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공기가 휘뚜루마뚜루 걸치고 나온 패딩 옷깃 사이사이로 날카롭게 스며든다. 장갑 속 손끝까지 저릿해오는 강추위.
잔뜩 움츠린 채 얼마나 걸었을까. 저기 저 앞에서 초등 고학년쯤 된 아이가 덜렁 반팔 하나만 입고 등교를 한다. 세상에. 이날씨에!두 눈을 씻고 다시 봐도 영락없는 반팔이다. 보고 있는 내 눈이 다 시려온다. 너 혼자 다른 세상에 사는 게냐. 저 집 어머니도 오늘 아침에 뒷목 좀 잡으셨겠구먼. 낯선 여인에 대한 연민, 동정 뭐 그런 비슷한 감정이 이어지던 차에 아이가 크록스까지 신지 않은 것에 왠지 모르게 감사한 마음마저 들 지경이다.
패션계의 스나이퍼라도 되어보겠다는 야심인가. 설마. 설마가 사람 잡겠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애미된 도리를 다한 걱정이 기어코 비집고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저대로 괜찮은가,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 지금 감기 걸리면 고생할 텐데'
그런 아이를 바라보다가 문득 떠오른다.
추워죽어도, 얼어죽어도, 곧 죽어도, 교복치마엔 맨다리 이거나 살색스타킹을 고수했던 어릴 적 내가.
그렇게 16살 맨다리 소녀가 영하 7도에 반팔입은 어린이 곁을 스쳐지나간다.
매서운 바람에 다리가 빨갛게 얼어붙고 발목이 시렸어도 어른들처럼 보이고 싶었던 어린이가 보인다.
어른이 되기를 기다리는 어중간한 마음이었고, 아직 다 자라지 않은 허무하고도 맹랑한 자존심의 표현이었다.
어쩌면 그 아이도 자신만의 이유를 품고 뭉뚱그린 채 그렇게 걷고 있었겠지. 그날의 추위를 꿋꿋하게 견디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