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인은 싱크대 상부장 한쪽이 내려앉았다며 고맙게도 사진과 함께 보내왔다. 수리에 앞서 수리할 부위의 사진은 상태를 파악하고 견적을 내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싱크대 한쪽이 내려앉았다고만 한다면 말 그대로 한쪽이 처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문제가 있는 부위를 있는 그대로 사진으로 찍어 보내오면 상태를 파악하는 데 있어 매우 편리하다. 말만 듣고 처진 싱크대를 다시 원상 복구하면 되겠지! 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다. 사진 속 싱크대는 상판과 하판이 아래로 처지면서 옆판과 결속해 주는 나사못을 뜯고 아래로 처져 있어 언제 떨어질지 위태위태해 보였다.
의뢰인의 집에 방문하여 남편분을 만났다. 싱크대의 상태를 살펴보니 실물은 상태가 더 좋지 않았다. 신속하게 싱크대 상부장을 분해해서 내려놓았다. 파손된 상하판재를 챙기고 나머지 나사못 등의 부속을 비닐봉투에 담아 분실되지 않도록 조치했다.
싱크대 상부장은 뒤쪽에 상부장을 걸 수 있도록 먼저 지지목을 설치한다. 설치된 지지목이 튼튼해야 오래오래 변형 없이 상부장이 걸려있는다. 이번 경우는 상부장에 무거운 물건을 수납했는지 상부장이 파손된 것이다. 상부장이 파손될 정도면 지지목을 점검해 봐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지지목이 흔들리고 있었다. 지지목을 다시 튼튼하게 고정하고 나머지 상부장이 떨어지지 않도록 걸쇠를 걸어 고정을 했다.
공장에서 판재를 재단해서 와이프를 대동해 다시 의뢰인의 집에 방문했다. 이번엔 의뢰인의 아내분이 우리 부부를 맞이했다. 어! 그런데 의뢰인의 아내분이 낯이 익었다. "혹시 제가 이 댁에 방문드렸었나요?" 했더니 "그랬던가요?" 하시는 게 잘 기억이 나질 않으시는 듯했다. 수리할 싱크대를 보니 왠지 낯이 익었다. 투박하게 시트지를 입힌 싱크대(의로인의 아내분이 직접 시트지 작업을 했다고 함)...
앗! 맞았다. 이 댁에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1년 전에도 수리의뢰는 남편분이 하셨고 댁에 방문했을 때는 아내분이 계셨었다. 이번에도 남편분이 수리의뢰를 하셨고 상태를 파악하려 지난번에 왔을 때 남편분을 만났었다. 그리고 자재를 준비해서 본격적인 수리를 하려 왔을 땐 아내분을 만난 것이다. 이제야 퍼즐이 쫘악 맞아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와이프와 한 땀 한 땀 퍼즐을 맞추듯이 튼튼하게 싱크대를 조립해 나갔다. 이렇게 되어 있으니 터질 만도 하지! 하며 상판과 측면판을 결속하는 2개의 나사못을 2개나 더 추가해서 박았다. 상판과 하판을 받쳐주는 지지목에는 걸쇠를 걸어 더 튼튼하게 만들었다. 의뢰인의 아내분이 이온음료를 챙겨주시며 "아~ 이제야 생각났어요! 1년 전쯤인가 방문하셨던 것 같아요!" 해서 다 같이 웃었다.
우리가 수리를 하는 동안에도 의뢰인의 아내분은 우리 주변을 힐끔힐끔 살피듯이 왔다 갔다 하셨다. 수리에 방해가 되지 않으시겠다며 들어가 있겠다고는 하셨지만 궁금하셨던 거 같았다. 드디어 퍼즐이 맞춰지고 싱크대 상부장은 튼튼하게 제자리를 찾았다. 와이프와 나는 자랑스럽게 의뢰인의 아내분을 불렀다. 싱크대 상부장을 뿌듯하게 바라보며 튼튼하게 수리했다며 설명해 드렸다.
의뢰인의 아내분은
"이 싱크대가 내려앉았을 때... 싱크대를 바꿀 수 있겠거니 생각했어요"
실망한 듯한 의뢰인 아내분의 반응을 보곤 나는 깜짝 놀랐다. 의뢰인의 아내분은 말을 이어 나갔다.
"이렇게 튼튼하게 수리가 되었으니 한 5년은 더 써야 할 것 같아요"
옆에 있던 와이프가 내게한마디 했다.
"그러게 적당히 하지 그랬어요~"
그랬다. 의뢰인의 아내분은 낡은 싱크대를 코로나기간 동안 시트지를 입혔던 것이다. 코로나도 끝났고 때마침 싱크대가 무너졌을 때 드디어 싱크대를 바꿀 기회가 이때다 싶으셨다고 하셨다. 그런데 남편분이 내게 수리를 의뢰했고 나는 눈치도 없이 10년은 버틸 수 있게 수리해 놓은 것이다.
"죄송합니다. 적당히 못해서요. 곧 쓰러질 듯하게 했어야 했는데..."
의뢰인의 아내분은 자신에게 공감해주는 우리 부부를 보더니
"아닙니다. 5년 더 쓰면 바꿀 수 있겠지요" 하셔서 우리 모두 웃었다.
의뢰인의 아내분은 와이프를 데리고 다락방을 보여주겠다며 올라갔다. 복층 다락방이 있는 아파트! 아내는 빨강 머리 앤이 꿈을 키워가던 다락방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와이프는 수리보다는 아파트 꼭대기 층에 있는 다락방에 더 관심이 있었다. 의뢰인의 아내분과 와이프는 그새 의기투합했는지 고요하던 다락방 구석구석이 시끌시끌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