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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잇쭈 Jul 28. 2023

CHAPTER 1. 정체성

20대 중반 전국을 돌아다니며 청소년 특강을 할 때이다. 첫 시간 자기소개를 마친 후 나만의 오프닝 프로그램이 있었다. ‘자신을 한 단어로 표현하라’! 많이 들어보지 못한 질문이기에 당황하는 학생들이 종종 있었지만, 모두가 그 시간을 통해 잠시라도 생각하게 했다. 그런 효과가 있다고 믿기에 나만의 강의를 풀어내는 시그니처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이걸 왜 하는 걸까? 요즘은 나에 대한 생각할 시간이 없다.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심리적 시간이 없다. 하루에 수백 개 많게는 수천 개의 정보가 나에게 입력되고 그것을 소화하느라 정신이 없다. 또 받은 그 정보를 쳐내느라 바쁘다. 대한민국 남자들이라면 가장 조급해질 때를 알 것이다. 막 군대에서 제대한 남성들이 그러하다. 왠지 나 혼자 멈춰있는 것 같고, 뭐라도 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이 자신을 괴롭힌다. 나도 그랬고 많은 사람이 공감할 것이다. 이때 물리적인 시간은 많지만, 심리적인 시간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만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생산적인 질문을 할 시간이 없다 보니 누군가에게 어필할 자신의 장점을 3개 작성해 주세요! 라는 미션을 들을 때, 단점은 3개가 있는 데 도저히 장점을 찾을 수 없다.라고 이야기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어른들은 어떠할까? 회사나 아르바이트 면접 때문에 어떻게든 상황에 의해 말해야 할 때 잠깐 나를 포장할 수 있는 일회성으로 꺼내 들진 않는지 스스로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대학 시절 가족 혹은 친한 지인에게 자신의 장, 단점을 조사해 오라는 과제가 있었다. 10여 년이 넘었지만, 기억하는 이유는 어머니의 글이었다. 어떤 사람과 비교해서 작성한 글이 아닌 오랫동안 봐온 자녀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아직도 ‘선한 영향력’이라는 말과 ‘겸손’이라는 말을 너무 좋아한다. 어머니가 나에게 해줬던 장, 단점 키워드였기 때문이다. 요즘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10대들이 많다. 그런 10대들에게 물어봤다. ‘앞으로 너 뭐 먹고살래?’ ‘어른 되면 뭐 하면서 살 거야?’ ‘꿈이 뭐야?’ ‘어떤 대학 가?’ 이런 질문은 수도 없이 들어봤지만 ‘너를 한마디로 표현해 봐’라는 정체성에 관한 질문은 정작 들어보지 못한 것이다.    

 

단순히 한 마디가 아니어도 된다. 문장이 아니어도 단어가 아니어도 된다. 10대 친구들에게 감히 이야기해 본다. 졸업하기 전 이 한 줄만 제대로 세우고 나와도 어느 누구보다도 사회를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주변 사람들을 보며 수없이 비교하고 사회는 더 빠르게 달리라고 재촉하지만, 그 가운데 뿌리를 제대로 두지 않으면 흔들리기 쉽다.

     

그래서 요즘 기대고 있는 문화가 있다. 바로 MBTI다. 처음 만나는 자리던지, 점점 친해지려고 하는 모임이던지, 친한 친구들에게 물어본다. 너 MBTI가 뭐야? 10년 전으로 돌아가면 혈액형 더 나아가 별자리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우리도 많이 물어봤다. 너 O형이지? 그래서 성격이 둥글둥글하구나? A형이야? 그럴 줄 알았어, 잘 삐지더라고. 이런 이야기처럼 요즘 MBTI를 모르면 대화가 안 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자신의 성격유형은 거의 다 외우고 있다. 만나본 어떤 어른은 외우지는 못하니 캡처를 해두고 그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앨범에 들어가 그 질문에 답한다고 한다. 그만큼 요즘, MBTI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래는 기업 직무적성검사 용도로 사용됐는데 요즘은 하나의 놀이문화가 되었다. 소셜미디어 프로필에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고 채용 공고나 다양한 이벤트에서도 접할 수 있다.      


최근 대학 축제 무대 뒤편에서 총학생회들과 처음 대화하는 자리에서 MBTI 이야기로 10분을 넘게 이야기했다. 회장은 P, 부회장은 J 그래서 ‘둘의 리더 조합이 좋다’고 공감하면서 대화할 수 있었다. 물론 대화를 끌어 나가기에 좋은 수단임은 분명하다! 아이스브레이킹이 자연스럽게 되면서 스몰토킹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MBTI를 알고 있고 좋아한다. 하지만 그것에 몰입하진 않는다. 몰입해 있는 현대인을 비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전에 하나의 질문이 필요하다. 나도 나를 모르겠으니 나를 쉽게 정리해 줄 도구가 필요하진 않은가? 그 도구가 MBTI 아닐까? 라는 질문이다. 수도 없이 스스로 질문하고 내려야 하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포털사이트에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단 12분이면 나의 성격유형이 쉽게 정리되고 조별 과제는 누구랑 해야 하는지, 연애할 땐 어떠며 인간관계 궁합도 알려주고 돈은 누가 잘 벌며 몇 페이지의 글로 나를 한 번에 정의해 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엔 자기를 정의할 수 있는 게 많이 없다. 어쩌면 너무 복잡하니까 나를 찾는 것 자체를 귀찮아한다. 각자 바쁘게 살다 보니 친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도 요즘 어떻게 사는지? 근황 토크에 집중하고 평소 삶의 이슈, 관심사만 말하다 보면 시간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혹은 안 그래도 복잡한 세상인데 친구 만날 때라도 웃고 떠드는 게 낫다. deep 한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피할 수도 있다. ‘슬픈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도 간혹 있지 않은가? 내 삶이 힘든데 비슷하거나 힘든 상황을 보면 더 힘들게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혹시 나를 모르는 누군가가 나를 함부로 아는 척할 때 기분 나빴던 경험이 있는지 생각해 보자. 아마 그런 경험을 마주할 땐 모든 사람은 다 발끈할 것이다. 겉으로 표현 못해도 속으로라도 ‘네가 뭔데 나를 함부로 판단해!’라는 마음을 가지지 않을까? 우리가 평소에 보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많이 들어본 대사라 현실고증이 더 되는 느낌이다. 실제로 나는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해본 적도 있다.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억지로 평가할 때 우린 기분이 나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우린 단 몇 분이면 나를 정리해 주는 것에 의존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그것으로 판단하고 평가한다.   

   

10년 뒤 주목받을 직업, 사라질 직업! 기사나 미디어를 통해 접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감히 예언해 보자면 심리와 관련된 직업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AI가 대체 못 할 사람의 마음속 이야기를 듣는 직업은 점점 수요가 늘어날 것이며, 몸이 아픈 사람보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고 이미 미디어를 통해 오은영 박사님 방송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은 이를 방증하는 것이다. 특히 타로나 점집은 점점 핫 해질 것이다.       


왜? 불안하니까?

 

인간은 너무 불완전하다. 조언하는 그 사람도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 순간 나도 나를 모르겠고 무언가가 나를 정의해 주면 그나마 마음이 놓인다.      


그래서 우린 MBTI이기 전에, WAI를 기억해야 한다. WHO AM I 나는 누구일까? 재미없고 딱딱한 질문이 아님에도 뭔가 철학책에만 등장할 것만 같은 한 줄! 난 이 한 줄의 이야기가 긴 여정이겠지만 그 안에서 수많은 질문을 통해 고민하고 생각하게 할 것이다.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방향성을 제시한 후 같이 가보자는 제안이다. 이 제안의 마음이 잘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특히, 아래와 같은 사람들에겐 WAI가 꼭 필요하다.     


남에게 나를 잘 설명하지 못하는 사람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모르겠는 사람

힘든데 그 이유를 모르겠는 사람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에 쉽게 흔들리는 사람     


하나라도 해당이 된다면 페이지를 함께 넘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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