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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공업자 Feb 20. 2024

분위기

<집수리 마음수리>

저녁 8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동네플랫폼 채팅알림음이 울렸다. 사용하던 비데를 철거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이 시간에 연락이 오는 경우는 직장인들이 대부분이다. 미루고 미루던 일들을 혹시나 가능할까? 하는 마음에 연락하는 분들도 계신다.

늦은 저녁시간이라 씻고 저녁 먹을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내게 연락하는 것만으로도 인연인가 싶어 답장을 했다. 가급적이면 지금 해줄 수 있느냐는 요청이었다. 잠시 짧게 고민하다 방문하겠다고 메시지를 남기니 감사하다는 답장이 왔다.

곧이어 수원과 용인의 경계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는 용인에 속해 있고 근처 수원에도 같은 명의 아파트가 있다고 했다. 헷갈리면 안 된다고 친절하게도 당부했다. 그 당부 덕분에 헤매지 않고 잘 찾아갈 수 있었다.


비데를 철거하는 것은 어찌 보면 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을 불러 철거해 달라고 하는 이유는 있기 마련이다. 

아니나 다를까!  비데가 설치되어 있는 변기는 생김새가 깔끔하게 뒷부분 아래부위까지 깊게 마감이 되어 있어 비데를 고정하고 있는 부속을 풀기 매우 어려웠다. 

손조차 들어가기 힘들어 욕실 바닥에 드러누워야만 했다. 깔고 누울만한 박스를 좀 달라고 의뢰인께 부탁하니 큼지막한 박스를 가져다 주셨다. 

그러고 보니 욕실 바닥은 너무 깔끔했다. 그냥 누워도 될 성싶었지만 예의상 박스를 깔고 누웠다. 변기도 너무 깔끔했다. 

누워서 손을 깊게 넣으니 비데의 고정부품이 손에 닿아서 풀 수 있었다.


욕실 바닥에 누우니 의뢰인은 미안했는지 자신도 남편과  풀다가 못 풀어서 부탁했다고 한다. 어려운 거 의뢰해서 미안하다고 한다.

맞은편 부품은 더욱 좁아 풀기 어려웠지만 어찌어찌해서 풀어내었다.

의뢰인은 변기를 끌어안고 누워 쉽지 않은 작업을 하는 모습에 연신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얼른 화제를 돌려 유난히 깔끔한 의뢰인의 집이 인상 깊다고 했다. 의뢰인은 치우지 않아 집안이 엉망이라고 한다.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정돈된 집안이 엉망이라니 말도 안 돼! (속마음이 속삭였다)

나는 와이프와 집에 들락거리기만 하는 달팽이 생활을 해서 집안이 엉망이라고 했다. 

의뢰인의 집에 비하면 정말 난장판에 가깝다.

의뢰인은 바빠서 그런 것이 아니냐고 했고 난 우리 부부의 습관이라고 했다. 

'집에서 만큼은 좀 풀어지고 싶었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롭게 풀어진 달팽이 집에 들어와 씻고 저녁을 먹고 아내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그때 동네플랫폼의 알림이 울려 살펴보니 댓글이 달렸다.

댓글을 확인하는 순간 깜짝 놀랐다. 


내가 정말 그렇게 행동했다고!!!

나도 모르게 의뢰인의 집 분위기에 따라 작업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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