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보내며, 가슴에 가장 깊게 남은 말
올 한 해를 돌아보면
내 마음에 가장 깊게 남아 있는 말이 하나 있어요.
“엄마로 사는 게 이렇게 좋을 줄이야.”
거창한 사건이 있어서 나온 말은 아니에요.
큰 성취를 이뤄서도 아니고,
삶이 갑자기 쉬워져서도 아니에요.
그저 하루하루를 꾹꾹 씹어 먹듯 살아내다 보니
어느 순간 문득, 이 말이 떠올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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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은 전업주부를 보며
“남편이 돈 벌어다 주니 팔자 좋다”고 말할 수 있고,
전업주부는 또
자기 이름으로 불릴 일이 줄어들며
자존감이 흔들리는 순간을 겪기도 해요.
아들 맘은 아들 맘대로의 고충이 있고,
딸 맘은 딸 맘대로의 또 다른 걱정이 있어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어떤 맘’이기 이전에
각자 다른 환경에 놓인 사람이에요.
중요한 건
주어진 상황이 어떤가가 아니라,
그 상황 안에서 내가 진짜 행복을 느끼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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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어요.
내가 20대 초반이었을 때,
우리 엄마는 40대 중반이었어요.
그때 엄마가 이렇게 말했어요.
“30대도 너무 좋았고,
40대도 너무 좋고,
50대는 더 기대돼.”
지금 생각해도 참 긍정적인 말이에요.
그 말 한마디가
내 마음 어딘가에 오래 남아 있었고,
나는 그 말을 품은 채 40대가 되었어요.
그래서인지
저는 세상을 바라보는 기본 방향이
늘 ‘그래도 괜찮다’ 쪽으로 기울어 있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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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는 늘 예쁘고 화려한 사람이었어요.
유행의 중심에 있는 옷을 입었고,
친구들은 “너희 엄마는 진짜 멋지다”고 말하곤 했어요.
그런 엄마에게
60대에 암이라는 시간이 찾아왔어요.
환경적인 것이나 운명 같은 건
어찌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물론 그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았어요.
힘들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그런데도 엄마는
이 시간마저도 자신의 방식으로 건너가고 있어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어요.
나에게도 언젠가
이런 일이 생길 수 있겠구나.
그땐 무너지겠죠.
완전히 주저앉는 순간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어느 정도는,
다시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그러기 위해 필요한 건
미리 단단히 길러둔 긍정적인 마음의 근력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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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는 요즘
행복을 멀리서 찾지 않아요.
폭죽처럼 터지는 기쁨이 아니라,
숟가락으로 뜬 따뜻한 국물 같은 만족감.
천천히, 은근히
몸 안으로 퍼지는 감정에 더 귀를 기울여요.
엄마로서 완벽해졌다는 뜻은 아니에요.
불안한 날도 여전히 있고,
후회하는 순간도 있어요.
하지만 분명해진 건 하나예요.
내가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때,
아이들은 말하지 않아도 그 모습을 보고 배운다는 것.
엄마가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이미 아이들에게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라는 걸
조금씩 알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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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육아의 길은 한참 멀었지만,
올해를 보내며 나는
이 말만은 진심으로 할 수 있어요.
“엄마로 사는 게 이렇게 좋을 줄이야.”
이건
완벽한 엄마가 되었다는 고백이 아니라,
불완전한 하루들이 쌓여
나를 조금 더 편안한 사람으로 만들어준 과정에 대한 이야기예요.
큰 변화가 없어도,
오늘 하루가 나쁘지 않았다는 느낌.
그 사소한 만족감이 쌓여
삶이 꽤 괜찮아졌다는 깨달음.
올해, 내 가슴에 가장 깊게 새겨진 말은
바로 이거예요.
“엄마로 사는 게, 생각보다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