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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 Jun 18. 2024

지금 아이들은 '변소'를 알까?

아주 어릴 때, 우연히 언니의 친구 집에 따라간 적이 있다. 그런데 어린 내 눈에 비친 그 집은, 우리 집보다도 좁고 초라해 보였다. 취학 전이었는데 그 때 이미 나는 ‘가난’이라는 단어를 알았나 보다. 어느 날, 그 언니가 우리 집에 놀러왔는데 문득 그 언니 집이 생각났다. 나는 “이 언니네 가난해”라고 말을 뱉었다. 

그 언니 얼굴과 내 언니들 얼굴이 빨개졌다. 철없는 어린 막내가 한 말이라, 누구도 뭐라 하진 않았지만 순간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어린 아이의 시선에서 집이 초라하면, 그걸 ‘가난’이라고 느꼈나 보다. 


내가 살았던 쌍문 1동 301번지 집에는 지금의 ‘욕실’, 즉 화장실이 없었다. 

그 시절 그 동네 집들이 대부분이 그랬다. 아주 드물게 있던 2층 양옥집, 잘 사는 집에나 있었던 욕실이 나는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또 그때 가장 부러워했던 친구가 외동딸로, 자기 방을 갖고 있는 친구였다. 아니, 외동딸까지 바라지 않았다. 그저 ‘내 방’ 하나만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쌍문동 골목에는 동네사람들이 공동으로 이용하던 ‘변소’가 있었다. 집에 화장실이 없는, 우리 집도 변소를 이용했다. 내가 성인이 된 후, 쌍문동의 시절을 회상할 때 ‘가장 끔찍한 기억은 그 변소’라고 종종 엄마에게 말하곤 했다. 어떻게 그 어릴 때부터 변소를 이용했는지. 그 때는 그게 가난인지 뭔지도 모르고,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했던 곳이었다. 


어떤 때는 동네 사람들이 줄 서있고, 어떤 때는 남자 동창이 그 앞에 서 있고, 나는 보자마자 집으로 뛰어가고. 변소에 들어갈 때는 신문지를 돌돌 말아 코를 틀어막고, 저녁에는 무서워 언니를 데리고 가고. 돌아보면 어떻게 변소를 다니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나의 성장기에, 가장 우울하고 좋은 기억이라곤 하나도 없는 곳이 변소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이사를 가기 전 까지 변소를 이용했는데, 돌아보면 어떻게 병 하나 안 걸리고 살았는지 신기하다.    


내가 성장기에 ‘변소’를 이용한 것, 내 방이 없던 것, 나만의 책상이 없던 것, 새 옷과 신발은 입학식 등 특별한 날에만 갖는 것, 그리고 잘 씻지 않아 목에 때가 껴있고, 겨울이면 손등이 불어 터진 것 등 자라면서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어렴풋이 내 환경과 처지를 느꼈다. 그러면서 일찌감치 ‘가난’을 알게 된 것이 아닐까 한다. 

쌍문동 옆에 수유동이 있다. 

쌍문 1동과 수유2동 사이를 흐르는 우이천. 이 우이천 옆으로 쌍문초등학교와 쌍문중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학교와 인접한 수유동에 사는 애들은 비교적 잘 살았다. 저학년 때 선생님이 “쌍문동에 사는 사람 손들어봐?” 한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쌍문동은 좀 더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구나’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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