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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공업자 Apr 16. 2024

귀신이 곡할 노릇

<집수리 마음수리>

집수리를 하고 나면 치워야 할 쓰레기들이 많이 나온다. 새로운 전등 하나를 달면 기존에 달려있던 등을 폐기를 해야 한다. 미루고 미루던 전등을 다섯 가지나 갈아달라는 의뢰인이 있어 방문했다가 일을 마치고 나오던 참이었다. 한 손엔 공구가방을 끌고 한 손엔 폐전등을 들고 아파트 현관을 뒤뚱거리며 나오던 참이었다. 한통의 전화가 왔다. 흥분한 전화 목소리는 내게 엊그제 싱크대수전을 갈아주고 갔다고 했다. 그러곤 배수구 마개를 어떻게 했냐고 물어왔다. 갑자기 배수구 마개는 뭘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사진을 보내겠다고 한다.

통화 중 사진 한 장이 문자로 왔다. 배수구 마개가 틀림없었다. 전화목소리는 수리하고 간 후 배수구 마개가 없어져 싱크대 밑으로 물이 쏟아져 난리가 났다고 했다. 

그럴 리가 있나! 나는 배수구 마개에 손댄 적이 없다고 했다. 


집수리를 하러 가면 문제가 있는 현장은 사진으로 남기는 습관이 있다. 수리 전과 수리 후에 개선된 점을 남기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혹시나 있을 수리 전에 생긴 문제들이 수리를 하고 간 후에 벌어진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함이다.


이틀 전 토요일 오후, 주방수전을 갈아달라는 의뢰가 있었지만 일이 늦게 끝나 의뢰인의 집에 한 시간이나 늦게 도착했었다. '죄송하다'라는 말을 하고 집에 들어서는데 집안이 후덥지근 습기가 가득했다. 주방수전을 갈기 위해 싱크대 문을 열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물기가 바닥에 가득했다. 주방수전이 터져. 물이 밑으로 쏟아졌고 집안엔 습기로 가득했던 것이다. 

난 의뢰인에게 종교가 있느냐고 물었다. 의뢰인은 없다고 대답했다. 없어도 상관없으니 싱크대 밑으로 터진 물들이 아래층으로 내려가지 않고 잘 마르기를 기도라도 해야 한다고 했다.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아래층에 피해가 있다면 배상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주방수전을 갈고 나서 싱크대 문을 열어두고 선풍기로 말리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돌아왔었다.


이틀 후 그 집의 의뢰인이 전화를 해서는 물난리가 났다며 내가 수리하고 간 후 배수구마개가 없어져서 그쪽으로 물이 쏟아져서 그런 것이라고 한다.

그 당시 배수구 마개가 없었다면 주방수전을 갈고 나서 수돗물을 틀고 확인했을 때 쏟아졌어야 할 물이 왜 하필 지금에서야 쏟아졌을까?

나는 그날 같이 확인하지 않았냐고 물었고 배수구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의뢰인은 자신도 모르는 일이라고 한다.

 '이런 귀신이 곡할 노릇이 있나'


나는 수리 갔을 때 배수구 마개는 있었다고 했다. 사진을 남겼으니 찾아보면 있을 거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현장 사진 중 배수구 사진이 있을까? 정말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사진이 없다면 물피해를 배상해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긴장되었다.

스마트폰의 갤러리를 열었다. 이틀 전 사진! 그중에 그 사진이 있을까? 

사진을 넘기며 배수구! 배수구! 배수구 사진! 있어라! 있어라! 있다! 있어! 있었어!

사진 속 배수구에는 마개가 분명 끼워져 있었다.

배수구 마개를 표시해 다시 문자를 보냈다. 그리곤 당당하게 전화를 걸었다. 배수구 마개 잘 찾아보고 없으면 하나 구입해서 잘 끼워두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배수구마개는 어디로 갔을까?

아래층에 물 피해를 내게 전가하려 했을까?

누군가 정말 배수구마개를 제거했을까?

의뢰인이 청소를 하다가 빼놓고 잃어버렸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뒤로 아무 연락이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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