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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 하는 어린이

by 깡미 Jan 01. 2025

기필코 이 지긋지긋한 시골 동네를 떠나리라.

유일한 탈출구는 타지로 취업하는 것뿐이라 최대한 집에서 가장 먼 곳에 첫 직장을 잡았다. 자동차로 4시간 30분 거리. 무려 227km. 엄마는 거기까지 가서 혼자 밥은 어떻게 해 먹냐고 걱정 아닌 걱정을 하셨다. 도대체 '밥'이 뭐라고. 짐을 꾸려 나오던 날, 그녀만의 치트키 요리인 매운 돼지갈비를 한 끼분씩 소분하여 냉동해 주셨는데, 사실 이 돼지갈비는 눈물의 돼지갈비로 기억된다. 혼자여도 식사를 거르지 말고 잘 챙겨 먹으라는 무언의 사랑이었던 셈이리라. 엄마의 눈물을 모른 척하고 오른 상경 길에서, 드디어 나 혼자만의 공간이 생긴다는 벅차오름과 공식적으로 집을 탈출했다는 안도감을 느낀 나는 희대의 불효녀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야망 캐였다. 그렇게 시작된 싱글 라이프는 생각보다 더욱 나를 나이게 했다. 밤늦게 까지 TV를 틀어놓아도, 매미 허물 벗듯 옷을 벗어 두어도, 설거지 거리가 산처럼 쌓여 있어도 날것 그대로의 상태를 무어라 입을대사람이 없었다.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그런데 딱 한 가지 몸서리 쳐지던 게 있었다. 혼밥. 혼밥이 싫었다. 식당에서 "혼자 오셨어요?"라고 물어보았을 때 왠지 모르게 뻘쭘한 기분이 들었다.  '혼자 밥을 먹는다'='친구가 없다'='사회성 없는 사람으로 보인다'여서 그랬을까. 밖에서 혼자 밥을 먹는다는 건 이상한 시선을 감내하며 먹는 식사로 여겨지던 시절이었으니 쭈구리처럼 식당 구석에 앉아 숨 돌릴 새 없이 혼밥을 했다. 지금에 와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그렇게라도 밥때를 거르지 않았던 내가 애잔하기 이를 데가 없네.




우리 동네 학원가의 패스트푸드점과 편의점은 여간해선 주말에도 빈자리를 찾기 어렵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어김없이 이어지는 학원 스케줄 때문에, 패스트푸드나 정크푸드로 혼자 식사를 하는 아이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말에 학원을 나온다는것도 놀라운데 학원가 음식점의 열기까지 이렇게 뜨거울 일인가.


아무튼,

지금의 혼밥은 하나의 문화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다른 사람의 눈치는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 인식이 차츰 바뀌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혼밥에 적합한 식당과 메뉴들도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혼자 밥을 먹는 문화가 초등학생들에게까지 만연한 사회 풍조로 보기에는 어딘가 모르게 씁쓸한 구석이 있다. 혼자 밥을 먹는 시간이 나쁜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아이가 쉴 틈 없이 바쁜 일정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거나 스스로를 챙기기 버거워한다면 나는 왜인지 모르게 혼자 밥을 먹고 있는 아이들의 뒤통수를 바라보고 있기가 미안해진다.





혼자 밥 먹는 행위를 행복지수로 수치화하다니, 여러 의미로 놀랍기 그지없다. 정확히 꼬집어 말하기 어렵지만 모든 것이 미묘하게 틀어지고 있다는 느낌은 쉽게 지울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청소년 혼밥에 대해 찾아본 기사에서는 혼밥과 청소년 우울증의 상관성을 다룬 연구결과가 어지럽게 이어지고 있었다.


청소년의 14%가 하루 두 끼 이상 혼밥
스트레스 1.4배 높아… 영양 불균형도 문제
고등학생이 중학생보다 혼밥 비율 높아




가슴이 울렁거린다. 어른들이 상상할 없는 고독감을 짊어진 아이들의 그 마음에.

사회적 제도나, 분위기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나뿐일까. 그러려면 지금 무엇부터 시작할 수 있는가. 가정에서부터 아이들의 하루를 물어보고 작은 대화의 자리를 만들어보는 것. 이것부터 일테다. 식탁에서 단지 허기를 채우는 시간을 넘어 마음을 나눌 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가 시작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변화의 출발선이 아닐까.


함께 나누는 따뜻한 밥심으로 꿈의 맥박이 고동치는 어린이 일 수 있기를, 그 작은 진동이 마음속의 희망의 시작이 되길 바래본다.




*사진출처: by Pexels on pixabay, 네이버블로그 소으리, 세계일보, 어린이조선일보 기사 중 발췌.


<더하는 말>

나는 항상 며칠을 앓는다.

아픔과 먹먹함을.

최연소 21년생이라는 어린아이의 기사를 접하고, 미리 써둔 '어린이라는 지도'의 글을 차마 연재하기 어려웠다.


그 아이는 어딘지도 모를 타국땅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냈을 것이고, 부모는 아이와의 추억을 남기기 위해 여행의 순간 순간에 최선을 다했으리라. 엄마 아빠 손 꼭 잡고 갑작스러운 소풍을 떠난 아이와, 여객기에 탑승하고 있던 모든 분들의 영면을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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