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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공업자 Apr 02. 2024

운수 좋은 날

<집수리 마음수리>

봄비 내리는 상쾌한 아침에 의뢰인의 아파트단지에 도착했다. 경비실에 방문목적인 해당 세대에 세면대 수전을 교체하러 왔다고 알리니 바리케이드를 열어주었다. 오늘 작업은 파손된 세면대 수전을 교체하고 배수물마개와 배수호스를 교환하면 되는 간단한 작업이었다. 단지 배수하수구가 높아 배수물마개의 스테인리스관을 절단기로 적당히 잘라 연결하면 될 일이었다. 별 특이점이 없는 오늘 일정은 어찌 보면 운수 좋은 날인 듯도 싶었다.


낡은 부품들을 제거하고 배수물마개를 절단하여 배수트랩과 호스를 연결했다. 이어 세면대수전을 연결하면 된다. 세면대 수전을 세면대에 안착시키고 고정부품을 찾으니 부품이 보이질 않았다. 제품박스를 아무리 뒤져도 고정부품은 보이질 않았다. 큰일 났다. 이 부품이 없으면 세면대수전을 부착할 수가 없다. 이런 일은 처음 겪는 일이라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아뿔싸! 그제야 한 생각이 뇌리에 떠올랐다. 


한 달 전 동네에 있는 인테리어가게에서 연락이 왔었다. 세면대수전(세면대 수도꼭지)을 구매해 간 어르신이 계시는데 댁에 가서 교체해 줄 수 있느냐는 의뢰였었다. 어르신의 댁에 도착해 보니 어르신은 안 계시고 젊은 남성이 있었다. 젊은 남성은 다짜고짜 기존에 부착되어 있던 세면대수전의 손잡이를 고정해 줄 수 있느냐며 물었다. 세면대 손잡이를 보니 미세한 레인지볼트를 돌려 고정하면 될 것 같아 고정해 보았다. 손잡이를 고정하니 세면대수전은 이상 없이 잘 작동하였다. 젊은 남자는 박스에 담겨있는 세면대수전을 반품해야겠다며 내게 고맙다며 얼마의 출장비를 주며 돌아가라고 했었다. 


영문을 몰라 주차장으로 내려와 차를 타려는 순간 전화 한 통이 왔다. 수리를 부탁했던 인테리어가게 사장님 이였다. 세면대수전을 교환해주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손잡이만 고정해 달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그 젊은 남자는 세면대수전을 구입해 간 어르신의 사위로 세면대수전에 이상이 없다며 반품을 하겠다고 인테리어가게에 연락을 해왔다고 했단다. 

이렇게 난처한 일이 있나! 그렇다고 멀쩡한 세면대수전을 무작정 갈아줄 수는 없는 일이 질 않았나!


잠시 후 세면대수전을 갈아달라는 또 다른 의뢰가 들어왔다. 의뢰인은 세면대 수전의 종류를 잘 모르겠다고 해서 원홀과 투홀 두 가지를 동시에 준비해서 가겠다고 하고 인테리어가게에 들렀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아까 젊은 사위가 반품한 세면대수전이 투홀이었기에 그 수전을 다시 내가 구입한 것이다. 하지만, 의뢰인의 집에 도착해 보니 교체할 수전은 원홀이었다. 그렇게 해서 투홀수전을 재고로 가지고 있다 한 달 후인 오늘 의뢰한 댁에 와서 설치를 하다 부품이 빠진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다음 일정이 임박했는데 큰일이 났다 싶었다. 


인테리어가게에 연락을 해서 지난번 일을 말씀드리니 사장님은 기억하고 있었지만 고정부품만은 판매하지 않는다고 하신다. 알겠다며 세면대수전을 다시 하나 구입하겠다고 재고확인을 부탁하니 있다고 한다. 의뢰인께 수전의 부품이 누락되었다며 죄송하다고 사정하고 비 오는 길을 달려 인테리어가게에 가서 부품을 구입해서 돌아왔다. 다음일정의 의뢰인께도 전화를 해서 죄송하다며 사정을 하게 되었다. 한 시간가량의 시간이 지나 다음일정지에 도착해서 일을 마치게 되었지만 시간은 좁혀지지 않았다. 그다음 일정도 시간에 쫓기며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점심식사는 하지도 못하고 몸은 녹초가 되다시피 하였다.


다음날 필요한 부품을 구입하기 위해 인테리어가게에 들렀다. 사장님은 “안기사님”하면 크게 나를 불렀다. “여기여”하며 작은 비닐봉지를 내미셨다. 다름 아닌 아까 없었던 부품이었다.

사장님은 이어 

“간혹 가다 물건을 사갔다가 반품한다며 가져간 물건에 부품을 빠트리고 가져와요”

“그럼 이건 어떻게 구하셨어요?”

라는 나의 질문에 사장님은 거래처에서 하나 가져오라고 했더니 구해왔다며 웃으셨다. 갑자기 무용지물이 되었던 수전이 제 짝을 만나 유용지물이 되었다. 내려앉은 마음도 갑자기 상승하여 기분이 좋아졌다. 날이 개이기 시작했다. 오늘은 운수 좋은 날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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