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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Oct 20. 2023

타인의 집에 들어온 것처럼

“우리 이제 설이 만나러 가자.”

남편과 함께 1층으로 내려오면서 사랑스러운 딸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그새 키가 많이 자랐을까?’

그도 그럴 것이 설이는 아빠를 닮아 키가 큰 편이다.

이른 봄 말랑해진 흙을 뚫고 나온 새싹처럼  매주 눈에 띄게 쑥쑥 자라 있었고, 얼굴도 완벽한 어린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작년에는 티니핑과 포켓몬스터 만화영화에 빠져 있었는데, 이제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푹 빠져있다.

티니핑과 포켓몬스터를 닮은 여신들을 도화지 가득 창조해 내고 있다.

설이가 도착하기 10분 전 미리 1층에 도착한 우리들은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산책하듯 걸었다.

지난 병원과 비교해 건물 규모가 커서인지 한 바퀴를 다 돌려면 10분이 넘게 걸렸다.

면회 시스템은 병원마다 차이가 있다.

경희대병원은 외래 시간에만 건물 안으로 외부인이 들어올 수 있었고, 이후에는 외부인이 들어올 수 없도록 철저하게 입구에서 막았었다. 이 병원은 면회객들이 365일 24시간 1층에서 환자를 면회를 할 수 있다.


“엄마!”

뛰어와 품에 폭 안긴 설이가 얼굴을 들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짜잔! 아빠 심심할 때 보라고 동화책을 만들었어. 얘 이름은 알렉스아세카고 지혜의 여신인데 싸움도 잘해. 옆에 작은 캐릭터는 레오필로시아야. 부끄러움이 많고, 알렉스아세카 동생이야, 여동생.”

“알렉스아세카 드레스 색감이 너무 좋은걸.”

“엄마, 그리고 다음 장에는…”


“진아야…”

나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창백해진 상호씨가 양손으로 링거대를 부여잡고 버티고 있었다.

“나, 가슴이 너무 답답해, 숨 쉬기가 너무 힘들어…”


“설이야, 아빠는 수술한 허리가 너무 아프대. 아직 완전히 나으려면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엄마가 아빠 병실에 눕혀놓고 다시 내려올게”

“올케, 상호가 많이 힘든 것 같아. 우린 그냥 갈게.”

“설이야, 이제 병원도 집이랑 가까워졌으니 엄마 자주 집에 갈 거야. 알았지?”

“좋아!”

설이는 광대뼈에 인디언 보조개를 만들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설이를 배웅하지 못하고 서둘러 12층으로 올라왔다.

항암 이후 며칠이 지났지만 헤모글로빈이나 다른 피수치에는 문제가 없었다.

이 증상이 항암제에 의한 부작용인지, 울렁임 방지제를 주사제에서 알약으로 변경해서인지, 잠을 못 자서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마치 사우나에 있는 것처럼 숨 쉬기가 너무 답답해. 차라리 어딘가 부러지는 것이 낫지. 이건 참기가 너무 힘들어.”


식사 후 나온 약 봉투에 울럼임방지제 5mg이라고 적혀 있었다.

‘분명 주사제도 10mg이었는데?’

이 알약을 10mg으로 변경해서 복용하자 남편의 증상이 점점 완화되기 시작했다.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며칠 후 퇴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되었다.



퇴원날.

병실 안 창문 가득 투명한 물방울이 부딪혀 떨어졌다. 제법 많은 여름비가 내리고 있었다.

짐은 이미 아침 일찍 싸두었다.

병원을 2번 옮기고, 침대 자리를 8회 정도 옮기면서 짐 싸는데 익숙해졌다.

큰 짐은 전날 형님 차에 실어 보냈고, 우리에게는 백팩과 쇼핑백 하나만 남겨졌다.

점심시간 후 병원 본관 입구에 카니발 문이 열리고 진동씨가 차에서 내렸다.


“형수님, 정말 죄송해요. 두 달 가까이 지인들을 통해 형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병원을 알아봤었는데, 지금 형님 상태에서는 받아주는 병원이 없었어요. 도움이 못 돼서 정말 죄송해요.”

처음 경희대병원에 입원했을 때, 진동씨는 지인들을 통해 빅5 병원에 연락해서 입원이 가능한지 알아봤었다. 답변은 어느 병원이나 동일했다. 남편의 뼈전이가 심해서 지금은 받아줄 수 없고, 항암을 통해 전이된 암이 사라지면 그때 해당 병원에서 수술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었다.

진동씨는 같은 회사 협력 부서 소속으로 유독 우리 남편을 따랐다.

결혼하기 전부터 우리 집에 가끔 놀러 와서 설이와 놀아주곤 했었는데 지금 진동씨는 두 공주님의 아빠가 되었다.

“지금 남편의 상태에서는 집에서 가까운 병원에서 치료받는 것이 최선인 것 같아요. 컨디션이 안 좋을 때 바로 응급실을 갈 수 있어야 하거든요. 호전이 되어 위 제거수술을 할 수 있는 시기가 오면 그때 진동씨한테 부탁할게요.”

우리를 태운 카니발이 빗속을 달려 8년간 살아온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갔다.


카니발 문이 열리고 진동 씨가 남편을 부축했다.

운전을 했던 대표님이 혹시나 뒤로 넘어질 것을 대비해 상호씨 뒤를 맡았다.

높은 계단 두 개와 나머지 5 계단을 올라 겨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 집은 남편이 아프고 난 뒤 거실 가득 남편의 짐으로 채워졌다.

커다란 모션배드와 실내 워커, 링거대, 약 선반.

어디에 손님을 모셔야 할지 난감해하던 중 대표님은 자연스럽게 남편의 책상의자에, 진동씨는 침대 끝에 앉았다.


두 달 동안 거의 집에 오지 못해서일까. 남의 집에 들어온 것처럼 모든 것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실제로 가끔 사용하던 물건들이 어디 있는지 가물가물 했다.

‘믹스 커피가 어디 갔지? 홍차가 있었던 것 같은데?’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서 암환자용 뉴케어와 냉장고에 있던 제로칼로리 레모네이드를 잔에 담았다.


오랜만에 회사와 회사 동료들 이야기를 나누는 남편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한 시간 동안 대화를 하고 대표님과 진동씨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입퇴원 할 때 연락하세요. 회사가 근처니까 저 안되면 진동이가 올 수 있을 거예요.”


남편의 컨디션은 시간이 갈수록 좋아졌다.

퇴원 3일째 되던 날은 하루종일 배가 고프다고 하면서 죽을 5끼, 고구마 2개, 감자 1개를 먹었다.

어떻게하면 남편이 빨리 컨디션을 회복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단지와 연결된 대형마트로 갔다.

수산물 코너에 가자 살아있는 전복이 꿈틀거렸다. 한 번도 전복을 손질해 본 적 없지만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찾아 찐 전복요리를 만들었다.

남편은 얇게 썬 찐 전복을 먹으며 ‘맛있다’는 말을 반복했다.

이렇게 잘 먹다 보면 금방 털고 있어날 것만 같아 희망에 부풀었다.

하지만, 언제나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8시가 넘어가자 남편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숨이 너무 답답하다며 휘청대기 시작했다.

“미안해, 나 응급실에 가야 할 것 같아.”



오랜만에 업로드 한 글에 변함없이 응원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아버님께서 암투병을 하셨던 독자 분도, 위 전절제를 하셨다는 독자분 댓글도 읽었습니다.

암에 걸려 투병하셨던 분과 가족분의 여정이 외롭지 않도록 제 글이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아프지 않은 독자 분들에게 고단한 날들에 집중하지 말고, 의미있고 행복한 것들에서 행복을 찾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분들과 라이크, 댓글 덕분에 힘을 얻어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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