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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공업자 Feb 27. 2024

소변기는 과학입니다

<집수리 마음수리>

늦은 오후 한통의 전화가 왔다. 지난달 수리를 의뢰했던 사람이라고 하며 기억하느냐고 했다. 말하는 억양과 분위기로 봐서는 수리한 것에 문제가 생겼다는 직감이 들었다. 어디시냐고 물었고 미용실 개업한 집이라고 했다. 그제야 순식간에 지난 일로 의식이 이동하며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날은 몹시도 추운 일요일이었다. 한파가 지속되다 보니 동파되었다는 뉴스가 자주 올라오고 있었다. 그날따라 몹시도 추웠고 급한 수리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며 몸을 녹일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밖은 이미 어둠이 내려 고 있었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전화가 걸려왔다. 개업을 준비 중인 미용실인데 남자 자동소변기가 망가져 작동을 하지 않는다는 문의였다. 개업을 준비 중인데 오늘 수리해 줄 수 있느냐는 말에 뿌리치기에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마침 남자자동소변기 부품도 가지고 있었기에 잠깐의 망설임이 있었지만 곧 방문하겠다고 했다. 그래! 개업집인데 대박이라도 나라고 속 시원하게 수리해 주자!라는 마음이 일었다.


거리도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다. 바람이 차가웠고 해는 져서 이미 깜깜한 밤이 되었다.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상가 앞에 도착하여 안으로 들어섰다. 개업을 준비한다는 원장님은 수리비를 듣더니 20%가 넘는 금액을 깎고는 무작정 해달라고 한다. 이왕 왔는데 기분 좋게 수리하자! 마음을 먹고 소변기를 살펴보았다. 소변기 상태는 언제 적 것인지 노후가 되어 수돗물을 잠그는 밸브가 작동하지 않았다. 수도계량기 밸브를 잠가 전체 수도를 차단해야 작업이 가능했다. 원장님께 수도계량기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더니 모른다고 한다. 그럼 누가 아느냐고 했더니 인테리어업자가 알고 있다고 한다. 빨리 전화를 해서 알아보라고 하니 그제야 전화를 한다.


인테리어 업자는 수도계량기가 주차장 바닥에 있다고 했단다. 주차장엔 차들이 이미 주차 중인데 일요일 밤에 차를 빼달라고 하면 기분 좋을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개원을 준비하는 원장님은 태연하고 여유로웠다. 주차되어 있는 차의 연락처에 전화를 하니 한참 만에 잠긴 목소리가 받는다. 수도수리가 있어 차를 빼달라고 부탁하니 전화를 뚝 끊더니 한참 후에 나타나 차를 옮겨주었다. 수도 계량기의 덮고 있던 박스에는 약간의 물기가 있었고 물이 손에 닿으며 차갑게 냉기가 올라왔다. 소변기의 밸브는 너무 노후되어 잘 풀리지도 않았다. 무리하게 풀다가 수도 배관이라도 상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조심스럽게 밸브를 풀어내고 새로운 제품으로 갈아 끼웠다. 물 내림 테스트를 여러 번 반복하고 원장님을 불렀다.


남자소변기는 앞에 서서 4~초 정도 있으면 자동센서가 작동하며 수돗물이 흘러나온다고 설명했다. 예전에는 소변기 앞에만 가도 물이 뿜어져 나왔는데 요즘은 수돗물 절약차원에서인지 소변기 앞에 서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차가운 바람과 추운 날씨에도 기분 좋게 수리를 마치고 돌아왔던 기억이 있었다. 대박나라는 말과 함께.


남자 자동소변기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한다. 언제부터 그랬냐고 물으니 수리하고 간 날부터 그랬다고 한다. 아예 작동을 하지 않고 소변냄새도 심하다고 한다. 알카라인 건전지까지 무상으로 갈아주고 잘 작동하던 소변기가 달아주자마자 작동을 안 한다니 난감했다. 심지어 소변기에 소변이 항상 묻어 있었다고 한다.


미안한 마음에 급하게 다시 새로운 제품을 구입해서 방문했다. 모양이 다른 더 좋은 제품으로 말이다. 미용실 원장님은 퉁명스럽게 소변기를 가리키며 고장이라고 한다. 소변기 앞에 섰다. 속으로 하나 둘 셋 넷 다섯을 셈과 동시에 소변기에서 물이 터져 나왔다. 다시 뒤로 물러섰다. 소변기에서 물이 터져 나온다. 소변을 보고 나면 세척을 하는 것이다.


남자소변기는 앞에 서면 소변 준비 자세에 한번 물을 뿜고 소변을 다 보고 나서 자리를 떠나면 세척하는 물이 뿜어져 나온다.


원장님을 불러 소변기엔 이상이 없다고 하니 나만 오면 소변기가 작동한다고 한다. 원장님 앞에서 소변기에 서며 하나 둘 셋 넷 다섯을 셈과 동시에 물이 터져 나온다. 뒤로 물려 서니 물이 터져 나온다. 소변기에는 문제가 없었다. 원장님께 다시 남자소변기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는데 원장님은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주머니 천을 뒤집어 까며 먼지를 털어낸다. 설명을 듣지 않는 것이다. 그러며 하는 말이 설명해도 남자소변기를 어찌 아냐며 모른다고 한다.  


그날 가지고 간 더 비싼 소변기센서로 교체를 해드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변기에 이상이 있다고 한다면 배상하겠다고 했다. 더 이상 방법은 없다.


남자 화장실에 가면 여자들이 모르는 이런 문구들이 있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

-한걸음만 앞으로

-당신은 명사수입니다.

-정조준

-흘리면 자른다.


남자 공용화장실엔 소변기 자동센서가 정상작동을 해도 항상 소변이 묻어 있고 떨어져 있는 일은 흔한 광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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