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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공업자 Mar 12. 2024

지옥과 천국사이

<집수리 마음수리>

“여보세요?”

“안기사님? 지난번에 우리 집 주방수전 갈아주셨잖아요?”
 “아~네 기억납니다”

“물이 새서 아랫집 천장에 배어 나왔다고 합니다. 이거 어쩌죠?”
 “네에!!! 그날 분명 설치해 드리고 누수 없는지 확인하고 확인해서 괜찮았는데요”

“물이 많이 배어 나와서 천장 도배지가 쳐졌었다고 합니다.”
 “이거 어쩌죠? 죄송합니다. 제가 배상하겠습니다.”

“아~그게 아니라 주방수전 갈기 전에 샜던 물들이 나타난 겁니다”
 “네~에!!!”

“그때 갈이 주시고 지금은 괜찮습니다.”


어느 날 집 앞에 있는 인테리어자재를 판매하는 사장님이 전화를 하셨다. 판매한 주방수전을 하나 달아달라는 부탁이었는데 집에서 가까운 아파트단지라 하겠다고 했었다. 연락처를 받고 방문해 보니 주방수전이 낡아 누수가 생긴 것이다. 주방수전앵글밸브(수도잠금장치)는 잠겨있었지만 한동안 물이 흘러나온 것으로 보였다. 이렇게 되면 아랫집 천장에 물이 떨어져 피해가 가지 않은 것이 다행하고 행운이라고 의뢰인에게 말했었다. 


그 뒤 한동안 잠잠했다가 며칠 후 전화를 해오셨는데 의뢰인의 두서없는 말에 나는 순간 지옥과 천국을 오간 것 같은 불안과 안도의 극과 극의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기분이었다. 

주방수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바닥에 고이다 어느 순간 터져 아래층 청장에 배어 나온 것이다. 의뢰인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이거 어떻게 해결이 안 되겠냐며 부탁했고 지옥을 막 다녀와 아직 정신이 체 들지 않은 상태에서 그만, 알아봐 드리겠다고 말해버렸다. 난 누수피해와 도배는 하지 않는다.


며칠 후 의뢰인의 남편분과 아래층을 방문했다. 아래층의 천장은 누수된 물과 상관없이 얼룩이 많았고 어느 정도는 때가 타 있는 상태였다. 아래층 거주자는 물이 천장에 흥건하여 도배지의 배가 불러 있었다고 했다. 도배지 안쪽의 천장에 곰팡이가 있지는 않은지 불안하다며 수리를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알았다며 도배지를 뜯어보고 천장석고보드에 곰팡이나 이상이 있으면 철거하고 공사를 해서 도배를 하자고 했다. 

천장에 도배지를 뜯어보니 곰팡이나 얼룩이 없이 말끔했다. 아랫집 윗집에 서로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주방천장 쪽만 부분 도배를 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도배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지인을 만나 다시 현장을 방문해서 실측을 하고 견적을 내었다. 자신의 와이프가 도배를 잘한다며 상의해서 하자고 했었다. 그런데 공사 하루 전에 전화가 왔다.  


“네. 사장님 안녕하세요?”
 “안기사님 난 이일을 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 와이프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네? 어제까지만 해도 할 수 있다고 하셨잖아요?”

“집에 와서 와이프와 상의해 보았는데 할 수 없다고 합니다.”

“내일 날짜까지 잡아놓았는데 갑자기 할 수 없다고 하시면 어쩌죠?”
 “그 일은 분명 해 놓아도 차이가 많이 날 거라고 합니다.”

“상관없다고 했잖아요. 그냥 최선을 다해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배테랑인 우리 형님과 와이프를 보낼게요.”

“네, 본인이 안 되시면 그렇게라도 해주시면 감사하죠.”


그렇게 해서 지인의 와이프와 형님과 위층 분들과 현장에서 만났다. 도배경력이 많은 지인의 형님은 천장을 확인해 보더니 부분 도배를 하면 분명 차이가 날 거라며 작업을 못하겠다고 한다. 갑자기 현장에서 난처한 일이 생긴 것이다. 나는 아래층 주부님이 원하는 것은 어느 정도 차이가 나도 괜찮으니 위에 누수가 생겨 찜찜하니 벗겨내고 도배를 해달라는 의도를 전달했다. 그래도 전문가 입장에서는 천장 전체를 하면 했지 부분도배는 이해가 안 간다고 한다. 

나중에 전체 도배를 할 예정이니 우선은 누수된 부분만 도배를 해주면 된다고 설득해서 도배가 시작되었다.


도배는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전문가의 손길은 전문가다웠다. 예상했던 것보다 짧은 시간 안에 도배를 마칠 수가 있었다. 도배를 하고 나서도 전문가인 지인의 형님은 부분도배가 이해가 안 간다고 하셨다. 

나는 여자의 마음은 누수가 되었던 찜찜한 기분을 부분 도배를 해서라도 해소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다. 아래층 주부님도 도배상태에 대해 만족해하셨고 위층 분들도 너무 과하지 않은 수리비에 만족해하셨다. 


얼떨결에 했던 말에 여러 날을 마음고생 했지만 이렇게 여러 사람이 만나 하나의 문제점이 해결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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