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by 엘샤랄라

부모님이 하시던 가게는 중화요릿집으로 이름은 '부평각'이었다. 아침부터 아버지는 근처 '부평깡시장'에서 오토바이 뒤편에 야채를 한가득 싣고 장을 봐오신다. 보통 오전 11시 30분이 넘으면 자연스레 점심 주문이 밀려오기 때문에 그전에 장사 준비를 모두 마쳐 놓아야 한다. 장사 준비라 하면 짜장을 볶기 위한 야채를 썰고 볶아서 짜장을 만들어 놓는 일, 짬뽕에 들어가는 야채를 또 한 바구니 가득 썰어 놓는 일, 손수 그날 쓸 면을 뽑기 위해 반죽을 해 놓는 일 등이 있다. 아침 시간의 가게 안은 라디오만 떠들어 댈 뿐 조용하다. 칼질하는 소리, 큰 솥에 물 끓이는 소리, 웍 위에서 짜장을 볶고 젓는 소리들만이 분주할 뿐이다. 그 모든 일에는 엄연히 순서가 있었고 그 작업들은 물이 흐르듯 아주 자연스러운 과정이었기에 내가 끼어들 틈은 없었다.


그러면 나는 주방을 벗어나 홀 청소를 하고 테이블 위를 닦으며 손님맞이할 준비를 조금 도와드린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점심시간이 되면 대책이 없을 정도로 주문이 밀려 들어오는데, 그럴 때 나는 그때 그때 부모님의 심부름을 하기도 하고, 홀에 음식을 내어드리거나 음식 포장을 돕는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모든 일이 엉켜버려서 나도 바짝 긴장하게 되는 시간이다. 그렇게 자연스레 부모님의 노동을 옆에서 지켜봤고, 나 또한 주말에 그 일을 도와드려 봤기에 자연스레 내 몸을 움직여 돈을 버는 가치를 알게 되었다. 그건 살아있는 교육이었고, 그 덕분에 책상에 앉아서 연필을 굴리며 공부하는 일이 그에 비하면 얼마나 편한 일인지 비교가 되었다.


주말이면 더욱 바빠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닐 부모님 생각에 나는 집에 홀로 벌러덩 누워 있기가 괜히 불편하여서 호기롭게 돕겠다고 가게로 나서는 일이 왕왕 있었는데, 결국 서너 시만 되어도 이미 지쳐서 다리가 쑤셨다. 여름날이면 푹푹 찌는 주방 안에서 부모님은 더욱 녹초가 되신다. 해가 갈수록 더워지는 여름의 열기로 밤이 되면 쓰러지듯 잠을 청하셨다. 카드가 보편화되어있지 않은 그 시절, 부모님은 모든 수금을 현금으로 하셨다. 부엌 안에 깊숙이 들어가면 항상 잔돈을 모아 놓는 돈통이 있었고, 나는 입이 궁금하면 엄마 몰래 부모님을 도와 드렸다는 나의 노동을 정당화하며 그 안에서 반짝 거리는 500원짜리만 쏙쏙 골라 과자를 사 먹고는 했다. 돈통 주변으로 지폐가 있을까 두리번 거렸지만, 내 눈에는 결코 띄지 않았다. 지폐가 어느 정도 모였다 싶으면 가방에 따로 현금을 보관하셨고, 그래도 여전히 엄마의 앞치마 속에는 잔돈을 바꾸기 위한 지폐가 그득 이었다.


가게 장사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바쁜 만큼 돈이 쌓여 갔다. 그때는 오만 원권이 없었기에 엄마는 만 원권만 따로 모아서 어느 정도 모였다 싶으면 은행에 가셨나 보다. 날은 점점 푹푹 찌고, 여느 날처럼 잠을 청하려는데 날씨가 워낙 더웠던지라 엄마는 자다 말고 맞바람이 들이치라고 현관문을 열어 놓으셨다. 거실과 부엌으로 창이 나있었지만, 현관문까지 열어 놓으면 바람이 더 술술 통했다. 해가 서서히 떠오르고 온도가 오르며 일어날 시간이 되었다. 갑자기 집에 난리가 났다. 엄마의 허둥지둥하는 소리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영문도 모르고 두리번거리는데 엄마가 그날 장사하고 모아 둔 현금다발이 든 가방이 안방에서 보이지가 않는단다. 여기저기 뒤지기 시작하는데, 엄마는 이를 어쩌나 발을 동동 구른다.


그러다 열린 현관문 밖을 두리번거렸고, 옥상으로 향하는 그 길에 엄마의 가방이 툭 떨어져 있었다. 엄마는 맨발로 뛰쳐나가 가방을 들고 들어왔고, 요 며칠 장사해서 번 돈을 홀라당 도둑 든 줄 알고 억장이 무너지나 했는데, 다행히 도둑이 엄마가 장사를 위해 천 원짜리, 오천 원짜리 모아 둔 돈만 쏙 빼가고 만 원짜리는 검정 봉지에 따로 싸 두었던 것을 돈다발인 줄 눈치채지 못하고 그대로 가방 안에 떨궈 놓고 갔다. 경찰을 불러야 하나 마나 하는 상황이었는데, 큰돈은 무사했기에 부모님은 경찰에 신고는 따로 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한 여름밤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자도 도둑이 들 것이라 걱정 없이 잠을 청하던 우리 식구는 그다음부터 문단속을 꼭꼭 하며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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