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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공업자 Dec 03. 2024

난생처음 집수리

<집수리 마음수리 2>

송파 쪽에 잘 알고 지내는 집수리 사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동탄주변 상가에 일이 있어 와 있는데 일 좀 도와줄 수 있겠냐고 물어왔다. 일은 타일이 뜯겨져 나간 바닥에 미장과 에이콘 수도호수 마감이었다. 어떻게 알고 연락을 했는지 신기할 정도다. 요즘 한창 바쁜 일을 마무리하고 좀 쉬엄쉬엄 쉬어가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말이다.


현장에 도착해 보니 철거팀이 마무리를 마구잡이로 해놓았는지 에이콘 수도호수가 짝짝이로 뚝 절단되어 있었다. 집에 관련된 것들 중에 가장 무서운 것이 전기와 물이라고들 하는데 수도 호스를 이런 식으로 거칠게 절단해 놓다니... 가장 조심해야 할 물인데 말이다.


어려서 집이 쫄딱 망해서 형과 나는 강원도 큰집에 가서 자랐다. 큰아버지는 목공 솜씨가 좋으셔서 집이나 축사, 뒷간 등을 손수 만드셨다. 그때마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 나를 부사수로 두시고 이것저것 돕도록 하셨다. 큰아버지 어깨너머로 난생처음 집수리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마을 도랑의 축대도 사람들과 정비하시는 등 못하시는 것이 없을 정도이셨다. 그때는 힘든 일들이라 너무 하기 싫었지만 먹고살아야 하니 안 할 수가 없었다. 친구들이 뛰어놀고 툇마루에 엎드려 공부를 할 때 나는 축대를 쌓고 시멘트를 고 톱질과 망치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 덕에 군대에 가서도 빠르게 적응하고 바쁘게 지내기도 했다. 그렇게 싫어하던 일을 조금 할 줄 아니 군에서도 쓰임새가 있었다. 삶은 참 아이러니 해서 오래 살고 볼 일이다.   



10여 년 전 명상센터를 인테리어 할 때 수도배관인 에이콘을 처음 접했다. 그전까지는 PVC수도배관을 자르고 본드칠을 해서 연결하는 줄만 알았지 간편하게 부품을 연결해서 끼워 맞추면 되는 에이콘배관은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때마침 예전부터 함께 명상을 하시던 회원부부가 전기온수기를 선물로 가져오셨다. 아뿔싸, 설치는 사람 불러서 하라고 하신다. 전기온수기는 제품가격보다 설치비용이 더 많이 드는데 말이다.

순간 머릿속에 스친 생각은  에이콘호스를 이용해서 설치하면 되겠다 싶어서 근처 철물점을 들렀다. 에이콘호스와 연결부품들을 구입해서 돌아왔다.


콘크리트벽을 타공하고 앙카를 박아 전기온수기를 높이 달았다. 수도와 전기온수기를 에이콘부속을 이용해서 연결했다. 연결은 간결하고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한 삼일정도 지났을까! 명상센터 바닥에 아내와 단열재를 깔고 난방필름을 설치하고 그 위엔 장판을 깔았다. 난방테스트를 한다고 난방을 켜놓았더니 바닥이 따뜻해졌다. 공사로 너무 피곤한 나머지 휴게실로 만들어 놓은 방이 따뜻해지자  아내와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발아래가 물컹했다. 자다가 새벽에 벌떡 일어나 바닥을 짚어보니 정말로 물컹했다. 깜짝 놀라 다른 곳을 밟아 보니 물컹하며 물이 올라왔다. 밤사이 수도가 터진 것이다.


깜짝 놀라 주변을 살펴보니 치~익 하며 전기온수기를 에이콘부속으로 연결한 부위에서 물이 누수되고 있었다. 에이콘 연결구에 손을 대니 그대로 분해되고 말았다. 연결을 잘못한 것인지 제품이 불량품인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주변의 반응이었다. 명상센터는 3층이었고 2층은 수입가구를 전시해 놓은 매장이었다. 1층은 매운탕집이 있었다. 2층에서는 피해가 없도록 빨리 조치하라는 반응이었고 1층에서는 성을 내며 험악한 얼굴로 누수된 수도세와 피해가 생기면 피해보상을  하라는 것이다. 아래층에 물이 내려가지 않도록 최대한 서둘러서 물을 퍼담고 날났다. 그래도 물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층에 전시되어 있던 값비싼 수입가구들만 피해서 물이 천장에서 떨어졌다. 1층 식당엔 어찌 된 일인지 바닥으로 물이 흘러나와서 정작 피해가 하나도 없었다.


회원분들께 SOS문자를 발송했더니 몇 분이 나오셔서 도움을 주셨다. 애써 공사해 놓은 바닥을 전부 드러내고 옥상에 널었다. 그날 날씨는 봄날씨답게 화창하고 따뜻했으며 바람 또한 건조하게 불어 물에 젖은 바닥재와 건물을 순식간에 건조시켰다. 짓궂은 신의 장난 같았다. 다음날 언제 그랬냐는 듯 바닥을 완성시켰다.

동탄건물의 거칠게 잘려나간 에이콘수도배관은 벽틈에 들어있어 커터기를 이용해 반듯하게 자르기 어려웠다. 첼라로 잡고 커터칼로 자르고 해서 에이콘메꾸라(물이 안 나오게 막는 부품)로 막았다. 수도를 틀어보니 약간 길게 나와있던 배관이 미세하게 터져서 물이 가늘고 길게 뻗어 나왔다. 중간이 찍힌 것이다. 다시 첼라로 고정하고 커터칼로 깎고 메꾸라로 막았더니 더 이상 누수는 없었다.


일을 부탁한 사장님은 오갈 때마다 잘 되고 있는지 물어왔다. 본인도 할 수 있으면서 왜 나를 불렸을까! 혹시나 작업 후 누수가 생기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을까! 그 부담감은 마지막에 작업한 내게 고스란히 넘어왔지만 이제는 더 이상 무겁게 작용하진 않는다.


수도배관을 난생처음 작업해 보곤 물난리를 겪었고 그 덕에 트라우마가 생겼었다. 집수리를 하면서 또 수전, 수도꼭지, 수도배관 등을 접했을 때 정말이지! 하고 싶지 않았었다.  예전처럼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감이 생겼다. 고민이 되었다. 그렇다고 마냥 이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나의 선택은 여러 수도 배관을 구입해서 손에 익도록 연결과 분해를 반복해 보는 것이었다. 그 덕에 구조를 알고 원리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니 자신감이 생겼다. 수전을 설치하고 배관을 연결하는 것은 FM대로 하면 된다. 해놓은 작업에 불안감이 생기면 천천히 분해하고 다시 또 하면 된다. 그렇게 하다 보니 작업하다 수도가 터져도 당황하지 않고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 한참 유행하던 동해 커피 자판기 얘기가 나왔다. 탁 트인 바닷가에 가서 달콤한 커피 한잔 하면 참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지인은 크게 정색을 하며 바닷가는 말도 꺼내지 말라는 반응이다. 너무 의아해서 이유를 물었었다. 이유는 아주 오래 전 동해에 갔다가 차 막히고 춥고 배고프고 힘들었다며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고 한다. 이런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은 했을법한 일이다. 그렇다고 다시는 가지 않겠다니...


살다 보니 처음 겪는 힘든 때가 있는 것 같다. 취업이 안되어 좌절했을 때, 회사일로 논쟁을 벌이다 난데없이 폭언과 주먹이 날아왔을 때, 호감을 가지고 있던 사람의 본질을 알았을 때, 빌려준 돈을 떼였을 때, 억울한 누명과 음해를 당했을 때, 실연당했을 때, 몸을 다치거나 아플 때, 그때마다 드는 생각은 때는 지나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때가 되면 다시 온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마냥 앉아서 악몽 같은 때를 두려워하며 기다릴 수만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방안에 들어앉아 때를 피할 수도 없는 것이다. 넋 놓고 당할 수 없기에 대책을 세워야 한다. 먼저 왔던 때를 곰곰이 되짚어 보고 이럴 땐 이렇게, 저럴 땐 저렇게 대처하면 되겠다는 자신만의 공부를 하면 된다. 공부엔 정답은 없다.  그러다 보면 맷집과 여유가 생긴다. 세상엔 공짜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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