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크 엘링턴(1899. 4. 29 ~ 1974. 5. 24)
전 편의 루이 암스트롱과 이번 글의 듀크 엘링턴은 동시대 사람이나 교류가 많지 않았습니다. 둘 다 1920년대 재즈가 음악사에서 하나의 틀로 자리 잡을 때 기여한 부분은 지대합니다만, 엘링턴이 기여한 부분과 암스트롱의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사치모가 "재즈의 기틀을 확립"한 거장이라면 듀크는 "스윙 재즈의 부흥"을 일으킨 마에스트로입니다.
팝스가 "짜장면 맛집(포장가능)" 아저씨라면 엘링턴은 "짬뽕 맛집(룸완비)"을 운영하는 주인장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두 거장의 차이입니다.
엘링턴의 생애를 알아봅니다.
1899년 4월 29일 워싱턴 DC에서 피아니스트인 부모(제임스와 데이지) 사이에서 태어납니다.
7세에 피아노 수업을 받기 시작했지만 야구에 더 관심이 있었던 엘링턴은 14세 때 도박장에서 들은 피아노 연주를 계기로 연주자의 길로 접어듭니다.
1914년 15세 때 첫 작품 Soda Fountain Rag을 작곡합니다.꾸준히 랙타임 피아노 작품을 흉내 낸 그는 악보 읽는 법을 배우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갑니다.
또한 피아니스트 제임스 P. 존슨과 팻츠 월러, 클라리넷 주자인 시드니 베세 등의 조언을 받으며 1916년 워싱턴 DC 부근의 클럽과 카페에서 연주를 합니다.
1917년 첫 밴드를 만든 그는 워싱턴 DC, 맨하탄의 할렘, 아틀란틱 시티, 뉴저지 등의 클럽에서 연주하였고
1923년 맨하탄의 할리우드 클럽에서 활동하면서 1924년 8장의 음반을 발표합니다.
1926년 악보 출판업자인 어빙 밀즈의 주선으로 여러 음반사에서 취입을 합니다.
1927년 킹 올리버 후임으로 할렘의 코튼 클럽에서 활동을 시작하는데 Creole Love Call과 Black and Tan Fantasy가 인기를 얻었고 1929년 현대 작곡가들과의 교류를 통하여 고전음악에 영향을 받습니다.
1930년대 초는 대공황으로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Mood Indigo(1930), Sophisticated Lady(1933), Solitude(1934), In a Sentimental Mood(1935) 등의 대표곡을 발표하고 해외 공연을 시작합니다.
1930년대 중반 이후 대공황이 점차 진정되면서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젊은층 사이에서 스윙 댄스가 핫하게 됩니다. 이 스윙 시대에 엘링턴의 경쟁자는 클라리넷 주자인 배니 굿맨이었고, 듀크 엘링턴 밴드는 엘링턴의 탄탄한 작곡을 기반으로 분위기와 무드 그리고 정제된 연주를 들려줍니다.
1930년대 후반에는 빅밴드 편성에서 6인조, 8인조, 9인조 구성으로 작품을 발표하는데 조니 호지스(as), 쿠티 윌리엄스(tp), 로렌스 브라운(tb) 등이 두각을 나타냅니다.
1939년 빌리 스트레이혼이 작사가로 듀크와 작업을 시작합니다. 스트레이혼은 이후 약 30년간 작곡, 편곡, 작사, 피아노 연주 등을 하면서 듀크의 작품을 가다듬습니다. 참고로 듀크가 작곡한 작품은 약 6천여 편에 달합니다. 스트레이혼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1941년 발표한 스트레이혼의 작품 Take the "A" Train은 엘링턴 밴드의 테마 곡이 됩니다.
1940년대에는 지미 블랜톤(db), 벤 웹스터(ts), 레이 낸스(tp, vl) 등이 그의 밴드에 들어옵니다.
1939~1945년 2차 세계대전 속에서 엘링턴은 자신의 빅 밴드를 운영하였으며 1951년 소니 그리어(d, v), 로렌스 브라운(tb), 조니 호지스(as)가 밴드를 떠나고 폴 곤슬레이브(ts)와 클락 테리(tp)가 들어옵니다.
1950년대 엘링턴의 음악은 주류와 동떨어져 있습니다.
이는 루이 암스트롱이 후배 연주자들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전통 재즈 스타일을 추구한 부분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러나 1956년 7월 7일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을 통해 성공적인 컴백을 합니다.
이후 1960년 전후에는 스트레이혼과 영화 음악 작업을 하였고 1960년대 초반에는 카운트 베이시, 루이 암스트롱, 콜맨 호킨스, 존 콜트레인, 찰스 밍거스, 맥스 로치 등과 녹음을 합니다.
1960년대 중반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 주목할 만한 앨범들을 발표합니다.
1974년 5월 24일 폐암과 폐렴 합병증으로 사망합니다.
듀크는 재즈사에서 1930년대 스윙 재즈의 붐을 일으킨 주역입니다. 그는 뛰어난 피아니스트이자 밴드 리더로서 엄청난 다작을 합니다. 듀크를 재즈 역사상 가장 뛰어난 거장 5인 중 한 명에 꼽은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의 대표작은 재즈 스탠더드가 되어 많은 연주자들이 커버하고 있습니다.
듀크가 작곡한 재즈 스탠더드는 어떤 게 있을까요?
1986년 GRP의 기획 앨범위의 앨범은 듀크 엘링턴의 아들 머서 엘링턴이 듀크 엘링턴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여 제작했습니다. 수록된 12곡 중 10곡은 듀크의 대표 작품입니다. 솔로 주자들이 뛰어난 기량을 발휘합니다. 특히 마지막 곡 Take The "A" Train은 빌리 스트레이혼의 작품으로 윈튼 마살리스의 형인 브랜포드 마살리스가 테너 색소폰을 연주합니다.
듀크의 활동 기간이 60년 정도이니 방대한 그의 작품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선 여기에 실린 곡을 중심으로 듀크를 접한다면 출발은 순조로울 겁니다.
이 외에도 많은 편집 앨범과 영화 앨범이 있으니 듀크의 음악을 따라갈 때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의 정체성은 항상 스윙임을 잊지 않고 감상하시면 좋을 것 같군요.
재즈에서 얘기하는 스윙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재즈가 다른 음악과 구분되는 특징으로서의 스윙입니다.
그러니까 연주가 오르락내리락한다는 것인데 재즈 특유의 리듬감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여기에 연주자들의 역량이 발휘되는 즉흥 연주와 블루 노트(반음계)가 어우러지면서 우리가 익히 아는 재즈가 만들어집니다.
또 하나는 재즈의 한 장르로서의 스윙입니다.
즉, 듀크 엘링턴이 추구한 빅 밴드 편성의 오케스트라, 듀크의 지휘와 피아노 연주, 그리고 독주자(악기 혹은 보컬)의 연주를 통해 관객의 춤 출 분위기를 돋운 대중적인 재즈로 보시면 됩니다. 1930년대를 스윙재즈의 시대로 봅니다.
스윙은 당시 젊은 층을 상대로 인기를 얻기 시작하였고 대공황의 터널을 통과하면서 소비적이고 유흥적인 분위기에 편승하여 비지니스적으로 성공하게 됩니다.
다음 그림을 보시면 이해가 될 수 있을까요?
스윙, 스윙 댄스(출처: 듀크 엘링턴 공식 홈페이지)한편, 듀크와 그의 오케스트라가 로즈메리 클루니와 협연하여...
듀크와 로즈메리 클루니(출처: 듀크 엘링턴 공식 홈페이지)1956년 <Blue Rose> 앨범을 발표합니다.
1956년 듀크와 로즈메리 클루니 협연작 <Blue Rose>이 앨범의 수록곡 대부분이 듀크의 대표작입니다. 여기에 가사를 붙이고 로즈메리 클루니가 노래를 합니다. 듀크 작품의 보컬 버전으로 색다른 맛이 있습니다.
1956년과 1959년에는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에 참여합니다.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 앨범: 1956 & 1959 그의 생애를 요약하면서 1956년 7월 7일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을 언급했습니다. 왼쪽 앨범입니다. 그의 건재함을 보여주는 명연주입니다. 오른쪽은 1959년 7월 4일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 실황 앨범입니다.
1960년대 초 후배들과의 연주 중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있습니다.
1963년 듀크 앨범 <Money Jungle> 듀크가 그의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며 많은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중간에 7인조(셉텟), 8인조(옥텟), 9인조(노넷) 등의 편성을 시도한 적이 있지만 그의 스타일은 스윙에 맞는 빅 밴드 중심입니다.
그런데 이 앨범은 3인조(트리오)로 매우 이례적인 편성입니다.
게다가 1922년 생의 찰스 밍거스(베이스)와 1924년 생인 맥스 로치(드럼)와 함께 합니다. 듀크 나이 63세군요. 재밌는 사실은 로치는 밥의 대표적인 드러머고 밍거스는 프리재즈의 대표적인 아이콘이라는 겁니다.
1961년 사치모와 듀크의 첫 협연 작품입니다.
1960년대 중반 이후 매우 색다른 Suite 시리즈를 발표합니다.
1966 <The Far East Suite>: 인도, 일본 등에 대한 인상
1970 <New Orleans Suite>: 조니 호지스의 마지막 참여 앨범
1971 <The Afro-Eurasian Eclipse>: 인류의 기원이 동양이라는 사실에 힌트를 얻은 작품
1972 <Latin American Suite>: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칠레, 멕시코 공연의 느낌을 표현
가능하면 듀크의 스윙 작품을 먼저 접하시고 이후 이 연작을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듀크의 음악 여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을 꼽는다면?
듀크의 밴드에서 색소폰 파트를 이끈 조니 호지스입니다.
조니 호지스는 베니 카터와 더불어 빅 밴드 시절을 대표하는 알토 색소폰 주자입니다. 듀크의 작품을 접하다 보면 호지스의 연주가 귀에 들어옵니다. 듀크와 호지스는 1959년 <Back to Back>과 <Side by Side>를 발표합니다.
듀크의 동반자로서 빌리 스트레이혼도 빠질 수 없겠죠?
1950년 앨범 듀크 엘링턴과 빌리 스트레이혼의 피아노 듀엣 이 앨범은 1950년 9~11월 듀크의 아들인 머서 엘링턴이 녹음했습니다.
공동 작곡가로서 듀크와 듀엣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이상으로 듀크 엘링턴의 생애와 주요 작품을 안내해 드렸습니다.
재즈 역사상 가장 많은 곡을 작곡하여 재즈계의 모차르트라로 불리는 엘링턴은 그의 음악적 파트너들, 당대의 뮤지션들, 그리고 자신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며 스윙 재즈라느 가장 대중적인 재즈 스타일과 동일시되는 마에스트로가 되었습니다.
전편에서 소개해드린 루이 암스트롱과 본편의 듀크 엘링턴은 동시대를 살며 아주 오랜 기간 대중의 사랑을 받은 재즈 거장이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스윙 재즈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연주 스타일은 젊은 뮤지션들에 의하여 냉혹한 평가를 받게 되며 새로운 재즈 장르를 탄생시키는 빌미를 제공하게 됩니다. 그 중심에 버드라고 불린 찰리 파커가 있습니다.
다음 편은 찰리 파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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