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오월이가 샤워를 마치고 나와 머리를 말리고 있었고, 혹시 드라이기 안의 열선이 수명을 다 한 건가 싶어 코를 대고 킁킁거려보았지만 거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어라, 그렇다면…
잡았다 요놈!
오월이의 정수리에서 나는 냄새였다. 호르몬의 노예라는 단어는 쓰고 싶지 않았는데, 오월이에게도 피할 수 없는 사춘기의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그 바람이 실어온 냄새는 실로 대단했다. 검색창을 열어 찾아보니 남성호르몬 안드로겐의 분비가 과다해서 그렇단다.
세상에, 남성 호르몬이라니!
아직도 아침에 일어나면 떠지지도 않는 눈을 한 채 "엄마아아아" 어린양을 하며 다가와 폭 안기는 아이인데 언제 이렇게 자라 버린 걸까. 작고 따뜻한 몸이 내 품에 꼭 맞게 자리 잡을 때마다 "네 머리에서 냄새가 나"라는 말은 차마 목구멍을 넘지 못했고, 애정 어린 거짓말을 들려보내야 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냄새를 참는 것이 능사는 아니었으므로 비장한 마음으로 쿠팡앱을 열었다. 테크 호르몬특유취 제거용 세제, 대용량 페브리즈, 스멜커버 쿤달 청소년샴푸, 겨드랑이 데오드란트까지. 어느새 장바구니는 탈취 종합선물세트가 되었다. 로켓을 타고 날아온 탈취제품들은 세탁기에서, 샤워기 옆에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중이다.
강렬한 사춘기 냄새를 해결하기 위해 한바탕 소동을 벌인 뒤에 마음 한 구석이 묘하게 허전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아이가 5개월쯤 되었을 무렵의 기억이 뭉근히 떠올랐다. 그 시절 오월이의 냄새는 얼마나 포근했던가.아이는 하루종일 침을 흘렸다. 틈만 나면 열 손가락 골고루 시식하듯, 그 작은 손가락을 쪽쪽 빨아대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이의 손에서는 항상 꼬질꼬질한 냄새가 나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손 닦이랴 침 닦이랴 분주했다.
그 작은 몸을 내 품에 안고 맡았던 침 냄새, 분유냄새, 로션냄새, 아기에게서만 나는 고유한 달큼한 냄새. 아련한 그 냄새들. 그 시절 나는 오월이의 모든 향을 사랑했다.
그러던 아이가 이제 어른으로 성장하는 길목에 서 있다. 사춘기 냄새는 그저 시작일 뿐일지도 모른다. 아이는 스스로 몸도, 마음도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는 냄새. 그것은 아이가 자라며 남기는 흔적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냄새를 지우려 하는 지금과 냄새를 추억하는 지금, 어느 하나 빠질 것 없이 대단하고 특별한 일로 내게 다가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기만의 시간을 기록하고 있는 오월아,불완전한 아름다움이 피어나는 순간까지 너만의 향기로, 빛으로, 흔적으로이 시간들이 남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