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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란 Mar 28. 2024

나는 무지개 같은 사람이고 싶다

친구 하기 딱 좋은 나이

나는 무지개 같은 사람으로 살고 싶다. 무지개는 희망과 행운의 의미를 담고 있다. 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찾아주는 일을 의미 있게 생각하고 좋아한다. 누구나 삶의 어느 한순간에 고난이 닥쳐온다. 그럴 때 빨리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 절망 속에서도 의미를 찾고 삶이 그들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절망을 딛고 일어나서 향해야 할 곳이 분명 있음을 알려주고 싶다.


1년 전 지역보건의료센터에서 일하며 있었던 일화 중 치매예방관리를 위해 어르신댁에 방문한 일이 있었다. 나는 치매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전 대상자의 현재 상태를 알아보는 사전 평가를 위해 산언저리에 자리 잡은 어르신 댁에 방문하게 되었다. 센터의 작은 관용 차를 몰고 오솔길을 따라 굽이굽이 산길을 올라가는 일은 운전경력 20년 이상인 나를 무색게 하듯 등줄기에 땀이 맺히기 충분했다. 산 중턱에 다 달았을 땐 내비게이션도 제 기능을 잃은 채 현기증을 호소하듯 방향을 잃고 같은 말만 되뇌고 있었다. 나는 차에서 내려 띄엄띄엄 있는 집들의 번지수를 찾아 헤매고 발품을 팔아서야 겨우 손에 쥔 주소지와 같은 번지수가 적힌 집 한 채를 발견했다. 집 주변에는 풀들이 제때 베어지지 못해 훌쩍 자라 있었고, 마당 한 켠 장독대는 나의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소중하게 다루었던 반질반질했던 장독대와 다르게 세월의 먼지가 그 빛을 삼키어 사람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듯 뿌연 외로움을 뿜어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곳은 인적이 드문 곳이라 아프기라도 하면 사람이 손길이 무척 그리울 것 같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도 나누어 먹을 이웃이 가까이 있지 않다는 건 정말 슬픈 일처럼 느껴졌다.  

어르신은 젊어서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자녀를 키우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하루에 3시간도 못 자고 일만 하다가 세월이 다 가버렸다고 한탄하셨다. “공부가 너무 하고 싶었어요. 나이가 이렇게 들어버려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너무 한스러워요. 이제는 죽는 날 기다리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게 너무 괴롭고 고통스러워요. 차라리 빨리 죽고 싶어요.”


나는 그 심정을 공감하며 아픈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어르신이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TV나 라디오를 종일 켜고 송출되는 소리에 의지하며 혼자가아니라고 스스로 위안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글씨는이름 정도만 쓸 수 있는 어르신에게 한글을 배워보는 것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곧 죽을 나이에 무슨 공부냐며 손사래를 치셨지만 곧 잠잠해졌다.

어르신은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두 달 후 재평가를 위해 어르신의 댁에 방문하게 되었다.


어르신 댁을 향해 달리는 차 안에서 창문을 열자 바람의 향기가 느껴졌다. 시골길은 계절마다 바람의 향기가 있다. 아카시아 꽃이 필 무렵엔 꽃향기, 초여름엔 초원의 풀향기, 퇴비 시기엔 거름으로 인한 쿰쿰한 냄새 등. 시골의 모든 바람의 향기가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도시의 검은 매연의 냄새와는 확연히 다른 정겨운 향기임엔 틀림없다. 나는 무엇보다 어르신을 만나보고 싶은 마음에 굽이진 산길도헝클어진 풀숲도 걸림돌이 되진 못했다.

출발하기 전 통화를 한 상태라서 내가 도착할 시간 즈음 어르신께서 언덕 위에 먼저 나와서 손짓으로 나를 반겨 주었다. 나는 어르신의 얼굴을 마주하고 정말 깜짝 놀랐다. 두 달 전 뵈었던 어르신이 아닌 듯 슬픔에 잠겨있었던 얼굴은 사라지고 웃음꽃이 만개한 얼굴이 되어있었다.


어르신의 얼굴엔 밝은 빛이 맴돌았고 사는 게 이렇게 재미있을 수 없다고 연신 말씀하신다. 변화된 어르신 덕분에 나는 일에 대한 보람을 실컷 누렸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누군가의 삶에 희망을 찾아주는 것이 이렇게 보람된 일인지 미처 몰랐다. 죽고 싶은 사람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일. 그때 알았다. 나의 소명이 무엇인지.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다시 스무 살 청년의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즐겁게 살아갈수 있도록 남은 삶에 숨길을 불어넣어주는 일. 이것이 바로 내 사명이라고 느끼는 순간이었다. 어르신과 나는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볕 잘 드는 마당에 나와서 각자의 사진기에 브이하고 사진도 찍었다.


나는 다이어리에 사진과 함께 이렇게 남겼다.

“ 친구 하기 딱 좋은 나이!”

우린 통했다. 서로에게 시기, 질투 없이 필요를 채워주고 힘이 되어주는 것, 나는 어르신의 세월 안의 삶의 지혜를 배웠고 어르신은 글씨를 배우게 되었다.


나는 누군가가 먹구름 속에 있다면 무지개로 다가가 희망을 찾아주는 따듯한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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