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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Aug 09. 2023

골수까지 전이된 암

“4일째 혈장과 혈액을 수혈하면서 혈액응고 수치를 올리려고 노력을 했는데요. 그럼에도 혈액응고 수치가 전혀 올라가지 않고 있어요.”

“여기서 조금 더 심해지면 링거 바늘 뺀 곳에서도 출혈이 멈추지 않아 계속 혈액이 흐르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지금 상처도 회복되지 않고 벌어질 수 있습니다.”

“현재 수술한 부위 내부의 피를 밖으로 배출해 주는 관이 두 개 있죠? 일반적으로 5일이면 제거하는데 피의 양이 줄어드는 듯하다가 오히려 늘어났어요.”


“아무래도 암이 골수까지 많이 전이된 것 같습니다.”

“우리는 ‘배수의 진’을 칠 수밖에 없어요.”

“당장 내일이라도 항암을 하지 않으면 환자분의 상태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요.”

“하지만, 항암을 했을 때 우려되는 점은 항암제가 일시적으로 골수를 공격할 수 있다는 겁니다.”

“항암제는 암처럼 세포분열을 빠르게 하는 세포를 공격하는데, 매일 혈액이 생성되는 골수, 입안의 점안, 위 내벽 세포 등을 공격합니다. 그래서, 같은 증상으로 혈액을 응고시키는 인자가 부족해서 수술부위의 상처가 다시 벌어질 수도 있어요.”


나는 그곳을 벗어나 남편의 병실로 걸어오는 길 머릿속에서 수많은 단어들이 뒤죽박죽 되었다.

수술부위의 상처가 벌어진다고?

담배값의 경고문구에 나온 사진들 같이 끔찍한 이미지가 떠올랐다 사라졌다.

병실로 돌아오자 남편은 각도를 세운 침대에 기대 신제품 기기를 소개하는 유튜브 콘텐츠를 보고 있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심각한 거야?”

“… 우리 4일째 수혈받고 있었잖아… 당신 혈액응고 수치에 문제가 생겼대.”

권교수님에게 들은 대로 전달했다.


이번에도 선택권이 있는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선택권은 없었다.

항암을 안 해도 수술부위의 피는 멈추지 않아 상처는 벌어질 수 있고, 항암을 해도 혈액 응고인자가 부족해서 상처가 벌어질 수 있다.

남편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어쩔 수 없지. 결국 선택권이 없는 거잖아? 항암 당장이라도 하자.”

“일단 정형외과 선생님이 와서 당신 상처부위가 항암을 받을 만큼 아물었는지 체크해 본대.”


그날 밤 정형외과 주치의 선생님이 상처를 확인하러 오셨다.

여기저기 상처 주위를 눌러보고, 피부를 당겨보더니,

“잘 아물었네요. 항암 받으셔도 되겠어요.”

정형외과 주치의 선생님의 언어는 항상 망설임이 없었다.

김교수님은 명확한 문장을 남기로 홀연히 사라지셨다.

눈썹이 진한 레지던트 선생님이 남아서 상처부위 드레싱 거즈를 제거하고, 연결된 호스 두 개를 흙속에 심어있는 당근을 뽑아내듯 쑥 뽑아냈다.

10일간 몸속에 박혀있던 호스가 순식간에 뽑혀 나가는 순간이었다.

며칠 전 석션포트에 모이는 피의 양이 다시 늘어나자 정형외과 선생님 두 명이 와서 날개뼈부터 골반 뼈까지 거즈를 가득 넣어 압박시켰었다. 거즈의 두께가 약 2센티는 되는 것 같았는데 그 때문인지 효과적으로 지혈이 잘 된 것 같다.

두 개의 구멍에 드레싱 밴드가 붙여졌고, 석션포트는 병실 앞 폐기물 쓰레기통에 시원하게 버려졌다.


“몸에 박혀있던 호스가 사라지니까 편해?”

“글쎄, 뭔가 허전해.”

“그것보다, 배가 너무 아파.”

“갑자기 배가? 어떻게 아픈데?”

“… 아무래도 변이 마려운 것 같아.”

남편은 쥐어짜는 고통에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변은 자그마치 20일을 묵힌 변이다. 

식사를 시작 한 이후 변을 무르게 해주는 변비약을 먹고 있지만, 변비약으로 가볍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엑스레이 상으로도 배 안에 변이 가득 찼네요. 아무래도 좌약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혈액종양내과 주치의 최 선생님이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음… 지금 이 상태로 누워서 변을 보게 되면 상처 부위에 묻어 감염이 될 수 있어요.”

아무리 기저귀를 차고, 패드를 바깥에 댄다 해도 누워있는 자세로 20일 치 변이 나온다면…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그림을 재빨리 지웠다.

“일단 오늘 좀 기다려볼게요.”


오늘 무조건 해결을 해야 한다.

남편과 나는 비장했다.

먼저 설사를 유발하는 바닐라라테 벤티사이즈를 남김없이 마셨다.

이미 적당한 화장실도 물색해 뒀다. 병동을 나오면 복도 중간에 장애인 화장실이 제격이었다.

다리힘이 없는 남편이 변기에 앉으려면 양쪽에 안전바가 있고, 커다란 워커가 들어갈 수 있는 화장실 크기여야 한다.

워커를 끌고 장애인 화장실에 들어간 후 변기 앞에서 뒤로 돌면 허리를 숙일 수 없는 남편을 대신해서 바지와 속옷을 내렸다. 그 후, 워커에 있는 무게중심을 변기 옆 안전바로 이동시킨 후 아주 천천히 변기에 앉아야 한다.

우리는 예행연습을 두 번  마쳤다.

멀리 가지도 못하고, 화장실 앞에서 서성인 지 1시간이 넘어섰다.

남편의 체력은 바닥이 났고, 장에서는 아무 소식도 없었다.


“당신 장이 바닐라라테를 먹튀 했어”

“운동량이 부족해서 안 나오는 것 같아. 우리 좀 걸어보자.”

회복이 덜 된 몸으로 한 시간을 워커에 의지해서 다시 걸었지만, 이런 방식으로 나올 것 같지 않았다.

지쳐 쓰러진 남편은 이제 포기하고 관장을 하자고 했다.

장애인 화장실 안에 자리를 잡고 간호사분이 좌약을 넣고 사라졌다.


“으흣!”

남편은 1분도 참지 못하고 변기에 주저앉았다.

내가 출산할 때 이런 모습이었을까? 안전바를 쥔 남편의 양손이 부르르 떨리고, 남편의 입에서는 비명인지 신음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크으어으어”

‘퐁’ 소리가 난 후 남편은 더 크게 앓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나는 뇌에 파스를 붙인 듯 얼얼해졌다.


“나 못 일어날 것 같아. 항문이 불타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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