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의 주짓수 첫 대회.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대회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망설임 없이 신청했다. 그때 나는 직장을 다니고 있어 운동을 쉬고 있었고, 아들은 주짓수를 다시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상태였다.
“대회 경험하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마. 다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해.”
“엄마, 나 금메달 갖고 싶어. 금메달 따올게!”
아들의 용기 있는 말이 기특하게 느껴졌지만 한편으로는 뜻대로 되지 않아 실망할까 봐 걱정이 앞섰다.
대회 당일, 아들은 나에게 말했다.
“엄마, 나 시합하는 거 보지 마. 엄마랑 눈 마주치면 너무 떨릴 것 같아.”
어린 아들이 나를 의식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부담을 주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아들은 계속 나를 신경 쓰고 있었다.
아들의 첫 시합이 나 때문에 망칠까 봐 떨리는 손과 다리를 부여잡으며 시합장 2층에서 멀리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날의 세컨은 실장님이 맡아주셨다.
3분이라는 시간 동안 아들은 파란 매트 위에서 룰에 맞게 경기를 했다. 엎치락뒤치락하며 넘어졌고, 얼굴이 바닥에 쓸려 빨개졌다. 심판은 아들과 상대 선수의 점수를 주느라 바빴다. 아들의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을 바라만 보아야 한다는 것이 견딜 수 없었다.
그 정도 했으면 잘한 거라고, 이제 그만하자고 달려가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경기를 멈추거나 도와줄 수는 없었다. 서브미션으로 상대에게 빨리 탭을 받고 경기를 종료시키든, 아니면 끝까지 버티든, 모든 것은 아들 스스로 해내야 할 일이었다.
‘내 욕심이었을까?’
‘내가 시합을 신청해서 아들을 고생시키는 건가?’
수많은 생각이 스치며 눈물이 흘렀다.
“준이야, 할 수 있어! 괜찮아! 준이 잘한다!”
내가 자책하는 동안 같은 체육관 형, 누나들은 목이 터져라 준이를 응원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갑자기 나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아들의 슬픔과 기쁨을 모두 내가 막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는 중요한 순간들을 내가 가로막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커졌다.
준이는 매트 위가 아닌 곳에서도 스스로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던 것일까? 엄마가 없으면 눈물부터 흘리던 아이가 이제 보란 듯이 버티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마음이 먹먹해졌다.
아이의 삶을 주관하거나 책임질 수 있다고 여긴 건 나의 착각이었다. 오히려 ‘난 너 없이 살 수 없는 존재야.’라고 생각하고 굳게 믿은 건 엄마인 나였다. 이를 인정하기까지 나는 수도 없이 합리화해 왔다.
여러 시행착오와 좌절을 통해 아이가 스스로 성장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 과정을 지켜볼 자신이 없었다. 아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지켜봐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좌절하거나 슬퍼하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힘들어 미뤄왔던 일이었다.
아들이 태어난 순간부터 병원에서 몇 시간 빼고는 단 한 번도 떨어져 본 적이 없다. 아들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었으며 삶의 전부였다. 이전까지는 내가 엄마로서 내 아이의 행복을 책임질 수 있으며, 삶에 개입하여 돕는 게 마땅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 모든 건 나의 오만이었다.
앞으로 아들이 커가면서 밟는 수많은 매트 위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
매트 밖으로 나왔을 때 안아주는 것밖에.
처음으로 나는 부모의 시선이 아닌, 한 인격체로서 아이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는 거리감을 배웠다.
첫울음을 터뜨린 날부터 어설픈 옹알이로 “엄마”라고 말할 때까지의 모든 기억이 생생하다. 준이는 홀로 서는 법을 배우며 언젠가 내 품을 벗어날 것이다. 앞으로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도약할 아들의 성장 과정에서 나의 역할은, 넘어지더라도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지켜봐 주는 여유가 될 것이다.
결국 자식에게서 독립하여 홀로 서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내가 아닐까.
매트 위에서 땀을 흘리며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치열하게 이겨내는 아들을 보며 다양한 감정이 교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