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너: 소니 롤린즈
소니 롤린즈(1930~)
테너 색소폰을 얘기할 때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만한 뮤지션
존 콜트레인보다 어리지만 먼저 성공한 1950년대 대표 주자
트레인과 비교기 되거나 경쟁을 하였던 현존 최고의 즉흥연주자 겸 천재
80대의 나이에도 연주 활동을 하였던 재즈계의 산증인
Sonny Rollins
출생: 뉴욕, 1930년 9월 7일
활동기간: 1947~2014년
현재: 93세
1930년 생 소니 롤린즈는 하드밥 색소폰 연주자로 1950년대 중반부터 인기를 달립니다. 당시 네 살 위의 존 콜트레인보다 더 잘 나갑니다. 둘은 테너 색소폰 주자로 자주 비교가 됩니다만 음악 스타일이나 여정이 달랐으니 동일선상의 비교는 어려울 겁니다. 롤린즈의 색소폰은 한 마디로 호방한 음에서 뿜어 나오는 즉흥 연주라 할 수 있습니다. 색소폰 콜로서스(거인/거상)라 불리며 70년간 활동하였습니다.
이 위대한 테너 색소폰 연주자는 2014년 공연을 마지막으로 연주를 중단합니다. 공식적인 은퇴 발표는 없었고 나이가 있는 만큼 건강이 서서히 쇠퇴하는 상황에서 조용히 은퇴를 한 셈입니다.
2020년 이후 그의 일상, 삶 그리고 음악
색손폰을 접고 위대한 소니에서 일상으로 돌아온 롤린즈는 하늘을 보며 자연에 귀기울이고 대화하며 자연의 일부가 되는 조용한 여생을 보내고 있습니다. 티브이보다는 라디오를 더 즐기면서 말이죠. 음악에 대한 그의 철학은 인간의 삶과 같다고 봅니다. 삶을 긍정적으로 보고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지 말고 일상을 영위하는 자세... 그의 음악에 대한 지론이기도 합니다.
롤린즈는 현생에 대한 집착이나 먼지로 돌아가는 육체에 대한 의미보다는 정신적인 측면과 사후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즉 현생은 기나긴 여정의 일부이자 업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와 관련된 위대한 연주자들(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 마일즈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 웨인 쇼터, 맥스 로치, 클리포드 브라운 등)은 육체의 존재 유무를 떠나 롤린즈 자신에게는 살아있는 존재라고 믿습니다. 롤린즈는 몇 년 전 인터뷰에서 젊은 시절 콜트레인을 앞서려는 생각에 집착했던 일을 후회하였습니다. 음악과 인생 여정을 마무리하는 시점. 롤린즈는 모든 것을 돌아보며 자연의 일부가 되고 있습니다.
본론으로 소니 롤린즈의 작품 세계를 시대순으로 따라가 보겠습니다.
위의 사진은 블루노트를 견인한 사진작가 프랜시스 울프가 1957년 찍은 롤린스의 모습니다.
뉴욕의 루디 반 겔더 스튜디오에서 명작 <소니 롤린즈 2권>을 녹음하던 때입니다. 당시 롤린스의 나이는 26세. 이미 밥과 하드밥의 인기있는 연주자로 자리매김한 시점입니다.
1950년대 하드밥의 메카인 블루노트에서 발표한 일부 작품입니다.
블루노트에서 나온 어느 앨범도 놓칠 수 없지만 빌리지 뱅가드에서의 라이브를 추천합니다. 가운데 <뉴크의 시간>의 뉴크(뉴컴)는 롤린즈의 애칭입니다. 브루클린 다저스(현재는 LA 다저스)의 투수였던 돈 뉴컴과 롤린즈가 닮아 롤린즈와 친했던 버드가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1950년대 후반기 작품들은 프레스티지를 통해 발표하게 됩니다.
사진은 블루노트 이후 프레스티지에서 녹음한 작품들입니다. 1955년 클리포드 브라운과 맥스 로치의 퀸텟에 참여한 롤린즈는 1956년 브라운이 사망하자 로치와 함께 프레스티지에서 일련의 앨범을 발표합니다. 여기에는 <사운드 오브 소니>, <소니 보이>, <색소폰 콜로서스>, <테너 매드니스> 등 총 9장의 LP가 해당되며 5장의 CD로 재발매되었습니다. 여기서 가장 빛나는 1957년 앨범 <색소폰 거상>은 롤린즈 작품 목록 중 가장 위에 있으며 롤린즈를 상징하는 단어가 됩니다. 참고로 첫 곡 "토마스 성인"은 그의 대표곡으로 1993년 해리슨 포드 주연 영화 <도망자>에도 나옵니다. 이 영화도 명작이지요.
1950년대 후반부 컨템포러리에서 발표한 롤린즈의 명작이 하나 있습니다.
컨템포러리에서 발표한 1957년 앨범 <Way Out West(서부로)>입니다.
버드의 재즈 혁명으로 비밥이 탄생하면서 색소폰은 명실상부한 재즈의 중심 악기로 부상합니다. 버드 뒤를 잇는 후배 연주자들 중 소니 롤린즈와 존 콜트레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둘다 마일즈 데이비스 밴드를 거쳤는데 롤린즈가 1950년대 초반 트레인이 1950년대 중후반입니다. 이후 두 거장은 화려한 솔로 경력을 갖게 됩니다. 이 앨범은 트리오 편성입니다.
소니 롤린즈: 테너 색소폰
레이 브라운: 더블 베이스
셸리 맨: 드럼
이 세 명의 조합은 이번 녹음이 처음입니다. 권총 대신 색소폰을 든 롤린즈는 감상자의 심장을 직접 겨냥합니다.
1950년대에 최고의 연주와 기량을 보인 롤린즈는 짧은 기간의 성공과 인기에 반하여 잠시 휴지기를 갖게 됩니다. 맨해튼 로어 이스트 구역게 살던 롤린즈는 근처의 윌리엄스버그 다리에서 연주를 다듬으며 자신을 돌아봅니다.
아래는 1960년대 복귀 후의 작품들입니다.
왼쪽 사진이 1962년 앨범 <더 브릿지>이고 윌리엄스버그 다리를 지칭합니다. 1960년대에는 RCA, 임펄스 등을 통해 작품 활동을 이어갑니다. 1970년대에는 마일스톤과 계약하여 작품을 선뵙니다.
그리고 다시 롤린즈는 1966년 레코딩을 끝으로 약 5년간 공연 및 음반 작업을 중단합니다. 롤린즈의 담당 매니저이자 배우자인 루실의 격려와 설득으로 마일스톤과 계약 후 작품 활동을 재개합니다. 오른쪽 사진이 그 결과물인 1972년 <넥스트 앨범>입니다. 이후 롤린즈는 2000년까지 마일스톤과 음반 작업을 하였습니다.
이후 롤린즈는 2011년까지 앨범을 발표합니다.
왼쪽 사진의 <Without A Song>은 2011년 보스톤 라이브 실황으로 그의 마지막 녹음입니다.
2001년 9월 11일. 뉴욕 맨하탄 참사가 일어났던 당시 롤린즈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습니다. 나흘 뒤인 9월 15일 보스톤 라이브에서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를 하게 됩니다. 당시 71세였던 롤린즈는 꾸준히 음반 작업과 공연을 해왔지만 늘 그의 전성기(1950~1960년대)와 비교되었습니다.
롤린즈는 앨범명인 첫 곡 "Without a Song"을 담담히 소개합니다. "(참사가 일어난 지금) 적절하지 않지만 제가 좋아하는 곡으로 시작합니다."라며 색소폰에 숨을 불어 넣습니다.
Without a Song(노래 없이)
소니 롤린즈(테너 색소폰)와 클리프톤 앤더슨(트롬본)이 역할을 나누어 곡을 이끌고 있습니다. 스테픈 스콧(피아노), 밥 크랜쇼(전자 베이스), 패리 윌슨(드럼), 키마티 디니줄루(퍼커션)의 리듬 섹션은 겅력합니다. 디니줄루의 아프리카 타악기 연주가 아주 돋보입니다. 중반부 이후 들어오는 스콧의 솔로는 그의 흥얼거림과 잘 어울립니다. 크랜쇼의 워킹과 윌슨의 드러밍은 시종일관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 곡의 몰입감으로 16분 37초의 연주는 오히려 짧게 느껴집니다.
이 한 곡만으로도 노년의 롤린즈가 아직도 건재함을 보여줍니다.
가운데 및 오른쪽 사진인 <로드 쇼> 시리즈는 2008년(1권), 2011년(2권), 2014년(3권), 2016년(4권)에 걸쳐 현재까지 총 4권까지 발매되었습니다. 그의 과거 수십년간의 라이브 연주들을 모아 편집한 기획 앨범들이 되겠습니다.
2004년 미국 예술과학 아카데미 평생 공로상 수상
2006년 아카데미 오브 어치브먼트에 헌액 및 솔로 연주
2009년 오스트리아 과학예술 십자훈장 수상
2010년 미국 예술과학 아카데미의 229명 리더 중 한 명으로 등록 (80회 생일 전 날)
2010년 에드워드 맥도웰 메달 수상 (재즈 작곡가로는 처음)
2011년 예술 훈장 수상 (대통령 버락 오바마 @백악관)
문화예술계가 롤린즈의 음악적 성과와 예술 세계에 대하여 어떤 찬사를 보냈는지 알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
글을 쓰는 9월 현재 롤린즈는 93세가 되었고 그의 현존 자체가 재즈의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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