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미 후보작을 중심으로
2025년 2월 2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LA 크립토닷컴 아레나에서 진행되는 제67회 그래미 시상식. 후보작은 2023년 9월부터 2024년 8월까지 발표된 작품을 기준으로 선정됩니다. 팬데믹이라는 불가항력적 사건은 음악의 소재로도 활용되었고 많은 뮤지션들이 새로운 형태의 공연을 시도하게끔 하였습니다. 21세기 현대 재즈는 일백년 동안 형성된 다양한 하위 장르와 스타일을 토대로 새로운 음악 어법과 형식으로 또다른 모던 재즈를 만드는 과정이자 그에 따른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밥을 거친 재즈의 전설들과 후배들이 몇 대에 걸쳐 가지를 뻗으며 우리는 재즈의 다양성, 이질성, 혼종성, 통합성 등을 실시간으로 경험하고 있습니다.
본론으로 이번 그래미의 후보에 오른 최우수 보컬 재즈 앨범 다섯 편을 커피와 함께 감상합니다.
Christie Dashiell: Journey in Black
진한 에스프레소의 여운
크리스티 대시엘은 1988년 9월 8일 워싱턴 D.C.에서 태어나 노스캐롤라이나 주 그린빌에서 성장하였습니다. 부친은 재즈 베이시트인 캐롤 데시엘 주이어입니다. 하워드 대학, 맨해튼 음악원을 거쳐 재즈 보컬리스트로 성장한 그는 경력에 비하여 작품은 현재까지 두 장입니다. 최근 2~3년 사이 사마라 조이가 슈퍼노바처럼 등장하였고 조이 이전에는 세실 맥로린 살반트가 여성 보컬의 리더십을 유지하였는데 대시엘의 등장은 신선하기까지 합니다. 후보작은 대시엘의 2집으로 2016년 데뷔 앨범 <Time All Mine> 이후 7년 만의 작품입니다. 라인업은 쉬드릭 메첼(오르간), 앨린 존슨(피아노, 키보드), 로미르 멘데스(베이스), 캐롤 본 대시엘 III(드럼), 마퀴스 힐(트럼펫)로 피아노-베이스-드럼의 리듬 섹션 트리오와 다른 편성으로 소울적인 느낌이 풍부한 보컬 재즈를 들려줍니다. 총 9곡 중 7곡이 대시엘의 오리지널입니다.
Kurt Elling & Sullivan Fortner: Wildflowers Vol. 1
바닐라 커피의 향
2000년대 이후 남성 재즈 보컬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보컬로 커트 엘링(1967~)과 그레고리 포터(1971~)를 꼽을 수 있습니다. 둘의 보컬은 피부색만큼이나 다른 느낌을 줍니다. 포터가 육중한 체구를 통해 깊이 있는 목소리를 들려준다면 엘링은 팝적인 스타일로 부드럽고 달콤한 목소리를 연출합니다. 대학때까지 합창단에서 노래를 부른 엘링은 다른 재즈 보컬과 구분되는 음색을 보여주는 동시에 토니 베넷, 멜 토르메, 프랭크 시나트라, 마크 머피, 해리 코닉 주니어 등과 뮤지컬의 스토리텔러 예를 들면 물랑루즈의 이완 맥그리거를 섞은 팔색조같은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설리반 포트너(1986~)는 힙한 트럼피터 로이 하그로브(1969~2018)의 마지막 콤보에서 7년간 활동한 피아니스트입니다. 리더로서 네 장의 앨범을 발표하였고 세실 맥로린 살반트, 사마라 조이, 커트 엘링 등 시대를 이끄는 재즈 싱어들의 작품에 참여하였습니다. 포트너의 반주와 엘링의 바닐라향 보컬은 슈베르트의 가곡 <겨울 나그네> 듀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와 제럴드 무어를 생각나게 합니다.
Samara Joy: A Joyful Holiday 위너
달콤한 시럽과 시나몬을 뿌린 카페 모카
2023년 10월 27일 발매된 크리스마스 앨범으로 여섯 곡의 캐롤을 수록한 EP입니다. 기타, 베이스 기타, 피아노, 더블 베이스, 드럼, 보컬 등 여러 세션이 조이의 목소리를 받쳐줍니다. 기타에는 팻 메스니의 뒤를 잇는 젊은 거장 파스콸레 그라소가 참여하였고 피아노에는 벤 패터슨과 설리반 포트너가 함께 합니다. 커트 엘링의 <Wildflowers Vol. 1>, 사마라 조이의 <A Joyful Holiday>가 최우수 재즈 보컬 앨범 후보에 지명됨으로써 포트너의 연주가 더욱 각인됩니다. 조이는 나이를 뛰어 넘어 깊은 표현으로 1940년대를 지배한 재즈 디바들을 모두 소환합니다. 이 후보작은 소담스런 눈송이가 소리없이 내리는 크리스마스 풍경에 잘 어울립니다. 앞으로도 그의 작품은 그래미의 지명을 꾸준히 받지 않을까 싶습니다.
Milton Nascimento & Esperanza Spalding: Milton + Esperanza
적당한 산미에 밸런스가 좋은 갓볶은 커피
베이스 연주자 겸 싱어인 에스페란자 스팔딩(1984~)은 2000년대 중반 재즈신에 등장하면서 센세이셔널한 뮤지션이 되었습니다. 스팔딩은 작곡가로서도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는데 2024년 현재까지 발표한 총 10장의 앨범은 새로운 시도를 통하여 재즈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합니다. 밀톤 나시멘토(1942~)는 브라질 출신의 기타리스트 겸 싱어송라이터입니다. 본국에서 명성을 쌓은 나시멘토는 웨인 쇼터의 1975년 앨범 <Native Dancer>에 참여하여 포르투기 특유의 뉘앙스가 어우러진 보컬과 기타를 선보였습니다. 이 앨범은 그 해를 대표하는 작품이자 쇼터의 주요작으로 자리매김합니다. 나시멘토가 참여한 미국 재즈 뮤지션들과의 협연작은 뛰어납니다. 스팔딩과 나시멘토, 할아버지와 손녀뻘인 두 거장이 2023년 브라질에서 총 16곡을 녹음하였습니다. 둘의 오리지널과 팝, 재즈 스탠더드 등을 수록하였고 폴 사이몬, 다이앤 리브스, 리앤러 해버스, 마리아 가두, 깅가, 팀 베르나르지스, 캐롤리나 쇼터(웨인 쇼터의 미망인) 등 미국, 영국, 브라질 뮤지션들이 참여하였습니다. 녹음 당시 81세인 나시멘토의 목소리는 녹슬지 않았고 작은 성량에 포르투기로 부르는 스팔딩의 보컬도 매력적입니다.
Catherine Russell & Sean Mason: My Ideal
디카페인 커피의 담백함과 은은한 향
뉴욕 주 출신인 캐서린 러셀(1956~)은 50세가 되던 2006년 솔로 앨범을 발표한 재즈, 블루스, 록 싱어입니다. 이전에는 스틸리 댄, 데이비드 보이 밴드 등에서 백 보컬로 활동하며 커리어를 쌓았습니다. 숀 메이슨(1998~)은 노스캐롤라이나 주 출신 피아니스트입니다. 위에서 소개한 나시멘토와 스팔딩의 나이차이가 마흔 둘인데 러셀과 메이슨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연령차를 보이는 뮤지션들의 작품이 그래미에서 동시에 후보에 지명되는 경우가 있었는가 싶습니다. 게다가 최우수 보컬 재즈 앨범으로. 보컬과 피아노 듀오의 노래와 연주는 담백합니다. 그리고 은은한 향이 서서히 퍼지면서 마음을 녹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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