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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 Sep 22. 2024

현재가 전부는 아니니까

자메뷰의 실체

지금 여기의 삶에 집중하라고

많은 석학과 현자들이 말했다.

단순하고 가볍게 살라고

많은 책의 저자들이 말했다.

과거에 머무르지 말고 현재에 집중하다 보면 언젠가 현재가 될 미래도 나아질 거라고 했다.

나도 'now here'신념추구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갑작스레 나의 정신은 과거로 돌아간다.

내가 붙잡을 새도 없이 홀연히 가버린다.

현재의 내가 다시 과거의 내가 되어,

피투성이를 하고 학교 어느 공간에 서 있는 것이다.

괜찮다는 믿음이 전부는 아니었나 보다.


순간순간 찾아오는 그 당황스러움은,

평온하고 차분하며 고요한 현재에

1년 전의 상황의 내가 불현듯 나타나

이 현재를 생경하게 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최근 이런 느낌이 잦아져 검색을 해보았더니, 실재하는 단어가 있었다.

교직생활 18년 차에

고작 1년 겪은 그 과거로 나는 자꾸 돌아가,

현재를 생소하게 느끼고 있다.

자메뷰를 겪는 상황을 몇 가지로 분류해 보면 이렇다.

가해자들을 만날 때이다.

아직 학교에 존재하는 가해자들을 만날 때

나는 과거의 나의 얼굴로 그들을 봐야 할지

가면을 써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과거로 휙 가버리는 것이다.

또 누군가 나를 2~3초간 훑어본다거나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갑자기 조용해지는 상황(내 얘기를 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상황)이 그렇다.

사실 고소와 교권침해, 갑질까지 겪는 상황에서 나는 참 많이 외로웠다.

항상 손해 보더라도 남을 돕는 쪽을 택했던 나는, 내가 겪는 어려움에는 아무 도움을 받지 못했고

억울하고 답답한 그 마음은

전체 교직원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으로 표출되었다.

그렇다고 누구를 저격할 수도 비난할 수도 없었기에 최대한 예의를 갖춰 여러 제안을 했고, 동의를 받는 것으로

사람에 대한 믿음의 지푸라기를 잡을 수 있었다.

(전체메시지를 보내는 일은,

마치 학교에 커다란 대자보를 실명으로 붙이는 일과 같았다.)

결과적으로 그 일은

누군가에겐 업무량 증가로 이어졌고,

누군가에겐 위협으로,

누군가에겐 공감으로,

누군가에겐 귀찮은 메시지로 받아들여졌다.


어쨌거나 나는 80%가 넘는 동의를 받아냈고,

이것을 전체 회의에서 통과시켜 일부를 학교의 절차로 만들었다.

그것이 내가 미래의 나와 동료들과 학생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 일로 나를 세모눈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 글을 쓰면서 나의 현상이자 증상인

자메뷰의 실체를 깨달았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분리되어 있다는 점 때문이다.

시간의 흐름으로 이어져 온 내가

몇 개로 분리되어

진심을 보여도 되는 상대와 상황에만 합체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상대와 상황에선 분리된 채,

자메뷰 현상을 겪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나는 '지금 여기'에 항상 집중할 것을 믿는다.

그리고 나의 제안에 답장을 줬던 80%의 동료들의 마음도 진실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현재가 될 어느 미래엔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일치되어

완전한 내가 될 것을 믿는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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