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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공업자 Mar 19. 2024

어르신의 유모차

<집수리 마음수리>

“이봐요? 이것 좀 옮겨줘!”
 “네? 제가 지금 일하는 중이거든요!”
 “아! 이것만 옮겨 달라고!”
 “어르신? 제가 지금 동료들하고 일을 하고 있어서요!”
 “아~ 그러니까 이것을 저기다가 옮겨 달라고!”
 어르신의 목소리는 힘이 있고 단호하셨다. 어찌나 우렁차신지 들어주지 않으시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나는 오랜만에 집수리 동료들과 하남에 모여 45년 된 3층 상가주택을 인테리어 하고 있었다. 철거작업 중에 집안에 있는 노후된 가스레인지와 싱크대, 문짝의 철붙이 경첩 등을 철거하여 건물 뒤 공터에 쌓아 놓고 있었다. 그걸 지나가시던 할머님이 보셨는지 눈빛으로 찜해 놓으시고 때를 기다리고 계시다 내가 나타난 것이다. 나는 뜯어놓은 폐자재들을 3층에서 1층 공터로 내려놓고 있는 중이었다.

할머님의 큰 목소리에 웃음이 나왔다.


“예, 어디다가 실어드릴까요?”

“저기 유모차에 실어주면 돼”


어르신이 가리키시는 유모차를 확인해 보니 알루미늄판으로 널찍하니 덧대어 짐을 실을 수 있도록 개조해 놓으셨다. 무엇부터 실어드리면 되겠냐고 여쭤보았다. 어르신은 싱크대스테인리스보올과 문짝에서 떼어낸 철 경첩들, 환풍기, 가스레인지, 반려견 쇠창살, 녹난 손수레, 스테인리스 빨래건조대 등 철붙이들은 죄다 가져가시겠다고 실어달라고 하신다.


“어르신 이걸 다 가져가시게요? 댁이 어디신데 이걸 다 끌고 가실 수 있으시겠어요?”

“실어만 주면 다 가져갈 수 있어!”
 “내가 시키는 대로만 실어!”
 “네? 하하하”

어르신은 개조된 유모차에 스테인리스싱크대보올을 실으라고 하셨다. 보올을 실으니 유모차의 양옆으로 나오게 되니 가운데에 잘 실으라고 소리를 치신다. 그다음엔 움푹 파인 볼올에 후드를 넣으라고 시키시더니 그 위에 가스레인지를 얹으라고 시키신다.


“어르신 이게 얼마나 무거운 줄 아세요? 이건 제가 들기에도 허리가 아프다고요!”
 “응 어! 거기 있는 두꺼운 고무바로 으면 가져갈 수 있어”


  나는 유모차 앞 하단에 여 있는 고무바를 물건들을 한번 감 쌓게 상단바에 걸었다.


“그래 한 바퀴 돌려, 그리고 그 밑에 다시 묶어!”

“이렇게요?”

“아니 잘 풀릴 수 있도록 꼭 지 말고 줄을 끼우듯이 묶으라고!”
 “아! 예 예 예”

“그다음 저것들도 다 올려!”


 어르신은 반려견 쇠창살과 스테인리스건조대, 녹난 손수레를 그 위에 얹고 다른 밧줄로 묶으라고 시키신다. 그것도 한번 감고 꼭 지 말고 잘 풀릴 수 있도록 하라고 호통 치신다.

물건들을 다 실고 나서 어르신께 이걸 끌고 갈 수 있으신지 여쭤보았다.


“그걸 좀 저 밑에까지 끌어다 줘!”
 “네! 어디까지요?”
 “저기 모퉁이 돌아서 저 밑까지!”


 그러고 보니 여기서 그곳 까지는 약간의 내리막이 져 있었다. 어르신의 목소리는 쩌렁쩌렁 힘이 있으셨지만 다리가 불편하신지 걸음걸이는 느리고 불편해하셨다. 나는 앞장서서 짐이 실린 유모차를 끌고 갔다.


“거기 거기! 노래방이라고 써져 있는 거기 앞에다 두면 돼”
 “여기여!”
 “거기 자전거 치우고 노래방 앞에다 두라고!”

“아~네, 참! 이거 사진 한 장만 찍을게요! 주인이 찾으면 어르신이 가져가셨다고 할 거예요”
 “누구한테 이르면 안 돼!”
 “아~ 예! 만약을 위해서요.”


그 뒤로도 어르신은 쓸 만한 물건이 있으신지 수시로 다녀가시며 옷이며 신발이며 챙겨가셨다. 누구에게는 필요 없는 것들이 누군가에겐 요긴하게 쓰일 귀중한 필수품이 될 수도 있다. 돌고 돌아 필요한 곳으로 흘러가면 되는 것이다. 어르신의 불편한 손과 발인 개조된 실버카는 소중한 연결고리를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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