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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공업자 Dec 09. 2024

삼고초려

<집수리 마음수리 2>

동네 집수리를 다니다 보면 알게 되는 사람들이 생긴다. 집수리가 계기가 되어 인연이 생기는 것이다. 학원을 운영하는 분이 계시는데 정말 알뜰하고 실천력이 강하신 분이다. 웬만한 보수는 스스로 하시는데 가끔 하다 하다 안되어 고민하다 안되시면 부르곤 하신다. 일을 의뢰한다는 걸 보면 보통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새로 인수한 사무실을 교실로 쓰려고 보니 프로젝트창(밖으로 밀어서 여는 창)의 유리창을 일부 잘라내고 환풍기를 달아 쓰던 부분을 다시 원상복구 해야 했던 것이다. 프로젝트창은 보통 투페어(two pair) 이중창으로 되어있어 일반 유리집에서는 맞춤을 할 수 없기에 전문 공장을 찾아가야 한다. 또 특성상 일반인들이 창을 떼어내기도 힘들기에 의뢰를 한 것이다. 문제는 시간이다. 조만간 창문외부에 선팅지를 붙이겠다고 하니 빨리 조치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진작에 의뢰했으면 좋았을걸 일을 급하게 만들고 말았다.

첫 번째 출발하던 날

오전일과를 마치고 오후에 학원에 들러 프로젝트창을 떼어내었다. 오전부터 흐린 날씨는 눈비가 오락가락하다가 본격적으로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창을 떼어낸 자리는 며칠간 창이 없을 테니 찬바람이 들어오고 눈비라도 들이치면 난처하게 되기에 또 잘 막아놓아야 한다. 그렇다고 알루미늄새시에 못질을 막 해서 막을 수도 없는 일이라 궁리를 해서 못자국이 없게 잘 막아놓아야 한다. 밖은 눈발이 커지며 앞이 안 보일 정도로 퍼붓기 시작했다. 서둘러 창을 떼어내고 석고보드와 다루끼(각목)를 이용해서 막았다. 창문을 맞추기 위해 공장에 가야 하는데 마음이 자꾸 급해지기 시작했다.

커다란 창을 급하게 차에 싣고 8km 떨어진 공장으로 향했다. 눈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퍼붓기 시작했다. 다행히 날이 춥지 않아 도로는 질퍽했지만 눈은 쌓이질 않았다. 눈발이 거세지자 차들이 막히기 시작했다. 고작 3km 왔는데 앞이 보이질 않는다. 이젠 도로에 눈이 제법 쌓이기 시작하니 차들이 미끄러지기 시작하며 서행을 하다못해 정차하기 일쑤였다.


11월, 초겨울 첫눈 치고는 내려도 너무 내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눈 내리는 날씨에 운전은 많이 해보았지만 이렇게 내리는 눈은 흔치 않은 경우다. 차량들이 밀리며 미끄러지기 시작한다. 순간 유턴하는 구간이 나타났다. 싸게 미끄러지며 유턴을 시도했고 다행히 성공해서 사고 없이 집에 들어왔다. 집에 들어와 창밖을 보니 정말 내려도 너무 심하게 내리고 있었다. 이상기후라고는 하지만 "얼마나 내리겠어" 생각하며 내일 아침 일찍이 창을 맡기고 와서 일과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음  새벽 5시 30분에 밖에 나가보니 눈이 엄청 쌓여있었다. 하늘에서는 아직도 내리고 있었다. 눈을 크게 뭉치니 뽀드득 소리를 내며 뭉쳐졌고 힘껏 담장을 향해 던지니 "퍽" 하며 깨졌다. 생각 같아서는 눈사람을 만들고 싶었지만 창을 맡기러 가야 했다.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가지고 나왔다. 우측으로 회전을 하며 올라오다가 주차장입구를 나오려는 찰나 차들이 이미 막혀 있었다. 이 시간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급히 차에서 내려 앞쪽으로 달려가 보았다. 1톤 트럭이 전진을 못하고 눈길에서 미끄러지고 있었다.


다행히 사람들이 밀어 빠져나가고 있었다. 얼른 차로 돌아와 조심조심 눈길을 몰았다. 차량들이 빠져나가고 조금 전 1톤 트럭이 미끄러지던 자리에 내 차량이 도착했을 때 앞서가던 차량이 멈춰서는 바람에 내 차량도 정차하고 말았다. 다시 출발하려는 순간 차량이 나아가질 않았다. 급히 내려 확인해 보니 후륜구동 차륜의 뒷바퀴가 눈길에 미끄러지며 헛돌고 있었다. 창문을 열고 뒤를 확인하니 앞서 걸린 1톤 차량의 바로 그 자리에 빠진 것이다.


누군가 차를 밀었다. 차량이 약간 출렁이자 후진기어를 넣었다 전진기어를 넣었다 하며 차량을 앞뒤로 요동치게 만들었다. 앞뒤로 출렁거림이 심해지자 어느 순간 차량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감사합니다" 크게 소리쳤다. 순간 지하주차장의 다른 출입구가 보여 다시 들어갈까 생각하던 순간, 큰길은 괜찮겠지 하는 생각에 길을 나섰다. 그러나 그 생각은 잘못되었음을 코너를 돌면서 알아차렸다. 이대로 눈밭에 빠져 오도 가도 못하게 된다면 큰일인 것이다.


차량하체가 눈에 긁히는 리를 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신호에 대기할 때는 앞차들이 만들어 놓은 눈두덩을 피해 최대한 눈이 없는 곳에 바퀴들을 정렬하여 다시 출발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큰 도로도 다를 바가 없었다. 수많은 차량들은 서행을 했고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새벽같이 나가면 되겠지! 하는 많은 사람들로 이미 도로는 꽉 차 있었기 때문이다. 눈이 그치지 않고 내렸다. 이대로 가다가 미끄러져 길에 멈춰 서면 교통체증뿐 아니라 추돌사고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초조해졌다.

두 번째 출발하던 아침 집 앞 풍경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을 바짝 차려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후륜구동인 1톤 트럭이 앞에서 미끄러지기 시작한다. 내 차량도 벤차량으로 후륜구동인데 큰일이었다. 마침 어제 유턴해서 왔던 그 자리가 앞에 보였다. 앞차량을 멀리 띄어 놓고 차량이 멈춰 서지 않도록 서행을 하며 유턴을 시도해야 했다. 뒷바퀴가 미끄러지며 드리프트를 하듯 앞바퀴를 중심축으로 컴퍼스를 그리듯 돌고 있었고 무사히 유턴을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차량이 멈추며 눈구덩이에 빠져버렸다. 바퀴들이 미끄러지며 더 이상 나아가질 못했다. 기어를 후진을 넣고 액셀을 밟았다. 차량이 뒤로 살짝 움직일 때 전진기어를 넣고 액셀을 밟으니 아까와 같이 요통 치기 시작했다. 여러 번을 반복하니 차량이 앞으로 튀어 나가며 주행이 가능해졌다.

집 앞 풍경

문제는 집 앞 약간의 언덕길이다. 그 길만 잘 올라간다면 지하주차장에 차를 넣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밀하게 계획을 잘 짜야한다. 집 앞도로는 눈이 쌓여 있으니 멈췄다가는 출발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가던 차량과 거리를 크게 두고는 서행을 했다. 저 코너만 돌면 집 앞 언덕길이 나온다. 차량들이 앞에서 꽉 막혀 있었다 그래도 최대한 거리를 두고 한방에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에 어린아이 걸음보다도 더 천천히 주행을 해나갔다. 순간 앞에 집으로 들어가는 도로에 빈틈이 생겼다. 이때다 싶어 속도를 높여 언덕길을 올라갔고 눈이 수북이 쌓인 단지도로에 들어섰다. 반대편에서는 나가려는 차량들이 미끄러지며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들어가는 도로엔 차량이 한 대도 없었다.

세 번째 만에 도착한 유리공장 앞마당

집중해야 한다. 미끄러지듯 우회전을 했고 차량의 바퀴는 눈길을 미끄러지며 앞으로 전진했다. 저기 코너만 돌면 지하주차장 입구가 보인다. 차량 하체에 눈뭉치가 긁히는 소리를 내며 차량이 앞으로 전진을 했다. 좌회전을 하자 차량이 휘청했지만 도로를 벗어나지는 않았다. 마지막 우회전만 하면 지하주차장 입구에 들어선다. 지하주차장 앞에 수북이 눈 쌓인 과속방지턱만 넘으면 되는 것이다. 핸들을 우측으로 꺾었고 기우뚱하며 차량이 과속방지턱을 넘었다. 컴컴하고 답답한 지하주차장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스타워즈의 전투비행선들이 전투를 마치고 만신창이가 되어 모선에 무사히 들어온 느낌이랄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유리공장을 지키는 제니는 외모와 다르게 완전 순둥이

창문을 맡기기 위해 두 번의 길을 나섰다 실패하고 돌아왔다. 창문은 짐칸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  잘만 누워 있었다. 이게 뭐라고! 이 눈길을 두 번씩이나 나서게 만들다니! 도로는 깜깜한 이른 시간에 하얀 눈을 맞으며 많은 차량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또 어떻게 어떻게 섰다 멈췄다를 반복하며 흐르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생계를 책임지고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선 것이다. 어찌 보면 수리할 창문처럼 별것 아닌 일일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일에 목숨을 거는 것이다. 전쟁 같은 삶! 이 삶의 길 위에 우리는 모두 같은 전우일 것이다. 모두 안녕히 다녀와야 한다. 기다리는 가족을 위해, 반려동물을 위해, 포근한 안식처를 위해 치열한 전쟁터에서 무사히 복귀해야 한다. 목숨을 거는 일은 그 어느 것도 위대하지 않은 일이 없는 것이다.


삼고초려한 비장한 유리창gㅏ

날이 밝아 오며 눈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도로엔 눈이 녹아 흐르고 그 위를 차량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씽씽 달리게 되었다. 또 창문을 싣고 세 번째 만에 공장에 방문할 수 있었다. 낡고 오래된 창문은 깨끗하게 수리되어 학원에 걸리게 되었고 수업을 앞둔 학생들이 너무 좋아한다. 창 너머 화창하게 개인 눈 덮인 세상은 더욱 선명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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