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글과 마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티카 Stica May 17. 2024

좋은 사람, 좀 더 나은 사람

<나는 행복을 촬영하는 방사선사입니다> - 류귀복

미담으로 시작하여 미담으로 끝나는 책


가만히 곱씹어 보면, 그래도 백수가 되어 얻은 것들이 있다. 그러니까, 회사를 계속 다녔더라면 게으른 내 성미에 글쓰기 같은 것은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으면 브런치도, ”천재작가“라는 필명의 작가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었겠지. 하물며 그가 쓴, 표지 색깔에서부터 제목까지, 따스하기 짝이 없는 이런 책은 영원히 읽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평소 성격상, 착한 사람들만 나오는 이야기에는 끝까지 몰입을 유지하기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넋놓고 미담에 빠져 들다가는, 부지불식간 현실도 아름다울 것이라 기대하게 되고, 불의와 악의에 무방비 상태가 되고 말 것이라는 비겁한 마음이 들어서.


유머와 배려의 상관관계


지난 수개월의 브런치 생활을 통해 내가 편면적으로 친밀감을 쌓아온 "천재작가"님은 내 마음 속에서 둥글둥글한 그림체의 캐릭터로 존재했다. 두 손가락으로 브이(V)자를 크게 그리며, 활짝 웃고 있는 얼굴. 그가 쓰는 글은 짧고 경쾌하면서 재치가 있었다. 글의 구석구석, 독자가 미소지을 호흡을 고르며 쓴 기색이 역력했달까. 그런데 (당연한 일이겠지만서도) 본캐인 류귀복님은 느낌이 좀 다르다. 천재작가님이 편안한 이웃집 아저씨 같았다면 류귀복님은 호쾌한 옆 부서 차장님 같다.  


조금 더 읽다 보니, 브런치 글에서는 투병에 관한 이야기가 전혀 없다시피해서 그랬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출간된 책에 투병 내용이 있다는 것만 알았지, 그 병이 무엇인지는 몰랐던 것이다. ‘강직성 척추염’을 앓고 계시단다. 작년에서야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읽고 처음 알게 된 병명. 소설 속 의료환경이 여의치 않은 시대적 배경 탓에 한층 더 어마무시하게 묘사되었던 병인지라, 조금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아니, 그런데 그 와중에 그렇게 유머를 잃지 않으신다고? 


개그본능이 강한 사람들은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타인의 웃음에서 정서적 보상을 아주 크게 받는다. 이는 내가 얼굴도 성격도 닮지 않은 친언니를 가까이 관찰하며 깨달은 사실이다. 그녀는 어느 날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신발 멀리 던지기를 하다, 신발 한짝이 담을 넘어가는 바람에 잃어버릴 뻔한 적이 있다. 하교 후 집에 돌아와, 그녀는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릴 뻔한' 일로 친구들이 얼마나 재미있어 했는지 모른다며, 내게 자랑을 늘어놓았다. 돌이켜 보아도, 나처럼 남을 웃기기보다 비아냥거리는 데 소질이 더 큰 사람은 죽었다깨도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하물며 2주에 한번씩, 긴 시간을 들여 주사치료를 받아야 하고, 치료 주기마다 날 것의 통증을 감수하며 살고 있는 사람이 구사하는 재치의 의미는 무엇인가. 얼마나 다른 사람을 위하고 배려해야 가능한 것일까.


도서관 희망도서 신청


“천재작가”님을 통해, 출간작가를 응원하기 위해서는 도서를 구입하는 것만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서관에 희망도서를 신청하는 방법도 있다. 나 말고도 더 많은 사람에게 해당 도서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다는 점, 개인적으로 구매도서보다는 대출도서를 더 쉽게 완독하는 성향 등을 고려할 때, 내게는 '희망도서 신청'이 가장 좋은 방법으로 느껴졌다.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책 이름을 다 입력하기도 전에 ISBN과 작가 이름 등의 정보가 자동입력될 수 있도록 제시되었다. 신청 후 실제 비치되기까지는 한 일주일 정도 기다렸을까. 고맙게도 여행을 떠나기 전날 입고되어 다 읽고 올 수 있었다.


라면 사주는 선배


책을 읽으면서 눈물이 핑 돈 에피소드가 몇 개 있었다. 대학 후배 K와 ‘모퉁이 라면’에 관련한 일화가 그 중 하나인데, 책을 읽기 바로 며칠 전 만났던 언니가 떠올라 울컥했던 것이다.  


나에게도 밥을 사주는 언니가 있다(야호). 내가 회사를 다닐 적에는 그래도 가끔씩 밥값이나 술값을 내도록 해주었지만, 백수가 된 지금에는 ‘넌 그런 것(밥값)을 일체 걱정하지 말라’며 정색하는 언니다. 언니는 '취업이 잘 안되는 것은 경기가 불황인 탓이니, 이럴 때 책이나 마음껏 읽어'라며 격려해준다.


그 언니에게서 들은 말인데, 세상에는 두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한 부류는 아직 자리가 가득 차지 않은 버스에 타고 있을 때 어서 출발하라고 기사를 다그치는 사람들이고, 다른 부류는 자리를 모두 채울때까지 조용히 기다려주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언니는 가능한 많은 사람이 함께 버스를 탔으면 좋겠다고 했다. 반면, 나는 소인배라 오락가락하는 편이다. 가끔은 사람들을 기다려주고 싶을때도 있고 어떨때는 얼른 출발했으면 좋겠을때도 있다.


본인도 용돈을 타쓰는 학생이면서, 남이 먹은 몫까지 밥이나 술값을 내는 사람. 그 또한 버스를 더 많은 사람과 함께 타고 싶어하는 사람이지 않을까. ‘좋은 사람’들에 회의적이었던 것은, 결국 내가 그만큼 좋은 사람이 못 되어서였기 때문이겠지. 그런 깨달음을 주는 '좋은 사람'들에게 부끄러우면서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좋은 사람 덕에 좀 더 나은 사람으로


천재작가님을 향한 편면적 친밀감 덕에, 미담으로 가득한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고, 아직은 좋은 사람들만 나오는 따뜻한 이야기를 자연스레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한 명 한 명의 좋은 사람을 (편면적으로라도) 알아가는 것은 참 좋은 공부가 된다. 당장 내가 좋은 사람으로 탈바꿈하지는 못해도,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게 되기 때문이다. 노력을 거듭하다 보면, 버스가 가득 찰 때까지,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떠날 수 있을 때까지 기꺼이 출발을 기다리는 일이 좀 더 많아지지 않을까. 


책 잘 읽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