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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 헤라 Aug 08. 2023

그만 좀 싸워 지겹지도 않아

똑딱똑딱 시계 소리가 내 귀를 때린다.

아빠가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저녁을 다 먹고 8시, 9시가 넘어가면 내 귀에 시계 소리는 탱크소리만큼이나 크게 들리기 시작한다.     


 나는 그렇게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잠을 청한다.     

 

4, 5학년 아마 그보다 더 어렸을 적이었던 거 같다.

사실 어렸을 적 기억이 생생히 잘 나진 않는다. 오래돼서 기억이 흐려진 것인지, 아니면 기억하고 싶지 않아 그 시절의 기억을 나 스스로 저 깊숙이 집어넣어 버린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자다가 나는 소리에 놀라 잠이 깬다.

바로 엄마, 아빠가 싸우는 소리다.

그러면 나는 자는 척 최대한 자연스럽게 몸을 옆으로 돌린다. 그렇게 잠이 깬 나는 그 싸움이 다 끝나고 불이 꺼져야 비로소 다시 잠을 청한다.     

 

그렇게 거의 매일 엄마, 아빠는 싸웠다.

싸우는 이유는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똑같다.

아빠가 술 먹고 늦게 들어온 것 그리고 돈에 관한 것.     

 

나는 그즈음부터 큰 소리가 들리면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리게 됐고, 큰 소리를 내고 싸우는 엄마, 아빠가 나를 두고 떠날까 불안해했다.

그래서 나는 말을 잘 듣는 착한 딸이 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엄마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면 엄마가 기분 좋을 것이고 그러면 나를 두고 가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싸우는 소리, 데시벨이 높은 소리에 유난히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지나가다가 싸우는 아니 그냥 누군가 큰 소리로 이야기만 해도 내가 뭘 잘못했나 하고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이 나 때문에 화가 나서 큰 소리를 낼 리 만무했다.

그러나 불안했다. 나 때문이 아니라는 걸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은 겁이 덜컥 났다.     


 나는 힘이 없으니깐 그리고 나는 착한 딸이어야 하니 엄마, 아빠가 싸우는 소리를 그저 듣고 혼자 견딜 수밖에...     

 

그렇게 세월이 흘러 나는 20살이 넘어 대학생이 되었다. 이젠 나도 어른이고 혼자 살 수 있을 만큼 컸다고 생각한 걸까 아님 싸우는 소리가 더는 듣기 싫어서 참다 참다 폭발한 것일까


 나는 어느 날 엄마, 아빠가 싸우는 가운데로 들어가

  “그만 좀 싸워 지겹지도 않아.”라며 소리를 꽥 질렀다.     

 먹혔다. 처음으로 그렇게 소리 지르는 착한 딸의 모습에 놀라서였을까 아니면 당신들도 지겹다는 나의 말에 동의한 것일까.

그렇게 그날 싸움은 끝났지만 내 말의 효력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싸움은 줄지 않았다.     

 나는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고 혼자 살고 싶었지만, 직장이 서울이라 집에서 나와 혼자 살 명분이 없었다. 나가서 산다고 할 만큼 돈을 많이 벌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떠나고 싶었다. 집에서.

그러려면 집을 나가서 살 합리적인 이유가 필요했다.      

 

집을 나갈 수 없지만 그 시절 일하던 연구소가 너무 바빠 일주일에 한 번은 실험실에서 밤을 새웠고, 집에 가지 않고 실험실에서 쪽잠을 잤다.

그리고 나도 컸으니 엄마, 아빠가 싸우든 말든 관심을 두지 않기 시작했다.

물론 내가 너무 피곤하고 힘들어서 엄마, 아빠 싸움에 참견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런데 소리라는 것이 나에게는 트라우마로 남은 걸까.     

 

결혼 후 아이를 낳고 아이가 우는 소리 징징거리는 소리를 견딜 수가 없었다. 찡~소리라도 아이가 낼라치면 나는 눈이 돌아 아이를 잡았다.

그렇게 예민하게 굴다 보니 내가 이상해졌다.

나도 나 스스로 제어가 되지 않았다.


 어리고 힘없을 때 참을 수밖에 없던 나의 마음속 울분이 나보다 작고 약한 존재가 생기자 그 아이에게 내 울분을 그대로 전달하고 말았다.

내가 미친 걸까? 나는 나쁜 엄마인가? 나에게 모성애가 있기나 한 걸까?

이러다가 무슨 사달이 날 것만 같았다.     

 

나는 회사에 있는 남편에게 전화했다.

  “오빠 나 데리고 병원에 가줘, 나 이상해 나 무슨 일을 낼 것만 같아.”     

 

그렇게 마음먹었을 때 병원에 갔어야 했다.

망설이지 말았어야 했다.

내가 병원 가기 부끄러워 망설이는 동안 나는 아이들에게 나의 우울을 불안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었다. 

내가 느꼈던 불안을 대물림하고 있었다.     


 이대로 있을 수 없었다.


나는 드디어 병원에 가기로 했다. 

그리고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다.     

 

역시나 내 마음속에 오래된 우울함이 불안이 나를 좀 먹고 있었다.

이것들을 떼어내기 위해서는 치료가 필요했다.

근데 나는 여기까지 와서 또 망설이고 말았다.     

 나는 도대체 무엇이 무서워 또 망설이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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