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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공업자 Apr 23. 2024

욕실 바닥을 다 뜯어 버리고 싶어요

<집수리 마음수리>

의뢰인의 집에 처음 방문한 것은 작년 초겨울쯤인 것으로 기억된다. 새로 이사한 집에 문들이 잘 맞질 않는다며 수리를 의뢰했었다. 거리는 제법 먼 편에 속했지만 방문하여 살펴보니 아파트의 방문들은 바닥이 끌리거나 창문들은 잘 닫히질 않았다. 수리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그 뒤에도 다른 건으로 수리를 다녀왔었다.


어느 날 그 의뢰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안방 화장실에서 좋지 않은 냄새가 지속해서 난다는 것이었다. 바닥하수구 유가에 냄새차단용 캡으로 바꿨는데도 난다고 했다.

나는 과탄산소다를 활용한 유가청소동영상 링크를 보내 참조해 보라고 했었다. 그 후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 그러다 최근 다시 연락이 왔다. 냄새가 지속적으로 발생하여 화장실 변기를 뜯어보았다고 했다. 화장실 변기에서 오물이 누수되지 않았나 싶어 뜯어본 것이다. 결과는 아무 이상이 없었단다.


의뢰인은 "화장실 바닥을 다 뜯어 버리고 싶어요"라고 해왔다. 내게 한 번만 봐줄 수 없느냐는 것이다. 안 되면 화장실을 다 뒤집어 까서라도 냄새의 원인을 찾고 싶다고 했다.

의뢰인의 집에 방문하기로 하고 약속을 잡았다. 원인이 무엇인지 정말 궁금해졌다.

의뢰인은 안방화장실로 안내했다. 냄새가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문을 꼭 닫아 놓았다고 했다. 화장실 문을 여는 순간 시큰하고 꿉꿉한 물비린내가 가득했다. 욕실바닥은 축축했고 물곰팡이 내가 어져 나왔다.

의뢰인은 이 냄새라고 했다.

아마도 바닥에서 배어 나오는 물이 원인인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욕실 천장을 살펴보자고 했다. 위층에서 하수배관이나 변기배관에 누수가 생겨도 악취가 발생하기 때문이었다. 돔천장의 점검구를 열고 배수관을 살펴보니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꼼꼼하게 살펴보다 환풍기가 눈에 들어왔다. 작동은 되고 있으나 환기가 원활하게 되고 있질 않아 보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작동소음과 작동램프는 들어와 있는데 정작 환풍이 안되고 있었다.

그제야 이 욕실의 문제점을 알게 되었다. 환풍기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으니 씻고 났을 때의 습기와 평소 환기가 안되니 습기가 가득해, 바닥에 물기가 가시질 않으니 물곰팡이 냄새가 나는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의뢰인과 상의하여 용량이 크고 배출구의 공기가 역으로 유입되는 것을 방지해 주는 전동댐퍼가 달린 제품으로 달기로 했다. 고심 끝에 고르고 골라 특별히 주문한 환풍기가 도착했다. 공조시스템에 의해 작동하는 환풍기를 제거하고 새롭게 준비한 환풍기를 독립적으로 설치했다. 스위치를 켜자 환풍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환기가 되기 시작하니 욕실 분위기가 뽀송뽀송해지기 시작했다.

작업을 마치고 집으로 복귀했다.

과연 냄새의 원인이 해결될 수 있었을까?!


다음날 궁금하여 환기는 잘 되느냐고 메시지를 남겼다.

금세 답장이 왔다.

욕실 환기가 너무 잘되고 냄새도 안 난다는 답장이 왔다.

'욕실 바닥을 다 깠으며 큰일 날뻔했어요'라고 하니

'아찔 하네요'라는 답장이 왔다.

의뢰인은 여러 사람을 불러 냄새의 원인을 찾아 달라고 했으나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조치를 하곤 정상이라고 했단다. 원인은 의뢰인이 민감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원인은 단순하게도 환기가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마음도 꿉꿉하거나 꿀꿀해 환기가 필요하다는 증후들이 나타난다. 마음의 창을 열거나 환풍기를 바꾸거나 성능을 높여보자. 기분이 상쾌해질 수도 삶의 의욕이 살아날 수도 있을 것 같다.

마음이 환기가 안되는 원인은 의외로 단순한 것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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