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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공업자 Feb 13. 2024

두통의 원인

<집수리 마음수리>

현관에 들어서니 의뢰인의 집은 밝은 분위기로 깔끔하게 정리 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의뢰한 주방의 후드로 안내를 받았다. 주방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모든 집기와 물건들이 질서 정연 하다고 해야 할까! 주방후드를 살펴봐도 되겠냐고 양해를 구했고 의뢰인도 흔쾌히 허락했다. 주방후드의 전원버튼을 눌렸다. 우~웅 하며 주방후드의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고 잠시 후 후드 전체가 덜덜덜 떨리며 돌아가는 모터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후드를 끄고 거름망을 살펴보니 깔끔했다. 보통 조리를 할 때 후드를 사용했다면 후드거름망에 기름때가 많이 껴 있기 마련인데 그냥 깔끔했다. 의뢰인은 음식을 조리할 때 후드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환기가 안 되는 것이 후드가 고장이라고 했다. 이 후드를 사용하지 않은지 벌써 2년쯤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의뢰인은 두통이 생겼다고 한다.


조리할 때 후드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배기는 어떻게 했을까? 주방의 작은 창문을 열어 놓고 했을 텐데... 그래도 가스레인지에서 나오는 연소가스와 유증 된 기름기들은 어찌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후드 주변의 싱크대 상부장의 문을 손으로 터치해 보았다. 터치했던 손을 살펴보니 끈적한 기름기가 많이 묻어 나왔다. 그때부터 눈에 잘 띄지 않던 기름기들이 후드 주변 곳곳에 묻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깔끔한 주방과 대조적이었다. 후드는 오래되었고 낡아 있었지만 의외로 안쪽은 깔끔한 편이었다. 의뢰인의 말처럼 오래되었고 수명이 다해 교환이 필요했다.    

의뢰인은 다음 주 설 명절 전에 급히 처리해 달라고 했기에 택배가 밀리기 전에 후드를 선택해야 했다. 의뢰인은 기존에 사용하던 통 후드규격과 일치하는 크기를 원했으며 후드 생김새와 기능은 어떤지도 궁금해했다. 가격도 저렴해야 했고 모양새도 깔끔해야 했으며 기능 또한 무난해야 했다. 의뢰인이 선택한 후드를 주문하고 교체시기를 조율했다. 의뢰인은 빠른 교체를 원했지만 의뢰인의 이런저런 사정으로 교체는 며칠 후에야 가능했다.


의뢰인의 집에 다시 방문했을 때는 아내와 함께 갔다. 여러 가지 작업이 겹치다 보니 잔일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고 마침 직장 비번인 아내를 대동했다. 후드의 앞면 커버를 풀어냈다. 후드 안쪽 윗면이 기름기로 가득 쌓여 있는 것으로 보아 배기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기름으로 찌든 후드 본체를 풀어내고 신제품을 설치하기 위해 치수를 측정했다. 측정한 대로 신제품을 설치하는데 좀처럼 맞지를 않고 자꾸 틀어진다. 여러 번 수정하는 과정 속에 후드를 받치고 있던 아내의 손과 팔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우리는 후드를 고정하고 풀기를 반복한 결과 싱크대 상부장의 후드자리가 애초부터 틀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후드가 달리고 이번엔 배기 플렉시블호스(알루미늄 자바라호스)를 교체하고 연결하기에 앞서 기존의 배기호스를 제거했다. 때마침 환기가 잘 안 된다는 의뢰인의 말이 뇌리를 스쳤다. 배기관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배기관 앞이 무언가로 막혀있었다. 직접 살펴본 결과 댐퍼로 보이는 철판이 가로막고 있었다. 이런 곳에 이런 댐퍼가 왜 가로막고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의뢰인에게 관리비 영수증을 보여 달라고 하고 관리실전화번호를 찾아서 걸었다.

나는 환기구에 있는 철판댐퍼가 왜 가로막고 있는지 관리실에 물었고 잠시 후 관리실 직원이 방문했다. 관리실 직원도 알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이렇게 환기구가 막혀있으니 후드가 돌아갈 때마다 숨이 넘어갈 듯 우~웅 우~웅 울며 떨었던 것일까! 환기구를 가로막고 있던 철판을 제거했다.

후드가 설치되고 전원스위치를 눌렀다. 후드가 작동하며 주방의 공기가 환기되기 시작했다. 의뢰인이 활짝 웃으며 기뻐한다. 몇 년 만에 주방후드가 제대로 작동하니 주방공기가 금 새 달라졌다. 조리할 때마다 답답했던 주방에 숨통이 트인 것 같아 살 것 같다는 의뢰인의 표정이다.

음식을 조리할 때 환기가 안 되면 미세먼지로 폐에 안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고 두통이 생길 수도 있겠다. 그동안 두통의 원인이 환기가 안 되어서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의뢰인이 그동안 답답한 주방에서 어떻게 조리를 했는지 의문이라는 말을 나눴다.

환기구의 댐퍼는 무엇일까? 궁금증이 생겨 가끔 인터넷에 검색을 시도했다. 어느 순간 그것이 ‘방화댐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방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시 화기가 공용환풍구를 통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되어 있는 장치였다. 평소엔 납으로 되어있는 연결고리가 달려있다 뜨거운 열기가 발생하게 되면 납이 녹으면 스프링장치에 의해 막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가끔 노후되며 고리가 끊어져 환기구를 막는 것이다. 안전장치가 오히려 독이 되는 일이 발생한다. 그것을 주방을 사용하는 사람이 알 수가 없는 것이다. 환기가 안 되는 이상한 일이 발생하면 누구에게든 물어보고 조치해 달라고 해야 할 일들을 하지 않는 것도 문제인 것이다.

어느 날 문득 평소와 다르게 이상한 점을 발견하거나 느껴진다면 분명 어디에선가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 사소한 점을 무시한다면 어느 순간 크게 화가 닥칠지도 모를 일이다.

결과엔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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