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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공업자 Mar 26. 2024

문제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점

<집수리 마음수리>

안전하게 생활하는 집에 나타나는 현상은 여러 가지가 있다. 세월이 흐르며 노후되어 나타나는 현상도 있겠지만 생활하는 거주자가 잘못사용하여 불편함이 생기기도 한다. 

이 문제가 임대인과 임차인의 사이에서 생기는 갈등의 원인이기도 하다.

임차인이 나가며 다른 임차인이 들어오기 전에 몇 가지 수리를 의뢰한 임대인이 있었다. LED전등이 주가 되었으며 몇 가지 부수적인 작업은 덤으로 요청했었다. 임대인이 작업시간 약속을 안 지켜지면서 밤시간에 시작된 작업은 11시가 다 되어 끝났다. 임대인은 일과 시간과 밤시간은 시간의 가치가 다르다는 것을 생각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피하고 싶은 의뢰인의 유형이다.


새로운 임차인이 드레스룸의 문이 바닥에 걸리며 여닫기가 힘들다고 연락이 왔었다고 한다. 임차인은 방바닥이 올라와서 문이 걸린다고 했단다. 임대인은 장판을 깔 때 사용한 접착제가 덩어리 지면서 걸리는 거 같다고 한다. 장판을 깔았던 사장님은 그럴 리가 없다며 문을 걸리지 않게 잘라내자고 했단다.

문은 까다롭고 예민한 부분이 많다. 문에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렇지만 문에 생기는 문제는 문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파악되는 부분이 대부분이다.


임대인은 내게 한번 와서 봐줄 수 있겠냐고 부탁해 왔다. 거리가 멀기도 해서 사양했지만 극구 한 번만 봐달라고 요청해 왔다. 간절한 부탁은 거절하는 사람을 매정하고 야박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마지못해 방문해서 문을 살펴보기만 하겠다고 했다.


문은 바닥에 끌리고 있었다. 문을 보는 순간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내가 보는 관점은 문에 걸어놓고 옷가지나 물건을 걸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옷걸이였다. 그 옷걸이엔 크기가 다양한 백(가방)들이 주렁주렁 걸려있었다. 새로운 문도 시간이 지나면 무게를 못 이기고 처지기 마련이다. 처음 문을 달 때도 이 부분을 어느 정도는 감안하고 설치해야 한다. 

이 문제의 문은 바닥 부분이 문과 문틀이 가깝기도 하고 오래되기도 하였고 세월 속에 처지기도 했다. 가뜩이나 처진 문에 임차인은 옷걸이를 걸쳐놓고 많은 가방을 걸어놓았으니 문을 견디지 못하고 처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갑자기 임대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전까지만 해도 집에 문제가 있어 임차인에게 미안한 마음과 수리비용에 대한 부담으로 걱정이 많던 임대인이었다. 임차인의 행위로 문에 문제가 생겼다는 말에 임차인에게 왜 무거운 그걸 걸어놓아 문을 처지게 만들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임차인도 지지 않았다. 그거와 상관없이 방바닥이 올라와 문이 걸린다며 방바닥을 갈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기싸움은 팽팽했다. 가운데서 난처한 입장이 되었다.


집이 노후되어 문에 문제가 생긴 것은 임대인의 책임이고 그 문에 옷걸이를 걸어 가방을 주렁주렁 걸어놓아 문제를 키운 것은 임차인에게 책임 있다. 장판을 새로 시공한 업자는 문을 깎아내야 한다고 하고...

서로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문제해결은 처진 문의 노후된 경첩을 새로 교환하며 처진 문을 위로 올려달면 된다. 임대인은 이 수리비용을 지불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임차인은 자신들에겐 문제가 없다며 방바닥의 콘크리트가 올라오면서 문에 걸리는 것이니 방바닥의 콘크리트를 깎아야 한다고 한다. 

내가 보는 관점에서는 임대인도 임차인도 장판을 깔았던 사장님도 문을 있는 그대로 보았으면 했다. 자신들의 입장에서 보는 관점보다는 문을 있는 그대로 보면 문제점이 보인다.


이 문의 문제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임대인은 나의 여러 번 반복된 설명에 어느 정도 문제점을 파악하게 되었다. 선 듯 문수리를 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수리를 하고 나서도 임차인들이 옷걸이를 걸어놓고 사용을 할 것이라는 추측에서다. 멀쩡한 문이 다시 처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는 생각이다.


세상엔 정답은 없다. 정답을 찾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깨달으며 공부하게 된다.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의 숫자만큼 다양할 뿐이다. 틀림이 아니라 다름이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보다 어려운 일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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