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햇살 아래 환한 미소를 드러냈던 그 꽃은 언젠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꽃이 피고 진 이후에는 열매라는 탐스러운 무언가가 자리 잡는다. 아름답던 모습은 사라지지 않고 그 작은 열매에 깃든다. 그 열매는 톡 쏘는 새콤함과 함께 달콤함이라는 깊은 풍미를 지녀 작은 동물들을 풍족하게 한다. 먹이가 되어버린 열매는 씨앗이 되어 언젠가 세상에 다시 한번 얼굴을 내비칠 날을 기다리곤 한다.
떨어져 누군가에게 짓밟힌 꽃잎을 누군가는 그리워할까. 반대로, 작은 동물들은 자신이 삼켜버린 그 열매와 열매의 씨앗의 이름을 기억할까. 피고 지며 맺히고 먹혀가는 순환적 현상을 누군가는 안타깝게 바라볼까. 그 꽃과 그 열매에게도 각자의 이름과 기억과 삶이 그것들 안에 자리 잡고 있었을까. 그저 지나간 무언가에 대해 깊이 사유하는 것은 미련인 것일까. 아니면 존중과 감사의 표시일까.
나에게 행해지는 모든 순간들을 어쩌면 당연하게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그것에 대해 깊은 생각을 가져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원래 그러한 무언가가 될 것이다. 꽃은 원래 아름답게 피는 것이고, 열매란 원래 먹히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이러한 초 자연적 현상들을 인간의 삶의 대입한다면, 나는 그리고 우리는 아름답게 피어난, 가지에 의지하는 한 송이의 꽃인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꽃이 머물다 간 온기가 남은 그곳에 열린 탐스러운 열매일까.
만약, 내가 피어난 꽃이라면 많은 이의 이목을 끌 것이고, 열매라면 누군가 나를 이 가지에서, 꽃이 머물다 간 그 온기 속에서 해방시켜 주길 기다리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내 안의 씨앗을 어딘가에 고이 묻어 새로운 싹을 틔워주길 바랄지도 모른다. 나의 언행이, 나의 행동이, 그리고 나의 내면이 다른 이들에게 보이는 것은 각기 다를 것이다. 오늘의 누군가에게는 만개한 예쁜 꽃일지라도, 내일의 누군가에게는 볼품없이 메마르고, 짓밟혀버린, 색을 잃은 꽃잎에 불과할 것이다.
그 이전에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현재의 내가 완전한 형태를 띠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나는 온전히 피어난 꽃 혹은 열매인가. 그 이후에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내가 살아가고자 하는, 누군가에게 기억되고자 하는 모습은 꽃에 가까운 것인가 혹은 열매에 가까운 것인가. 말과 행동을 토대로 구체화되는 한 사람의 표면상의 특징은 마주하는 사람마다 다르게 보일 것이다. 일종의 '페르소나'처럼 여겨질 수 있는 이것은 그저 타인에게 어떠한 가면을 쓰는 것에 가깝다기보다는 어떤 목적이나 의미를 가지고 삶을 영유해 가는 가에 가까울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페르소나는 꽃인가 열매인가.
현재의 나는 꽃도 아닐뿐더러 열매는 더더욱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의지하여 그 공간에서 나의 매력을 발산하고자 하는 욕구는 꽃과 유사할지라도, 그 어떤 꽃처럼 다른 이에게 나의 모습을 활짝 피어 내비칠 준비는 되지 않은 것 같다. 꽃이 되지 못하였기에 나를 희생하여 누군가의 미각을 충족시킬 수 있는 열매와는 거리가 한없이 멀 것이다.
이러한 나의 모습은 '개화' , 즉 꽃이 피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의지하고 공생하던 나뭇가지에서 마지막으로 가장 예쁘고 아름다운 시절의 나를 모두에게 당차게 드러내는 것.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개화의 과정이 특히나 아름답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기에 이미 개화의 과정을 마치고 만개한, 꽃인 사람들이 더욱 빛나 보이는 요즘. 나는 어떠한 꽃이 되고 싶은지 많이 생각하곤 한다. 피어난다는 것, 그리고 떨어진다는 것. 자신을 온전히 내비친 이후 가느다란 바람 한 줄기에 몸을 맡겨 의존하던 것과의 관계를 끊어 내는 것. 나의 개화가, 나의 만개가 가장 아름다울 수 있는 순간은 그 누구보다 멋지게 떨어져 그 무엇보다 탐스러운 열매를 맺는 순간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