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by 엘샤랄라

아버지는 담배를 태우셨다. 지금이야 워낙 금연교육이 활발하여 실내 금연이 매우 당연해졌지만 그때는 어른들이 피는 담배에 토를 다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학교에서 실시하는 교육에 대단히 적극적인 학생이었던 바, 담배에 대해서는 계몽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담배가 우리 몸에 대체적으로 해롭다는 것을 알았고 따라서 간접흡연 또한 상당히 유해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신봉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그러한 교육을 받고 나자, 일을 마치고 아버지가 거실 소파에 앉아서 쉬실 때에 언제부터인가 안절부절못하였다. 소파 아래 놓여있던 검은색 원형의 크리스털 재떨이는 눈엣가시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딸내미는 괜히 부글부글 혼자 속을 끓이다가 드디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찬바람이 쌩쌩부는 어느 겨울밤, 아버지는 두툼한 외투도 벗지 못하고 그대로 소파에 몸을 내던지다시피 하셨다. 귀가하신 아버지에게 '다녀오셨어요' 인사를 하고 나는 방으로 쏙 들어간다. 내 방은 거실과 가장 가깝기에 아버지가 뭘 하는지 그대로 알 수 있었다. 한 귀로는 텔레비전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고, 또 한 귀는 잠가두면서 숙제에 집중하려고 애를 쓰는데, 생각보다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그러다가 방문 틈새로 스멀스멀 담배 냄새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내 딴에는 냄새가 어찌나 지독한지 나도 모르게 바짝 열이 올랐다. 이렇게 몸에 해로운 담배 연기를 아빠는 자식들이 들이마시도록 그냥 둘 정도로 우리는 신경도 안 쓰시는 건지, 생각이 엉뚱한 곳으로 튀어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쿵쾅쿵쾅, 발꿈치에는 신경질이 잔뜩 묻어나고 나는 방에 있던 이불을 들고 거실로 나갔다. 그리고 이불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아빠, 담배가 몸에 얼마나 해로운지 알아? 지금 아빠가 창문도 안 열고 담배 피워서 그 연기가 다 내 방으로 오잖아." 앙칼지게 아버지에게 대뜸 있는 대로 쏘아붙이며 나는 이불을 펄럭였다. 손으로만 연기를 쫓기보다 이불의 도움을 받으면 더 빨리 연기를 내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불을 펄럭인다고 연기가 빠질 턱이 있나, 먼지만 풀풀 날렸을 뿐이다. 담배를 명분 잡아 아빠에게 온갖 짜증이다. 현관문을 연다. 찬바람이 쌩하고 들이친다. 배은망덕한 딸자식의 행동에 아버지는 어안이 벙벙하다.


아버지 생신 날이 되었다. 자식 된 도리로 효라는 것을 보여주긴 해야 할 텐데, 나는 아버지가 좋기보다 밉기만 하다. 술에 거나하게 취해 들어와 엄마 속만 썩이는 것 같고, 대체적으로 무뚝뚝하여 사랑한다는 표현도 별로 없다. 그래도 한 번씩 내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고 있으면 보기 힘든 만 원짜리로 두둑이 용돈을 챙겨주는 건 우리 아빠뿐이다. 아침부터 나가서 햇볕이 쨍쨍 내리쬐거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세상과 부딪히며 가족의 생계를 꾸리겠다고 애쓰는 아버지의 모습은 언제나 내 마음을 짠하게 한다. 그런 아버지에게 생신을 맞아 편지를 쓰기로 했다. 어쩐 일인지 편지를 쓰면 쓸수록 아버지를 걱정하는 마음이 삐딱선을 탄다. 쓰고 보니 편지에는 '아버지, 이제는 담배와 술 끊으시고, 건강 생각 하세요.'라는 투의 잔소리만 한가득이다. 그래도 나는 내심 진심을 담아 썼다고 뿌듯해하며 편지를 고이 접어 아버지에게 건넸다. 편지를 받은 아버지는 '이것도 편지라고 썼나!'라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뿌리치신다. 뿔이 단단히 나신게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나는 그때 까지도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뿔이 나셨지만, 나는 입이 나왔다.


가게에는 배달 일을 도와주기 위해 종업원이 몇 명씩이나 고용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역할은 대단했다. 아침부터 장을 봐오고, 장사 준비를 하고, 요리도 해내면서 배달일까지 보셨다. 물론 엄마도 만만치 않게 일에 대한 부담을 나눠하셨었다. 그래도 주로 배달 나갈 일이 있으면 그 몫은 아버지 담당이었다. 거칠게 오토바이를 모는 편은 아니지만, 도로 위를 달리다 보면 사고는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렇게 아버지도 사고를 피할 수 없었고, 그 사고로 다리를 크게 다치게 되셨다. 아버지의 사고 소식을 듣고도 한 동안은 꿋꿋한 척, 괜찮은 척했다. 뼈에 철심을 박아야 하는 큰 수술이 끝나자 엄마는 나와 동생을 데리고 아버지 병문안을 가잔다. 병실에 들어서니 우리 집에서 키도 가장 크고, 덩치 좋은 아버지가 환자복을 입고 병실 침대에 앉아 계신다. 아버지를 보자마자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엉엉 울었다. 아버지 다치셔서 꼼짝 못 하고 계신 모습에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 순간에 담배 피운다고 아버지에게 성깔 부린 것부터 시작해서 생신 때에 편지에다가 잔소리만 잔뜩 늘어 놓았던 나의 그 글솜씨가 한없이 부끄러웠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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