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집 사람들 (하)

by 엘샤랄라

부모님의 가게는 집과 멀지 않았다. 우리 가게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약국이 있었고, 오른쪽은 헌책방이었다. 약국의 구조는 지금 생각해도 조금 특이했다. 요즘 약국처럼 약사와 손님의 눈높이가 같지 않았다. 계단 두 개 정도 높이 위로 약사님 공간이 자리했다. 게다가 손님과 약사를 분명하게 구분하는 나무 선반이 그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기에 약이라도 살라치면 마치 의사 선생님께 진료를 받고 약을 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공간은 그렇게 약사와 손님 사이에 확고한 위계질서를 그려 놓았다. 한 가지 특이했던 점은 여기는 분명히 약을 파는 약국인데 안쪽으로는 다양한 한약재를 담아 놓은 한약방에서나 볼 법한 나무 서랍장이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에 따라 거리 쪽으로 나 있는 창쪽으로는 약탕기가 서너 개 있었고, 한약이 만들어지는 날이면 동네에 길가에 한약 냄새가 진동을 했다.


오른쪽에 있던 헌책방은 나에게는 보물창고 같은 곳이었다. 도서관을 알기 전, 책 구경을 마음껏 할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곳이다. 재미있어 보이는 책을 집어 들고 두리번두리번 거리다가 사고 싶기라도 하면 내 용돈이나 혹은 가게에 있던 동전통에서 몰래 가져와서 살 수도 있는 가격이었기에 나에게는 동네 문방구나 다름없었다. 물론 오른쪽으로 더 올라가면 내가 잘 가는 문방구도 있었다. 문방구집에는 딸이 둘이었고 둘은 모두 나보다 언니였다. 맏딸이었던 나는 언니가 있었으면 하는 막연한 욕구를 종종 그 언니들로부터 채웠다. 문방구집 두 언니는 워낙 키도 크고 덩치도 있었어서 학교에서 두 언니를 만나 아는 척이라도 하면 어찌나 든든했는지 모른다.


다시 약국 방향으로 내려가 본다. 약국 옆으로 붙은 골목길을 바로 3층짜리 건물이 하나 있는데 그 건물 1층으로는 오른쪽부터 슈퍼, 오락실, 그리고 세탁소가 있다. 그 당시 우리 동네 가게들의 특징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가게 안쪽으로는 어김없이 방이 하나 혹은 두 개 더 붙어 있어서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일도 하고 생활도 했었다는 점이다. 물론 오락실은 아니었다. 그랬기에 물건을 사러 가서 주인이 없으면 크게 아저씨, 아줌마를 부르면 되었다. 인기척이 없다 싶으면 조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디선가 바쁘게 뛰어 오시니, 우리 동네 가게는 그렇게 항상 열려 있었다.


이렇게 장황하게 가게 주변 지도를 탐색하듯이 설명을 늘어놓은 건 바로 두 번째 셋집 사람들을 소개하기 위함인데, 바로 그 두 번째 셋집 사람들이 여기 세탁소집이었다. 세탁소집 가족도 당연히 처음에는 가게 안쪽에 붙어 있는 방에서 생활했다. 그러다 어느 날, 우리 집 2층으로 이사를 온 것이다. 그 집에도 딸이 둘이었는데 모두 나랑 친했고, 엄마는 특히 세탁소집 아줌마랑 무척이나 친했어서 이년, 저년, 지랄하네 하는 수준이었다. 그런 가족이 우리 집 바로 아랫집으로 이사를 왔으니, 나는 얼마나 신났을까.


세탁소 주인아저씨 성함은 철수였고, 아줌마의 성함은 영희였다. 교과서에 나오는 바로 그 철수와 영희, 지어낸 이름 아니고 정말이었는데 어떻게 그런 이름 둘이서 만났는지 그 시절에도 무척이나 신기해했던 기억이다. 아저씨는 멋쟁이였다. 키는 아줌마보다 조금 작았지만 머리를 곱게 빗어서 항상 깔끔하게 무스를 바르고 다니셨다. 옷도 그냥 옷이 아니고 정장 느낌으로 입고 일하셨기에 나는 간혹 가다 이 아저씨의 직업이 세탁소 주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 항상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줌마는 처음에는 아저씨와 함께 세탁소 일을 하시다가 가게 앞 땅에다가 공간을 만들어 분식집을 시작하셨다. 나와 내 친구는 신이 나서 돈이 생길 때마다 그 집에서 떡볶이를 사 먹었는데 갈 때마다 냉면그릇 같은 대접에다 한가득 주시니 나중에는 먹으러 가기가 죄송할 정도였다. 분명히 돈을 드리긴 했는데, 더 드려야 할 것 같은 죄책감이 들었고 그렇다고 수중에는 돈이 없었어서 이를 무엇으로 갚아야 하나 내심 골머리를 썩었다. 다행히 엄마와 아줌마 사이가 워낙 돈독했어서 가게가 한가할 때쯤이면 아줌마가 항상 우리 가게에 놀러 오셨고, 계절에 맞춰 주전부리를 나눠 먹으니 엄마가 다 알아서 잘하시겠거니 믿었다.


그 집이 33-14번지로 이사 오고 나서 그 집 딸 은혜와 은희랑 놀기 위해 내가 그 집으로 놀러 간 적은 손에 꼽는다. 가게 근처에서 살았을 때는 심심하면 세탁소집에 놀러 가서 그 집 방에서 뒹굴거렸던 나인데, 막상 우리 집 바로 아래층으로 이사오니 발길이 뜸해졌다. 그냥 내 생각에 세탁소집에서 놀던 것처럼 그렇게 쉽게 드나들면 안 될 것 같았고, 엄연히 우리 집에 세를 들어 산다 하더라도 집이라는 건 지은 사람이 주인이라기보다 살고 있는 사람이 주인이라는 생각이 더욱 강해져서 그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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