

“제가 늦었지만 연락한 건, 졸업 후에도 S씨가 계속 생각이 나더라고요.”

“제 생각이요? 왜요?”


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건조하게 말했다. 난 속으로 말했다.


‘그쪽이 계속 생각난다는 것은 너를 좋아한다는 얘기잖아, 이 멍청아!’


그와의 대화는 겉돌았다. 그는 갑자기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한다. 당시엔 ‘영화방(DVD방)’이 유행이었다. 

‘이게 무슨 꿍꿍이속이야?’ 하면서 마지못해 따라 나섰다. 좁고 컴컴한 방에서 그가 고른 영화를 틀었다. 한창 인기 있던 여배우 산드라블럭이 나오는 ‘당신이 잠든 사이에’였다. 나는 영화를 보는 건지, 그의 숨소리를 듣는 건지 마음이 공중에 떴다. 내 눈은 영화에 고정돼 있었지만, 머리는 다른 세상에 가 있었다. 그는 영화에 집중하며 재미있게 보았다. 어느 장면에서 그는 “어디 저 여자 같은, 귀여운 여자 없나?”고 한마디 한다.


‘지금 나 들으라고 하는 얘기니? 산드라블럭 보다 귀여운 여자, 지금 네 옆에 있잖아, 이 멍청아!’


어둡고 좁은 공간, 긴 소파에 다리를 뻗고 나란히 누워서 영화를 봤는데, 그는 정말 털끝조차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거기서 뭘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영화가 끝나고 늦은 밤이 되서야 그곳을 나왔다. 어른이 되어 9년 만에 만난 첫사랑. 하지만 그를 향해 ‘멍청아!’를 이연타로 날린 후, 나는 내 첫사랑이 이뤄지지 않음을 직감했다.  


첫눈, 첫사랑, 첫인상, 첫 만남. 어떤 단어 앞에 ‘첫’이 붙으면 의미가 특별해진다. 

‘첫’이 붙으면서 그 단어는 누구에게나 설렘을 준다. 모든 것의 시작 ‘처음’이 주는 의미는 생각보다 강렬하다. 그렇기 때문에 첫사랑은 더욱 잊기 힘든가 보다. 특히 이성간의 사랑은 회오리바람처럼 소용돌이치는 감정의 스펙트럼을 겪는다. 처음 경험한 사랑은 세월이 흘러도 강렬한 이미지로 각인되는 것이라.


며칠 뒤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른 아침 수유역에서 만났다. 길거리에서 뭔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기억이 안 난다. 그는 지방에 내려간다면서 강남고속터미널까지 택시를 타고 간다고 한다. 나는 명동에 있는 회사에 전철을 타고 간다고 했는데, 그는 가는 길에 내리라고 한다. 할 수 없이 그와 택시 뒷자리에 앉았다. 가면서도, 둘 다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수유역 뒤쪽에는 모텔이 많다. 아침부터 젊은 남녀가 택시를 탔으니, 택시 기사가 뭐라고 생각했을까. 나는 그에게 “안녕히 가세요”라는 말만 하고, 명동에 내렸다. 그것이 S와 마지막이었다. 우리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서울 도봉구 쌍문동 옆에 수유동이 있다. 그런데 수유동은 예전부터 ‘수유리’라고 불렸다. S는 수유동에 살았다. 어느 대화에서 그가 “수유리라고 얘기하면 집값이 떨어진다면서요?”라며 썰렁한 농담을 던졌던 기억이 난다. 만약 내가 그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섰다면 어땠을까.


돌아보면 그저 인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니 첫사랑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슬퍼하지 말자. 인연이 아니라면, 첫사랑은 그저 스쳐 지나는 바람처럼 기억 속에만 남겨두는 것이 좋겠다.  


중학 3학년 때, 밤을 꼬박 샐 정도로 일본 소설 ‘오싱’을 읽으면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여주인공 오싱은 나와 비슷한 16살에 첫사랑을 경험한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애틋한 감정을 품지만, 전쟁의 상처가 할퀴고 간 혼란스런 시대에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주인공 오싱에 감정이입 되어 무척 안타까워했다. 오싱은 첫사랑을 잊어버리고, 20대 성숙한 여인이 되어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한다. ‘오싱’이라는 한 여성의 파란만장한 인생은, 16살이었던 내게 살아갈 용기와 지혜를 주었다.   

 

몇 년 전 장영희 교수님의 책에서 ‘사우보’라는 시를 읽었다. 이 시에는 ‘한 번도 사랑해 본 적 없는 것 보다 사랑해 보고 잃는 것이 차라리 낫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사랑해 보고, 잃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시의 마지막 구절에 심장이 내려앉았다. 어떤 시련이나 고통 한 점 없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사랑이 있을까. 사랑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생명수만큼 귀한 가치다. 하지만 그런 만큼 사랑에는 일정량의 상실감과 아픔이 수반된다.    


사랑은 참으로 어렵다. 사랑만큼 사람의 감정을 요동치게 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삭막한 우리 인생에 가뭄의 단비처럼 소중하고 숭고한 가치를 지닌 것이 ‘사랑’이다. 


어느 외국 소설에는 첫사랑에 빠진 감정을 ‘까무러칠 정도의 황홀함’이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사랑, 특히 처음 경험한 사랑은 그토록 강렬한 것이다. 


내 사춘기와 청춘의 시작점에 S가 있었다. 그때는 한쪽만 바라보는 사랑에 마음이 쓰라렸다. 감수성 예민했던 시기에 ‘닿지 않는 사랑’으로 남몰래 아파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니, 이 모든 것을 경험하게 해준 S에게 고맙다. 덕분에 처음으로 사랑의 감정을 경험했고 때로는 아팠지만 ‘오싱’처럼 단단해지고 성숙한 여성이 되었다고 믿는다.


‘사랑해 본적이 없는 것보다 잃은 것이 차라리 낫다.’


돈, 재산, 외모, 인기, 명예, 권력 등 어떤 부귀영화를 누리더라도 이것들은 ‘사랑’ 하나만 못 하다. 그 어떤 것도 ‘사랑’을 뛰어 넘는 것은 없다. 살아가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사랑’보다 깊고 고귀한 가치는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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