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설거지를 해 놓고 잠깐 쉬자는 어머니의 등뒤에 서서 나도 모르게 마음의 소리가 튀어나왔다.
"하이구, 이런 것도 안 하는 남자가 있냐아아?"
상상도 못 해본 일이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
정확히 '이런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이런 것'이라는 게 어찌나 사소하게 다가왔는지, 온갖 택배와 장보기의 배설물쯤 되는 우리 집 재활용 무덤이 떠올라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러나, 그때 말했어야 했다.
이런 것도 안 하는 남자가 다름 아닌, 지금 거실 소파에 한가로이 누워 오징어 뜯고 있는 어머니 아들이라는 사실을.
어쩌면 침묵이 대답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붙들고 버티기 12년 차. 쓰레기봉투는 사 올 줄 알아도 아파트 분리수거지정요일이 언제인지는 저 남자의 관심 바운더리 내에는 없는 일이다.
나는 나의 남편을 반면교사로 삼기로 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미래의 며느리에게 책잡히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내 얼굴에 침을 뱉는 것 같아 어딘가 구차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남편의 모습이 나중에 아들들에게 그대로 이어진다면 미래의 남의 집 귀한 딸들이 무슨 말을 해올 지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알아서 척척척 스스로 어린이로 키워보리라.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시스템'
처음에는 단순히 집안일의 일부를 분담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이 시스템이 꺾이지 않고 지속되도록 만드는건 결국 함께하는 힘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들은 집안일 중에서 재활용 분리수거하는 것만큼은 누군가 혼자 담당하는 일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함께 나누는 일로 받아들였다.
"엄마, 스티로폼은 어디다 버려야 해요?"
"우리 플라스틱을 정말 많이 쓰네."
"삼일만에 비닐을 이만큼이나 모았어요?"
작은 손으로 분리수거를 하는 모습에서 흐뭇한 미래를 살짝 엿본다. 사막에서 꽃을 피워내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환경까지 더불어 생각해 보기는 덤이다. 이렇게 조금씩 만들어가는 우리 가족의 재활용 분리수거 시스템은 단순히 가사노동의 분담을 넘어 서로를 배려하고 환경을 지키고 존중하는 마음 키우기의 일환이 되어간다.
함께 하는 힘이 우리 가족의 삶을 더 단단히 엮어주는 실처럼 느껴진다. 주부역할에 파묻혀 점점 소멸하는 '나'를 지탱해 주는 건 덤으로 얹어지는 셈이리라. 그렇게 서로의 짐을 나누자는 작은 약속이 겨울바람 속에서도 따뜻하게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