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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공업자 Mar 05. 2024

중재

<집수리 마음수리>

공구 캐리어를 끌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찬바람이 강하게 밀쳐왔다. 순간 케리어에 실려 있던 빈 전등박스가 바람에 나동그라졌다. 1층 한 컨에 새워둔 차량에 공구 캐리어를 싣고 뛰어가 나뒹구는 빈 전등박스를 가로채듯 집어 차량에 실었다 3월 꽃샘추위에 찬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속은 후련했다. 며칠간 무거웠던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니 한결 가벼워졌다.


며칠 전 새시에 문제가 생겼다는 수리의뢰를 받았다. 안내받은 주소지에 도착해서 보니 층수가 제법 높은 아파트는 전망이 매우 좋았다. 날씨도 화창하여 바깥풍경을 감상하며 새시를 수리하고 있는데 한통의 전화가 왔다. 자신을 청소업체 직원이라고 소개를 하고는 오늘 동탄의 한 아파트에서 청소를 하다 전등갓을 떨어트렸다고 했다. 전등갓이 깨지며 산산이 부서졌다며 전등갓을 하나만 구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전등갓하나 구하는데 1~2만 원이면 되지 않겠냐며 하나만 구해서 달아달라고 한다. 마치 그냥 마트에서 물건 사듯 조치하면 되는 듯 너무 쉽게 말한다. 자신들은 청소를 마치고 다른 장소로 이동한다고 했다.


문제의 전등갓의 사진을 요청하니 두 장의 사진이 왔다. 그런데 사진 상의 전등은 한 장소에 두 개가 달려있었다. 방이 아니라 거실의 등이었던 것이다. 동일한 등이 두 개 달려있는 거실의 등을 파손한 것이다.

청소업체 직원에게 똑같은 모양의 등을 구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렸다. 문제는 그뿐만 아니라 등이 두 개라는 점이다. 똑같은 등 두 개를 짝짝이로 놓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고 청소업체직원은 심각성을 깨달은 듯했다. 그제야 심각성을 알고 긴장하기 시작했다.


나는 일단 현장에 방문해 보겠다고 했다. 현장에 가보는 것이 가장 현실적으로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장엔 이사가 한창이었다. 등을 살펴보니 평범하게 구입할 수 있는 제품이 아니었다. 난처하기는 임차임도 마찬가지였다. 청소업체직원의 실수로 등을 파손했으니 어찌해야 할지 난감한 문제였다. 청소업체와 잘 상의해서 처리해 달라고 한다. 청소업체의 외국인 직원이 실수로 파손했다고 한다.

비슷한 등을 찾기 위해 거래처에 사진을 보냈다. 거래처에서도 같은 등은 구하지 못할 것이란 말을 한다. 청소업체는 저렴하고 비슷한 등을 구해달라고 하고 임차인은 같은 등을 구해달라고 한다.

밤늦도록 인터넷쇼핑몰을 살펴보며 비슷한 등을 찾았다. 등의 생김새가 비슷할수록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문제는 같은 등이 없다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나란히 달려있는 두 개의 등을 같은 것으로 달아놓는 것이 제일 쉬웠다. 문제는 마찬가지로 돈이었다.


전화로 청소업체 직원을 설득했다. 가장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같은 등급의 등을 두 개 모두 교체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상황파악이 되었는지 청소업체 직원은 저렴하게 해달라고 부탁을 한다. 외국인친구와 자신이 반반씩 부담해야 한다고 했다. 예상금액을 입금해 주겠다고 해서 얼추 계산한 금액과 계좌번호를 보냈다.

마음이 약해졌다.


업체에 최대한 비슷한 등급의 등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을 하니 가격이 만만찮게 나왔다. 임차인에게 등의 샘플을 보내고 선택하라고 했더니 알아서 해주되 불빛이 은은한 것으로 해달라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알아서 척척 해주는 것이다. 그것도 은은한 불빛이라니...

그런 제품이 있는지 또 한참을 찾았다. 거래처에서도 더 이상은 찾아 봐줄 수 없다며 난처해한다.

가장 비싼 등이 기존 등과 흡사했다. 남는 금액이 없었다. 그래도 빨리 정리하고 싶어졌다. 청소업체와 임차인 사이에서 그만 힘들어하고 싶어졌다. 자유롭고 싶었다.

주문한 등이 도착했고 임차인이 원하는 저녁 7시에 맞춰 등을 달아 주었다. 찬바람이 싱싱 부는 오늘이 바로 그날인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일정을 바꾸고 전등을 찾아 여기저기를 다니고 부탁했었다. 그런데 정작 남는 이익이 없었다. 그래도 마음만은 후련했다.

어느 날 문득 예고 없이 날아든 전화 한 통에 일상이 뒤죽박죽 되었다.

정작 부탁한 청소업체 직원의 얼굴은 본 적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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