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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지인 Jul 30. 2024

카페 하기 좋은 나이, 마흔

소중한 게 많은 나이

최근 젊은 카페 사장님들의 브이로그나 쇼츠를 많이 보게 됩니다.

카페에서 정신없이 음료제조, 신메뉴 연구하기도 바쁠 텐데, 그렇게 감각적인 영상편집과 업로드까지, 도대체 언제 하는 걸까요. 대단하기만 합니다.


내가 십 년만 젊었어도...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마흔에 카페창업을 한 저는,

드디어 내가 손꼽아 마지않았던 꿈을 이룬다거나

드디어 천직을 찾았다거나 하는 그런 느낌보다는,

결혼, 육아로 인한 오랜 경력단절과 재취업이 불가능한 저의 처지를 십분 고려한 차선책으로 다분히 현실적인 결정이었습니다.


카페는 너무나 익숙한 공간이었고,

진입장벽이 매우 낮았으며,

둘째까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어느 정도 여건이 갖춰지자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큰 요행을 바라지 않고

대박을 꿈꾸지 않고,

일부터 열까지 스스로 몸으로 부딪혀 시작했으니,

남보다 시행착오도 적을 것이고,

남보다 창업비용도 적게 들였으니

망해봤자, 인생에 실패는 없다 오직 경험뿐

그렇게 스스로 정신승리 혹은 자기 합리화하며 창업을 했던 것이죠.  


아묻따 카페창업의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분명 당시 코로나가 아니었어도,

굉장히 고군분투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은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르는 사람은

자기가 모른다라는 인식조차 없기 마련입니다.

오히려 알게 되고 깨닫게 되면,

그때서야 자신이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스스로 무모한 줄도 모른 채

무모하게 시작했지만,

그래서 고생도 적잖이 했지만,

완벽하게 준비해서 차린 카페조차도


망하는 시대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인생의 목표가 카페가 아니기 때문에

아주 간절하지 않아서

힘을 뺏기 때문에

가늘고, 길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당연히 장사가 안돼서 폐업을 하겠지만

장사가 잘되도 폐업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침부터 밤늦도록 음료를 제조하다,

밤새 디저트를 만들다가,

결국 몸과 맘이 고장나버리는 순간이 오기 때문입니다.


일하는 시간도 내 인생인데

하루종일 카페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오로지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을 것입니다.


억누르려 하면 오히려 증폭될 뿐이고,

괜찮은 척하면서 곪아갈 뿐입니다.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타인에게 친절할 수 있을까요.



전 마흔에 시작했기에,

도통 카페에 내 전부를 갈아 넣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결코 의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마흔 이후, 급속도록 방전되는 체력의 한계, 집중력 부족, 호르몬 변화 등

노화의 시계를 거스를 수 없습니다.


제가 주로 하는 등산과 요가는 다이어트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살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다 아내이고, 엄마인 나의 위치 때문에

온전히 카페에만 매여있을 수 없습니다.

사춘기 딸과의 신경전,

브롤에 정신이 팔린 아들에게 게임그만하란 잔소리.

가족들과 함께하는 저녁,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는 오지 않을 소중한 지금을 부여잡고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흔에 시작했기에

카페가 전부이지 않았고,

카페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카페만큼, 중요한 것이 많아서

slow but steady,

주변도 둘러보며 천천히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 여유가 삶의 에너지가 되고, 다정함이 되고

친절함이 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태도가 꼬마손님에게도, 아줌마손님, 할머니 할아버지 손님에게도,

단지 손님으로서가 아닌, 타인에 대한 이해로

이어진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마흔나이에

BS(베이킹소다), BP(베이킹파우더)를 헷갈려하며, 베이킹을 시작했고,

머신으로 라테의 밀크폼을 내는 것도 첨엔

그저 엉망징창이었습니다.


당시 코로나 집합금지로 인해 바리스타학원도 제과제빵 학원도 다닐 수 없었고,

수많은 유투버들을 스승 삼아 그렇게 실력을 쌓아나아 갔지만, 실수는 잦고 배움은 더디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10개월 이상을 준비의 시간으로 보냈습니다.

한두 달 연습해서 카페를 차리는 분들도 많다고 들었는데, 엄청난 습득력인지, 자신감인지, 오만함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찌저찌 드디어 카페를 개업했던 그 날의

성취감과 희열이 바로 어제처럼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그렇게 개업을 하고 나서,

결승선에 도달한 줄 알았으나,

실은 출발선이란 걸 깨닫기까지

오래걸리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끊임없이 달리는 중이지만,

그렇게 마침내 결승선에 도착했을 때,

아마 그것 또한 결승선이 아닌

또 다른 출발선이겠지요.




어느덧 장마가 지나가고,

찌는 듯한 폭염의 한여름입니다.


바로 딱 1년 전 여름엔

온 나라 탕후루가게가 폭염에도 인기폭발이었지만, 지금은 또 그 많던 탕후루 가게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여전히 이곳에서 카페를 하고 있습니다.


휴가철이라 인적도 드물고

이전보다 한가한 시간이 늘어났지만


이 여름 또한 곧 지나가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올 것임을 압니다.




국지성 호우가 반복되는 습한 날씨가 이어지며,

이곳이 동북아인가 동남아인가

굳이 동남아를 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여름 안에서


매출은 지난달 같지 않아서 속이 쓰리지만,

손님을 기다리는 나 자신도

멋진 카페의 풍경처럼 좋아 보입니다.


마흔에 시작해서 참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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