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아이를 출산하고 지리멸렬한 젖몸살을 앓았다. 아름답고 경이롭기 마지못한 출산이라는 이벤트 뒤에는 온몸으로 모성의 무게를 견뎌내야 하는 날들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젖몸살로 고생하던 중 만난 수유 마사지 선생님의 손길은 사람 손이 아니라 쇠망치 같았고, 그 쇠망치 같던 손놀림이 결국엔 나를 구원하였다.
"망각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외친 니체 선생님의 명언은 대진리임이 확실하다. 두 번째 아이를 출산할 때가 다가오자 출산하는 고통의 두려움보다는 가슴에 열이 펄펄 끓는두 돌덩이를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새삼 더 두렵게 느껴졌다. 그 강렬한 압박감, 심장을 쥐고 흔드는 통증과의 재회가 숙명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선생님, 저 모유수유 안 할래요. 아이 낳으면 젖 말리는 약도 바로 처방해 주세요."
고통을 가불 하고 싶지 않은 완고함이었다. 내 몸이 견디지 못할 것 같아서 한 선택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에미가 행복해야 아이에게도 좋을 거라 생각한 뾰족한 모성이었다.
모유를 못 먹인 탓이었을까. 6개월에 한 번씩 아이의 발달 정도를 체크하는 영유아검진 결과는 늘 지지부진했다. 검진 때마다 모유수유를 했냐는 질문이 꼭 따라붙었고 그때마다 낙오한 에미의 죄책감은 어깨를 짓눌렀다. '잘 먹여야 한다,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 되었든 먹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조언은 아이가 9세가 된 현재까지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있다.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 되었든 먹이라.'라는 소리를 찰떡같이 알아들은 아이는 찜통더위에도 딸기를 찾았고, 한파 속에서는 수박을 외쳤다. 이런 청개구리가 다 있나. 입덧하는 임산부도 아니건만. 별 꼴이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모유를 못 먹인, 아니 안 먹인 죄인이므로 딸기와 수박을 구해오는 심부름에 열과 성을 다했다.
그러나 힘들게 구해다 바친 나의 노동력과, 계절을 거스른 과일의 비싼 가격을 비웃기라도 하듯 아이는 한 두 입 먹고는 이내 만화책을 펼치거나 레고로 옮겨갔다. 어쩌면 내가 느끼는 무게와 죄책감은 아이에게는 별 의미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엄마가 내 부탁을 들어줬다는 기억만 남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한집에 사는 나의 짝꿍은 제철과일에 대한 무지가 불러온 비극이라며 이제는 제대로 알려줘야 한다고 극성이다. (얼씨구)
내가 아이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것은 제철과일을 바로 알고 시기와 때에 맞게 주문하는 애어른다움도 아니고, 부모라고 해서 무리한 요구를 다 충족시켜 주는 해결사도 아니며, 그저 네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있다는 단순하지만 중요한 '응답'일뿐이다.
방학을 맞아 하루종일 집에서 엄마 메들리를 부르는 녀석들에게오늘도 담담하지만 애정을 담아 응답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