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집에 있다 보면 종종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거나 벨소리가 울린다. 엄연히 대문이 존재했지만, 잘 닫아두던 대문도 어느덧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닫혀있는 시늉만 낼뿐이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작은 마당을 지나 바로 집집마다 현관문이 있다. 그렇게 쭉 3층까지 올라오면 우리 집이었고, 셋집의 현관문은 그저 단조로운 회색문이었지만, 우리 집만큼은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청동 빛깔의 문이었다. 해가 질 무렵이면 그 현관문으로 빛이 새어 들어왔다. 문 한가운데는 아치형의 또 하나의 작은 유리창이 있었고, 그 유리창은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도록 파란색의 스테인드아트글라스 였다. 그 빛이 그대로 거실 방바닥을 비추면 나는 방바닥에 빛이 그려놓은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했다.
부모님은 아침에 나가셔서 밤늦게야 들어오셨기 때문에 문단속은 철저히 해야 했다. 그래도 한낮에 누가 문을 두드릴 때면 경계심이 조금은 느슨해진다. 그리고 그 당사자의 목소리가 여자고, 중년이거나 혹은 할머니의 행색을 갖춘 사람이라면 더더욱 놀랄 일은 없다. 사람을 찾는 소리에 어떠한 영문인지 간단히 여쭤본 후에 문을 빼꼼히 열어 본다. 할머니 두 분이 작은 책자를 들고 서 있다. 나에게 읽을거리는 지극히 경계 대상이 아니기에 두 분의 이야기를 건성으로 들으며 눈은 책자를 향해있다.
얇은 책자의 표지는 매번 그림이 달라져 있었다. 한 번은 천국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듯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건 소위 지상 낙원이라 하는 곳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달콤한 말로 속삭였다. 하나님을 믿으면 우리 모두에게 열려 있는 길이니, 한 번 가보지 않겠냐고. 그림 속 에덴동산은 푸르렀고, 꽃들이 휘날렸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고 그저 예수님의 모습과 벌거벗은 남자와 여자 한 명뿐이었다. 에덴동산을 묘사한 색깔은 그 옛날 사람들이 손수 그려서 올렸던 영화 간판의 분위기와 상당히 흡사했다. 나는 그들의 나긋나긋한 이야기를 들으며 곱씹어 보았다. 진정 그곳에 가고 싶은지.
별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예수님이 계신다 한들, 내가 모르는 사람들뿐이라면 그곳은 나에게 에덴동산이라 할 수 없다. 아득한 꿈처럼 보이는 그곳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데 어째서 그곳이 나에게 지상 낙원일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저 먹고, 마시며, 천진난만하게 뛰어다니면 되는 일인건지. 그곳에 가게 되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땅 위에서의 나의 생활은 어떻게 되는 건지. 책자는 받고 안녕히 가시라 공손하게 인사드리며 문을 닫는다. 그렇게 초대하지 않은 불청객들은 종종 문을 두드렸다.
그때만 해도 별로 불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더운 여름날, 맞바람 치게 해서 더위를 물러가게 하려고 엄마가 현관문을 열어두는 바람에 도둑이 들었던 것이다. 그때 이후로 1층에서 3층 사이에 중간문이 하나 더 생기게 되었다. 중간문이 생기면서 3층 현관문은 더욱 자유분방해졌다. 현관문 바로 앞은 꽤나 널찍했기에 그곳에다 우리는 빨랫줄을 달았다. 아파트의 베란다와 같은 공간이 생긴 것이다. 부모님이 빨래를 널기도 하셨지만, 나도 참 여러 번 빨래를 거둬들이고 개고 또한 널었다. 그러던 어느 날에는, 학교에 갔다 돌아왔는데 아무래도 빨랫줄 한편이 허전하다. 나는 곰곰이 생각한다. 이 자리에 뭐가 있었더라.
어느 날 문득, 거울 앞에 섰는데 더 이상 가슴이 평평하지 않았다. 무언가 볼록 튀어나왔다. 이게 뭘까 만져 본다. 나는 아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눈을 아래로 내려 보았다. 여전히 볼록 튀어나와있다. 입었던 셔츠가 붕 떠 있다. 어색한 마음에 그저 셔츠를 눌러 볼 뿐이다. 왜 그동안 알아채지 못했을까. 달라진 몸을 보며 이전의 내 모습은 어땠는지 떠올려 보려 했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제 나는 이것을 떼어낼 수 없고 달고 살아가야 한다. 내 몸의 변화를 알아챈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하루가 다르게 커졌다. 그렇게 해서 이제 나도 어엿하게 상체에도 속옷을 하나 더 챙겨 입어야 하는 때가 된 것이다. 그 속옷 중에 하나가 바로 빨랫줄에 걸려 있었는데 아무리 이리저리 둘러봐도 보이지가 않는다. 한참을 찾았지만, 역시나 없다. 내 몸에 잘 맞았고 연보랏빛의 레이스가 달린 내가 좋아하던 속옷이었다. 누구였을까. 이번 불청객은. 그렇게 우리집에는 초대하지 않은 불청객들이 종종 들이 닥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