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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 Jun 18. 2024

1등으로 TV 들여 놓은 집

서울 쌍문초등학교 2학년 교실은 70여 명의 아이들로 바글거린다. 

학기 초 어느 날, 선생님이 호구조사를 한다.


“자녀가 한 명인 사람 손들어 보세요.”

가뭄에 콩 나듯, 몇 명이 손을 든다. 외동딸, 외동아들, 내가 가장 부러워한 애들이다. 

“형제가 두 명인 사람?”

많은 아이들이 손을 든다. 

“세 명?” 

손 든 애들이 많다. 

“네 명?” 

숫자가 점점 줄어든다. 

“다섯 명?” 

손 든 아이가 거의 없다.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묻는다. 

“여섯 명?”


내가 눈치를 살피며 무거운 팔을 들어올린다. ‘대단하다’ 듯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쏠린다. 내 얼굴이 빨개진다. 왠지 모를 창피함에 슬그머니 팔을 내린다.


‘애들아, 여섯 명이나 낳은 것은 내가 아니고 우리 엄마란다.’


그 때는 왜 그렇게 형제 많은 것이 싫었는지 모르겠다. ‘어려운 형편에 아이들까지 줄줄이 낳았냐?’고 세상 사람들이 뭐라 하는 듯 했다. 그런 소리를 들을 까봐, 겁이 났던 걸까. 학교에서 호구조사를 할 때면 나는 늘 꼴찌로 손을 들었다. 그 때마다 죄지은 사람마냥 심장이 철렁했다. 쌍문초등학교 2학년과 3학년 담임선생님이 같았다. 할아버지뻘의 류갑정 선생님이다. 그 때는 형제가 많다는 것이 창피했다. 어린 마음에 가난하다는 것도, 식구가 많은 것도 감추고 싶었나 보다.  


어느 날은 학교에서 세간살이를 조사했다.

“집에 냉장고 있는 사람?”    

“집에 세탁기 있는 사람?” 

“집에 텔레비전 있는 사람?”

“집에 전화기 있는 사람?” 


1980년대 초, 당시의 생활상과 가정 형편을 조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 때는 냉장고가 흔치 않았다. 1년 내내 먹는 김장 김치는 뒤뜰에 묻은 장독대에 있고 된장, 고추장도 항아리에 있었다. 부엌에서는 석유곤로를 썼고 부엌 뒤쪽 수돗가, 커다란 고무다라에 빨래감이 가득했다. 엄마는 여기서 손빨래를 했다. 내가 중학생 때 부엌에 가스레인지가 있었다. 어느 날, 부침개 부쳐 먹는다고 프라이팬에 기름 두르고 뒤집다가 뜨거운 기름이 내 얼굴에 왕창 튄 적이 있다. 얼굴이 화끈거려 찬물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그 후 내 얼굴엔 새끼 손톱만한, 검게 탄 자국이 군데군데 생겼다. 화상 입은 내 얼굴을 보고 화들짝 놀라서, 이런 ‘점박이 얼굴’로 살아야하나 심장이 쿵 내려앉기도 했다.   


선생님이 “집에 텔레비전 있는 사람?” 할 때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텔레비전’ 있는 집은, 내가 유일했다. 이번엔 아이들이 나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본다. 나는 전화기에도 손을 번쩍 들었다. 다이얼을 돌려서 쓰는 검은색 전화기가 우리 집에 있었다. 텔레비전, 전화기 모두 내가 취학 전인, 1970년대 말쯤에 우리 집에 들어왔다. 나는 손을 두 번이나 들고, 아주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전화기도 그렇고 당시에 TV가 있는 집은 매우 드물었다. 쌍문동 동네가 그렇듯 우리 집도 형편이 넉넉지 않았는데, 어쩐 일인지 TV와 전화기를 일찌감치 들여놓았다. 특히 우리 동네에서 가장 먼저 TV를 들여 놓여 동네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우리 집에 TV가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저녁 무렵이면 동네 꼬맹이들이 우리 집 마루에 줄지어 앉아 만화영화를 보기도 했다. 


그 때 우리 집 안방에 있던 ‘옛날 텔레비전’은 다리가 4개 있는, 네모난 나무박스 안에 있었다. 그래서 TV를 보려면 양쪽으로 문을 밀어서 열었다. 어린 시절엔 안방 아랫목에 부모님이, 가운데 남동생, 그리고 나와 넷째 언니가 잤다. 내 잠자리는 방 끝, 텔레비전 바로 옆이라, 자다가 내 팔과 다리가 나무다리에 부딪치곤 했다. 

그러다 7살에 나는 안방의 이 구석 잠자리를 벗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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