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관 사람들
육아 우울증을 겪고 있던 중, 코로나19가 겹치면서 나는 20대 후반에 이혼하게 되었다.
그것이 육아 우울증이었는지, 아니면 갑과 을 사이의 결혼생활에서 느낀 피로감으로 인한 우울감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내 삶에 대한 의지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육체는 어쩔 수 없이 일상적인 활동을 힘겹게 이어갔지만, 마음속에는 어떤 희망도 목표도 없는 무기력함이 가득했다. 다가오는 현실은 나를 점점 더 짓눌렀다.
사랑받지 못하고, 상대의 뜻대로만 움직이며, 내 의견은 무시되는 상황 속에서, 나는 점점 더 존재가 희미해지는 듯한 무력감에 빠져들었다. 밖에 나가지도 못하게 하던 상대의 말을 따라야만 하는 현실에 대한 원망은 점점 커져만 갔다.
아이의 웃음소리는 들렸지만, 마음속에는 우울함과 미안함, 그리고 죄책감이 점점 더 깊어졌다. '내 아들을 위해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더욱 재촉하며, 오히려 괴로움으로 다가왔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의 존재에 대한 이유를 찾기 위해 애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외된 기분을 떨쳐낼 수 없었다. 세상은 계속 돌아가고, 사람들은 각자의 행복을 찾아 살아가는데, 난 아무런 목적 없이 살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스스로 주변 사람들과 나의 삶을 끊임없이 비교했고, 그럴수록 내 안의 절망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친정에 내려온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전화번호도 저장되지 않은 많은 사람들에게 전화가 왔다.
“얘기 들었어. 왜 이혼해? 괜찮아? 나한테만 말해봐. 무슨 일이야?”
참으로 황당했다. 나와 많은 교류가 없는 사람들이 나의 이혼에 대해 조언을 하려는 태도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제 번호는 어떻게 아셨어요?”
나는 어이없다는 듯 퉁명스럽게 물었다.
“소문 듣고 걱정돼서 사람들한테 물어봤지.”
“그동안 어린 나이에 사모님 돼서 집에만 있는 여자라고 비아냥거리던 분이 제 소식 듣고 번호까지 알아내서 연락 주시니 감사하네요.”
나는 전화를 끊고 모르는 번호를 차단했다. 매번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던 나를 호구로 봤던 것이 화가 나서 그랬을까? 아니면 나만 아픈 것 같아 억울해서 그랬을까?
“엄마, 왜 화났어? 보이스피싱이야?”
아무것도 모른 채 할머니 집에 와서 신나 있던 아들을 보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당시에 나는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데리고 있었다. 이혼 서류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아들을 갑자기 데려갈까 봐 두려웠다.
집을 나오기 전, 시어머니는 "너 아들 없으면 못 살지? 너 가버리면 우리 아들 장사는 어떻게 하니? 내가 너 못 나가게 하려면 니 아들이라도 데리고 가야겠다."라며 강제로 데려가려 했었다.
하지만 무기력한 내 곁에 아들을 온종일 둘 수는 없었다. 나의 어두운 감정이 아들에게 전염될까 두려웠다.
"운동 하나 시켜. 그래야 애도 스트레스 풀리지. 돈은 아빠가 다 해줄게, 걱정 마."
친정 아빠의 조언에 따라 나는 체육관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눈물이 많고 늘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던 아들이 내가 없이 뭔가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태권도였다. 요즘 아이들이 누구나 한 번쯤은 거쳐가는 학원이니, 아들도 잘 적응할 거라 생각했다. 멀리서 아들이 잘 따라 하는 모습을 보며 괜한 걱정을 했구나 싶었지만, 체험 수업이 끝나자마자 아들은 "태권도 싫어."라며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주짓수 같은 거 한번 시켜봐. 이젠 그런 걸 해야 돼.”
친정 아빠의 무심한 한마디에 나는 다시 핸드폰을 붙잡고 주짓수 체육관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런 시골 동네에 주짓수를 가르치는 곳이 있을까?’
그러다 결국 합기도&주짓수 도장을 찾았고, 곧바로 전화를 걸어 방문 상담을 신청했다.
"아들이 적응할 동안에만 저도 같이 수업을 들어도 되나요? “
이건 나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여기서도 아들이 싫다고 하면 더 이상 선택지가 없을 것 같았으니까.
“주짓수는 학년별로 하지 않아요. 수업 시간에 맞춰서 오시면 됩니다.”
예쁜 미소를 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분명 나와 통화했던 그분이다. 과하지 않은 친절함과 따뜻함이 내 마음을 끌었다. 마음이 병들어버린 나에게는 이런 세심함이 선택을 좌우하는 요소가 되었다.
첫 수업, 쭈뼛쭈뼛 아들의 손을 잡고 체육관에 들어갔다. 사람들은 각자 몸풀기에 바빴고, 누구 하나 새로운 얼굴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적어도 내가 왜 이혼했는지 궁금해할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그전까지 아들과 함께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아들 잘생겼네, 아빠는 어디 가셨어?"라는 말을 던지곤 했다. 아빠가 없는 내 아들에게는 이런 악의 없는 말들이 오히려 큰 상처가 됐다.
'이곳에서도 어린아이가 왔으니 분명 누군가가 "아빠"라는 말을 꺼내겠지?'라며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운동 시작하자! 오늘 새로운 얼굴이 있다.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줘.”
“네!”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대답하고는 곧바로 준비 운동에 들어갔다. 누구도 불필요한 질문을 하지 않고, 그저 운동에만 몰두했다.
처음에는 낯선 곳에서 운동한다는 것보다 새로운 사람들과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에 더 신경이 쓰였다. 수업에 따라가다 보니 어느 순간, 오로지 운동에만 집중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았다. 운동 자체에 몰입하게 된 그 시간이, 내 안에 있던 긴장을 서서히 풀어주었다.
이전에는 어디를 가든 조언을 해주려 하거나,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내 이야기를 캐물으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던지는 말들이 흡사 가십거리를 들으려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오직 운동만이 주를 이뤘다. 그 덕분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고, 이 운동의 매력을 처음으로 느낀 순간이었다.
그러다 직장 문제로 잠시 운동을 쉬게 되었지만, 다시 시작할 때는 더 이상 나 혼자가 아니었다. 이번에는 나의 미래를 함께 그려가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아들의 주짓수 대회 영상을 보고 주짓수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준이가 매트에서 경기를 하는데, 혼자라는 생각이 전혀 안 들더라. 체육관 사람들, 특히 함께 운동하는 형, 누나들이 진심으로 응원해 주는 모습을 보니까 너무 고마웠어. 그걸 보니 나도 마음이 울컥하고 눈물이 났어."
그의 말에 체육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이 다시 떠올랐다.
그들은 단순히 함께 운동하는 이들이 아니었다. 아이의 성장을 함께 응원하고 지지해 주는 든든한 존재들이었고, 그 덕분에 나도 이 운동을 계속해 나갈 용기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