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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공업자 Apr 09. 2024

울고 싶었다

<집수리 마음수리>

울고 싶었다.

의뢰인은 베란다에 빨래건조대를 설치해 달라고 했다. 나는 기존에 빨래건조대는 설치되어 있었는지 물었고 의뢰인은 없었다고 했다. 콘크리트천장에 건조대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측정이 필요했고 해머드릴로 타공해야 한다.
의뢰인의 주소를 물었다. 의뢰인은 인천 소래라고 했다. 순간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어디든 내가 화성에서 활동 중인 집수리 업자라고 알리고 있었는데 태연스럽게 인천소래라고 하다니...

의뢰인은 화성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나는 거리가 멀어 갈 수 없다고 했다. 의뢰인은 설치비용을 물었고 그 비용에 교통비를 추가해서 주겠다고 흥정했다. 그래도 안된다고 했다. 거리가 무려 55km, 왕복 100km가 넘는 거리를 빨래건조대를 설치하기 위해 가는 것은 무리였기 때문이다.
의뢰인은 사정이 있다며 간절하게 부탁해 왔다. 오늘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무리한 여정이다. 하지만 어떤 사정인지 궁금해졌다. 점심시간을 줄이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에 그만 가겠다고 해버렸다.

인천남동공단에서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했었다. 그래서인지 소래는 낯익고 익숙했다. 한참을 달려 의뢰인과 초등학교1학년인 아들을 함께 만났다. 어느 아파트로 안내되었고 빨래건조대를 설치하기 위해 베란다천장을 측정하고 있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싱크대 수전이 터졌으니 언제 올 수 있느냐고 물어왔다. 잠시 후 전화벨이 울렸고 세면대 호수가 터졌다며 언제 올 수 있느냐고 물었다.

궁금증을 참기 힘들어 의뢰인에게 왜 나를 불렀느냐고 물었다. 의뢰인은 지금 이 집은 자기 집이 아니라고 했다. 언니집이라며 내일이 언니생일이라고 했다. 언니 생일을 맞아 빨래건조대 하나를 달아주고 싶어 주변에 전화를 걸었다고 했단다.

사놓은 빨래건조대는 달아주지 않는다.
빨래건조대를 달기 위해 출장 가지 않는다.
터무니없는 금액을 달라 는 등 정말 울고 싶었다고 한다.

언니 생일 선물로 빨래건조대를 달아주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고 했다. 만약 내가 오지 않았다면 정말 울었을 것 같다고 했다. 전화벨이 울렸다. 동네 미용실인데 따뜻한 물이 안 나와 예약손님을 모두 취소했다며 언제 올 수 있느냐고 한다.
자리에 있을 때는 조용하더니 막상 멀 리 나오니 급한 오더가 쏟아졌다.

의뢰인은 천장에 튼튼하게 매달린 빨래건조대를 바라보며 언니가 깜짝 놀랄 거라며 좋아했다. 다음에 또 와 줄 수 있느냐는 물음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화성으로 돌아와 바쁘게 일들을 처리했다. 수도문제로 물과 관련된 일들은 항상 최우선으로 처리해 준다. 물은 소중하지만 물로 인한 피해도 만만치 않게 생기기 때문일 것이다.
늦은 밤까지 일을 처리하고 녹초가 되었을 때쯤 문자 한 통이 왔다. 인천소래였다.


"사장님 피스통을 놓고 가셨네요"


아까 인천소래에서 빨래건조대를 달다, 전화를 받다, 의뢰인 이야기를 듣다, 그만 서둘러 나오다 피스들이 가득 들어 있는 꼭 필요한 통을 놓고 온 것이다.
정말 울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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