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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Aug 28. 2023

버티고 견디면 무조건 살 수 있어요.

“괜찮아? 무슨 일이야?”

온몸이 땀에 젖고 얼굴이 하얗게 질린 상호씨가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MRI가 시작되고 기계 안으로 들어갔는데, 숨이 쉬어지지가 않았어. 더 참아보려고 노력했는데, 도저히 죽을 것 같아서 …”

“당신 처음 2차 병원에 입원했을 때 MRI 찍었잖아? 그땐 이런 일 없었는데.”

“사실, 그 병원에서 있었던 일이 거의 기억나지 않아.”

그 당시 2차 병원에서는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대신 강한 진정제를 투여했었다.

영상의학과 선생님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진정제를 투여하고 MRI를 마저 촬영할지 여기서 그만둘지 논의하고 있어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잠시 여기서 대기하겠습니다.”

결국 MRI 대신 PET-CT와 CT로 현재 몸 상태를 진단하기로 하고 우린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실로 올라왔다.

“당신 아무래도 공황장애가 생긴 것 같아. 답답한 공간을 싫어하기는 했지만 이런 적은 없었는데… “

암은 육체뿐 아니라 정신도 병들게 만들었다.

“기계 안으로 들어가자 코 앞에 기기의 벽체가 나타났어. 마치 관에 갇힌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눈을 감고 버텨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견딜 수 없었어.”

“얘기 들어보니까 정말 두려울 것 같기는 해. 다음에 MRI를 꼭 찍어야 한다면 미리 진정제를 달라고 하자.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니까, 괜찮을 거야.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자.”

두 시간 후면 밤 11시, 예약된 CT를 찍어야 하는데 상호씨의 상태는 전혀 나아 보이지 않았다.

“CT는 내일로 미뤄달라고 할까?”

“다음 주에 항암도 해야 하는데 일정을 미룰 수는 없지. 괜찮아. 할 수 있을 것 같아.”

다행히 CT는 무리 없이 찍었지만 마치 배터리가 방전된 휴대폰처럼 모든 기력이 소모된 것처럼 보였다.


아침 6시 냉장고 문 열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잠시 후면 채혈전문 간호사가 병동을 돌 시간이다.

간이침대를 접어 의자로 만든 다음 이불을 두 번 접어 돌돌 만 후 등받이로 만들었다.

냉장고에서 2리터 생수를 꺼내 벌컥벌컥 마시던 맞은편 창가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단단한 턱에 태닝 한 듯 건강해 보이는 피부톤과 다부진 몸이 전혀 암 환자로 보이지 않았다.

마치 아프리카의 물소 같았다.

“남편 분은 어디가 아파서 왔어요?”

“위암 4기 뼈전이래요.”

남편 쪽을 바라보며,

“나도 대장암에 뼈전이예요.”

남편과 나는 눈이 마주쳤고, 서둘러 남편에게 교정기와 목 보호대를 착용시키자, 남편은 일어나 물소아저씨에게 다가갔다.

서울 병원에서는 남편이 뼈 전이라서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했었지만, 수술로 인해 근육이 퇴화해 버린 상태로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영원히 걸을 수 없게 될 것 같았다.

걸을 수 없으면 몸은 급속도로 쇠약해지고, 결국 머지않아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도,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어 우리는 책을 찾아봤었다.

‘암환자를 위한 운동’에서도 일반적인 암환자에 대한 운동뿐이었고, 뼈전이 환자를 위한 재활 운동법은 나와있지 않았다.

서울 병원에는 뼈전이 환자를 만나지 못했지만, 병상이 많은 이 병원으로 오게 되면 뼈전이 환자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했던 터였다.

입원하자마자 뼈전이 환자를 만나다니.

마치 유니콘을 만난 어린이처럼 우리는 흥분했다.



“처음에 암세포가 척추, 허벅지 뼈, 정강이 뼈까지 진행 됐었죠. 유전자 검사 후 표적항암제로 항암을 시작했고 지금 32회 차 항암 중이에요. 다행히 항암 3개월 만에 암의 80%가 사라져 마약 패치도 제거했어요.”

“지난 병원에서는 남편이 뼈 전이라 최대한 움직임을 자제해야 한다고 했거든요, 혹시 운동은 어떻게 하셨어요?”

“암 걸리기 이전에는 오랫동안 조기축구를 했었거든요, 암에 걸린 이후로는 하루도 빠짐없이 하루 1시간 걷기 운동을 하고 있어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컨디션이 안 좋을 때도 무조건 걸었어요. 잘 먹고, 한 시간 이상 걸어서 몸을 만들어야 항암을 견뎌낼 수 있어요. 요즘 항암제가 정말 좋아지고 있거든요. 버티고 견디면 무조건 살 수 있어요.”

버티면 무조건 살 수 있다. 맞는 말이다.

물소아저씨는 표적항암제를 사용할 수 있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 치료 효과가 높았던 것 같다. 위암의 경우 HER2 유전자를 가진 사람을 위한 표적항암제가 있기는 하지만 HER2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위암 환자의 10% 밖에 되지 않는다. 표적항암제에 비해 치료효과는 떨어지기는 하지만 견뎌내다 보면 HER2 유전자가 없는 상호씨 같은 위암환자에게 효과적인 항암제가 개발될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다시 한번 의지를 다지며 복도로 나왔다.

우리만의 산책을 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병동은 122 병동과 123 병동이 공간을 나눠 사용하고 있다.

가운데 간호스테이션을 중심으로 침대가 드나들 수 있는 넓이의 복도가 이어져 있고 벽 쪽으로 병실이 자리 잡고 있다. 출입구 기준으로 오른쪽은 123 병동, 왼쪽은 122 병동이다.

122 병동은 암병동으로 보호자나 간병인이 직접 간병을 할 수 있는 곳이고, 123 병동은 응급병동으로 응급실에서 올라오는 환자들과 3박 4일 항암제를 투여하는 암환자가 단기로 입원하는 곳이다.

우리는 간호스테이션과 병실 사이의 넓은 복도를 트랙을 돌듯 계속 돌았다.

각 병실 입구에는 입원한 환자의 담당과와 이름의 일부, 나이가 적힌 종이가 붙어있다.

남편과 나의 일과는 눈에 띄는 환자가 새로 들어왔는지 둘러보는 것이었다.

특히, 나이가 어린 환자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어? 상호씨, 27살 HO 환자가 들어왔어.”

HO는 혈액종양내과 약자로 암환자를 의미했다. 남편의 이름 앞에도 HO가 붙어있다.

“그러게, 27살은 너무 어린데…”

열린 문 사이로 내부를 흘끔 들여다봤지만 커튼에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후가 되자 넓은 5인실에 우리만 남아있었다.

항암을 받으러 왔던 환자들은 퇴원을 했고, 응급환자들은 배정된 과의 입원실로 이동했다.

“상호씨, 특실이 이런 느낌일까?”

오랜만에 샤워도 하고, 주위 신경 쓰지 않고 편하게 대화도 하며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있을 때 간호사가 들어왔다.

“환자분, 지금 22 병동에 겨우 자리가 두 군데 났어요. 한 번 보실래요?”

“저희는 병실을 옮길 마음이 없는데요? 여기 아무도 없는데 계속 있으면 안 되나요?”

“여긴 응급 병동이라서 72시간 밖에 입원이 안 돼요. 그 이상 입원해야 한다면 22 병동이나 21 병동으로 옮기셔야 해요. 규정이 그렇습니다.”

아, 서울에서도 6층 응급병동에서 4일 정도 있다가 암병동으로 이동했던 것이 생각났다.

일단 간호사를 따라 자리가 났다는 병실을 구경하러 들어갔다.

22 병동은 23 병동과 전혀 달랐다.

같은 5인실이었지만 22 병동은 침대 공간이 다닥다닥 붙어있었고, 2열 사이 사람이 드나드는 공간도 침대가 지나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좁았다.

닭장 같은 병실에 복도 쪽 한 자리와 가운데 자리 하나가 비어있었다.

“72시간 안에 이동하면 되는 거죠?”

“네, 늦어도 내일은 이동하셔야 해요.”

23 병동 병실로 들어오자 캄캄한 방 창가에 아파트와 가로등 불빛이 별처럼 수놓아져 있었다.

“여기 너무 좋은데… 옮기기 싫다.”

“그러게.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내일 옮기면 그 사이 가운데 자리만 남아있는 건 아니겠지?”

“응급병동에 사람들 거의 없으니 암병동으로 넘어갈 사람 없지 않을까? 혹시 모르니까 아침에 옮기자.”

하지만,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다음날 아침식사 후 소화도 시킬 겸 병동 복도를 돌았다.

옮길 병실도 다시 한번 둘러볼 겸 병실 앞에 섰는데, 2칸 비어 있어야 할 칸에 한 자리만 남아있었다. 그것도 복도 자리에 다른 사람의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HO 강** 27세.

‘아…’

눈치게임에서 실패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벌칙은 험난했다.

응급병동의 병실은 병실 자체도 넓었고, 대부분이 항암을 위한 단기 입원이라 보호자들이 상주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가 있었던 응급병실 역시 보호자는 나 하나뿐이었다. 병실 안에 인구밀도가 적은 편이라 지내기 쾌적했다.

하지만, 122 병동은 달랐다.

대부분 장기 입원 환자였고, 당연히 연로하시거나 위독한 환자들 뿐이었다. 게다가 실제 병실 사이즈도 응급병동보다 눈에 띄게 좁았고, 모든 환자 옆엔 간병인이 있었다.

내키지 않았지만 선택권이 없으니 짐을 싸서 122 병동 병실의 가운데 자리로 옮겼다. 남편 침대와 옆 침대 사이 나의 보호자침대를 밀어 넣자 테트리스처럼 딱 맞아떨어졌다. 커튼의 경계가 없다면 내가 남편의 보호자인지 옆 환자의 보호자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저, 누나. 제 침대를 조금 옆으로 옮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옮겨 볼까요?”

공간을 보니 고작 2cm 정도 가능 할 것 같았다.

“괜찮아요. 거의 차이도 없을 것 같네요. 조금 좁지만 병원이니 어쩔 수 없죠. 고마워요. 나 코 엄청 고는데 나 때문에 못 자면 어쩌죠?”

“괜찮아요, 전 한 번 잠들면 업어가도 몰라요.”


짐 정리를 마치자 회진시간이 다 되었다.

상호 씨는 여전히 식도의 고통이 심했지만 다행히 식사량이 늘어 잡곡밥 반 공기와 부드러운 반찬도 조금 먹을 수 있게 됐다. 반면, 숨 찬 증상과 현기증은 더욱 심해졌는데 아무래도 빈혈 수치가 나빠진 것이 아닌가 걱정됐다.

“헤모글로빈 수치 9.5, 산소포화도도 정상이네요.”

“이상하네요, 그렇다면 이 증상의 원인은 뭘까요?”

“혈액검사 상에는 특이점이 없네요. 좀 더 지켜보기로 하지요.”


대체 뭐가 문제일까?

서울 병원을 퇴원하자마자 이 증상이 시작 됐고, 증상은 점점 더 심해져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고 어지러워했다.

‘대부분의 약은 서울에서 복용했던 것과 같은데, 뭔가 빠지거나 달라진 것이 있는 걸까?’

스캔해 둔 서울 병원의 의료비세부내역서 파일을 열어 지금 복용하고 있는 약과 교차 체크를 하며 하나씩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항상 응원해 주시고, 기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오늘도 긍정적인 생각에 집중하며 하루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제 글을 읽어주신 분들의 하루도 평안하셨길 기도해 봅니다.


라이킷 구독은 사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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