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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총회'에 참석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by 엘샤랄라 Mar 19. 2025
브런치 글 이미지 1

코로나가 한창일 때, 우리는 모일 수가 없었다.

가족들이 모이는 일조차 사치처럼 여겨졌었다.

누군가가 나로 인해 코로나에 감염되는 일은

없어야 했기에, 모이는 일에 극도로 예민해졌다.

뿔뿔이 흩어졌다.

모임은 속절없이 취소되었다.

모여야 하는 일이 필요하다면 줌으로 대체되었다.


3월 새 학기가 시작되고, 학부모 총회가 열렸다.

줌 주소가 전달되고, 줌에서 담임선생님을 만났다.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한다.

변화된 방식에 모두가 어색하고 서툴다.

서로 처음 만나는 자리라 더욱 그럴 테지만,

화면 속에서 우리는 눈을 맞출 수가 없다.

나는 말을 하고 있는 사람과 눈을 맞추며

호응을 기대하지만, 그 사람은 그저 모니터를

응시할 뿐이다.

누구의 얼굴을 보고 있는건지 알 길이 없다.

화면에 비치는 나의 얼굴을 보며 타자도 나의 얼굴을

볼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에

입가에 미소를 띠어 보지만,

아무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모두 무표정하다. 미소짓는 내가 민망하다.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는 너무도 형식적이었다.

다들 긴장한 탓이겠거니 하고 넘겼지만,

그 이후로 '학부모 총회'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그리고 2024년,

일을 핑계로 '학부모 총회'에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학부모들이 한 달에 두 번

그림책을 읽어주는 동아리에 가입했다.

전에는 '도서관 봉사 동아리'였었는데, 날짜를 정해

개별적으로 도서관에서 봉사하는 동아리였기에

함께한다는 분위기는 대단히 미미했다.

반면 이번 동아리는 자리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초반에 논의할 일이 많았다.

종종 직접 만나 모여 의견을 나누고,

채팅방에서도 활동을 시작했다.

구성원은 대략 10명 정도였고,

각자 자신이 선정한 책을 ppt로 만들어 송출한다.

서로 응원해 주는 대화가 오가고,

한 학기가 마무리되면서는 티타임을 가졌다.

물론 마스크 없이다.

책을 스캔하고 ppt로 만들어 나의 목소리를

녹음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신경 쓸 일이 많았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진행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다면,

서로 적극적으로 도와 무사히 일 년을 마쳤다.


그리고 2025년 3월, 나는 동아리 대표로

'1학년 신입생 입학식'에서 책을 읽게 되었다.

미리 영상을 녹음하는 형식이 아닌,

강당에서 마이크를 대고 직접 읽어야 했다.

단순히 생각하면 그냥 읽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생각하면 간단한 일이었지만, 목소리는 괜찮을지

전달력은 좋을지, 떨리지는 않을지

행사 시간이 가까워 올수록

초조해지는 마음을 피할 길은 없었다.

그리고 당일 아침, 개인톡으로 동아리 회원에게서

한 번 더 응원의 메시지가 왔다.

본인의 둘째가 오늘 입학식을

치르기에 곁에서 응원해 주겠다 말씀해 주셨다.

단상은 작년처럼 무대 위가 아닌, 학생들과 같은

눈높이에 마련되어 있었기에 나는 곁에서

그분의 따뜻한 응원의 눈빛을 실시간으로 받으며

무사히 행사를 마칠 수 있었다.

모두 덕분이었다.


아이들에게 좋은 그림책을 읽어주자는

동일한 목표로 엄마들이 모였다.

함께 책을 읽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동아리의 발전 방향에 대해 논의하면서

우리는 서로에 대한 경계를 자연스레 풀었다.

학년도 모두 제각각이었지만, 하나의 활동을

함께 함으로 학교에 대한 소속감도 자연스레 커졌다.

2025년 3월, 다시 학부모 총회가 열린다.

오프라인으로는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던 총회에

올해는 참석하겠다 표시를 했다.

학교를 알고, 두 아이의 담임 선생님을 만나

인사를 나누는 목적도 있지만, 올해도 하게 될

동아리 회원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솔직히 더 크다.


올해는 '학부모 총회'에 참석해야 할

뚜렷한 이유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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