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햇살이 집 안으로 깊숙이 들어오던
한낮이었어요.
아이들은 하고 싶었던 놀이를 다 마치고
거실에는 오랜만에 느슨한 공기가 흐르고 있었어요.
그 순간 이런 말이 목까지 올라왔어요.
“자, 이제 독서 타임이야. 책 읽자.”
하지만 저는 말하지 않았어요.
대신 책장 앞에 서서 읽고 싶은 책을 한참 고르다
창가에 앉아 조용히 책을 펼쳤어요.
아이들은 그 사이
뒹굴뒹굴 굴러다니며 귤을 까먹고,
초코파이를 나눠 먹고,
서로 웃으며 놀고 있었어요.
그렇게 20분쯤 지났을까요.
한 명씩, 한 명씩
각자 책을 들고 와
내 주변에 앉기 시작했어요.
아무도 “이제 책 읽자”라고 말하지 않았는데
어느새 독서 시간이 만들어졌어요.
책을 읽다 말고
“엄마, 이건 무슨 뜻이야?” 하고 묻고,
나는 짧게 대답해 주고,
아이들은 다시 책으로 돌아가요.
그리고 또 묻고, 또 읽고, 또 웃어요.
억지로 말로 만들지 않은 시간이라
더 조용했고, 그래서 더 귀했어요.
이 장면이 낯설지 않은 이유가 있어요.
요가를 할 때도 비슷하거든요.
“같이 요가하자”고 말하지 않아도
내가 먼저 매트를 펴고 움직이면
아이들은 어느새 옆에 와 있어요.
내 자세를 흉내 내다가 웃고,
내 다리 아래로 기어들어오고,
그러다 또 자기 식으로 움직이기도 해요.
가르치지 않아도,
설명하지 않아도,
엄마의 몸이 먼저 보여주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하루를 마치고 아빠가 퇴근할 때도 그래요.
“아빠 왔어!”라고 소리치기 전에
내가 먼저 현관으로 나가
반갑게 맞이하면
아이들은 앞다퉈 달려가 안겨요.
엄마의 태도가 먼저 흐르면
집 안의 분위기도 그 결을 따라 흐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 저는
아이들에게 뭔가를 시키기보다
내가 먼저 보여주려고 합니다.
말보다 몸으로,
지시보다 분위기로,
설명보다 행동으로.
그랬더니
아이들을 움직이게 한 건
내 말이 아니라
내 행동였다는 걸 알게 됐어요.
아까 “독서 타임 하자”는 말을 했다면
아마 생기지 않았을 시간이었을 거예요.
엄마가 먼저 보여주면
아이들은 각자의 속도로,
그러나 분명하게 따라온다는 걸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오늘도
조금 덜 말하고,
조금 더 먼저 움직여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