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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한강 Oct 28. 2024

독서의 계절 1

한강 작가의 경사스러운 노벨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후에 작가의 책이 품절이 돼서 대형서점에서도 구할 수 없네 마네하는 기사를 보며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원하면 언제라도 오프라인, 온라인으로 읽고 싶은 책을 구할 수 있는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이 열악했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하루에 겨우 네댓 번 마장동에서 출발하는 시외버스가 유일한 교통수단이던 촌구석의 아이들에게는 '소년중앙'이니 '어깨동무'니 하는 어린이잡지는 그 존재 자체도 잘 모르던 귀한 책이었다. 정기적으로 배달되는 잡지라고는 '새 농민'이 거의 유일했는데 영농비결이나 농약 소개가 실린 잡지가 초등학생의 눈높이를 맞출 리는 만무했다. 지만 내게는 새로운 어휘를 익히는 역할을 톡톡히 했고 끝내는 훌륭한 불쏘시개가 되었으니 쓸데없는 잡지는 물론 아니었다. 우연히 한참 지난 어깨동무 과월호라도 얻어걸리면 몇 번씩이고 침 발라 넘기며 읽곤 했다. 교무실 책장에는 소년중앙, 어깨동무에 심지어는 '새소년'까지 매달 배달되어 꽂혀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감히 볼 생각도, 보라는 이도 없었다.


3학년 어느 날 경기도 광주에서 한 친구가 전학을 왔다. 집에 새소년이 있다는 말에 시오리길을 한달음에 달려갔다. 사립문을 들어서며 마당에 계신 친구 아버지께 인사를 드렸더니 친구 넘이 "얘 새소년 보러 여기까지 왔어요"라고 덧붙였다. 이내 "어이구 만화 보러 여기까지 먼 길을 왔냐?"라는 친구 아버지의 대답이 돌아왔다. 만화만 있는 책이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었으나 뭐 만화가 없지는 않으니 딱히 대꾸할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학생이 300명이나 있던 양평군 서종면의 초등학교에 도서관은커녕 독서실 하나 없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양평 촌구석 읽을거리에 늘 목말랐던 한 아이에게 바깥세상을 조금이라도 보여주던 고마운 책들. 당시의 성인용 잡지, "선데이서울"을 탐독했던 이유도 단순히 읽을 책이 없어서였다고 힘주어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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