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항암 2주의 주기 동안 병원에서 10일, 집에서 4일 정도 머물렀다.
어떤 날은 퇴원 하루 만에 응급실로 간 적도 있었다.
보통의 입원 암환자들은 10일 집에서 지내고 항암을 위해 입원하는 날 담당 교수 외래를 본 후, 당일 입원실로 올라와서 3일 후 퇴원을 한다.
상호씨는 가슴 답답한 증상으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했고, 항암 후에 경과 관찰 기간을 가져야만 했다.
우리는 보통 10일이 지난 후 퇴원을 했고, 3-4일 집에서 지내는 동안 동일한 증세로 응급실로 달려와야 했다.
퇴원은 했지만, 언제든지 응급실에 달려갈 수 있도록 짐을 사 뒀으며, 캐리어는 항상 현관문 앞에 있었다.
상호 씨가 표현하는 ‘가슴 갑갑함’이라는 상태는 몸에 여러 가지 증상으로 나타났다.
“도대체 가슴 답답하다는 상태가 어떤 거야?”
“수증기가 가득한 사우나에 24시간 있는 느낌이야. 숨을 반 밖에 들이쉬지 못하는 기분이야. 앉거나 서면 그 증상이 심해져서 오래 걸을 수도 없어. 밥을 먹을 때도 몇 숟가락 먹지 않았는데 목까지 차오르는 느낌이야.”
“그래서 혈압, 심전도, 산소포화도를 측정하는데 전부 정상으로 나오잖아. 심장의 문제일 수 있다고 해서 심장초음파도 하고, 폐를 의심해서 폐기능 검사를 했고, 폐 조영제를 넣어서 CT도 찍었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잖아.”
“그래서 나도 답답해. 증상은 있는데 원인이 안 나오니까. 언제까지 이렇게 병원에서 살 수도 없고…”
“당신이 증상이 있을 때마다 울렁임 방지제를 맞으면 증상이 완화된다고 해서 일단 맞고는 있는데, 교수님은 이 주사가 가슴 답답함에 쓰이는 주사는 아니라고 하시고…5일 이상 사용하면 부작용이 크다는데도 우린 벌써 2달이 넘도록 맞고 있잖아. 부작용이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도 모르겠어.”
해답이 없는 문제를 풀며 매일매일 불안한 날들은 계속되고 있었다.
새벽 5시 반 병동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신발 소리가 점점 우리에게 다가왔다. 간호사 선생님이 분명할 것이다.
“설상호 환자분 엑스레이 찍고 오세요.”
2층 엑스레이실 복도에 서 있을 때다.
“코드블루, 코드블루 1222병동, 코드블루, 코드블루 1222병동.”
1222병동이면 우리 항암병동이었다.
“누구지?”
지난밤 옆 호실에는 호흡이 힘들다는 환자가 있었다.
2주 전 그 5인실에 입원했던 적이 있어서 위급한 분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엑스레이를 찍고 병실에 올라가니 간호스테이션 옆 집중치료실에 우리가 예상했던 혈액암 할아버지가 누워계셨다. 간호사 6명과 의사 4명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그중에는 우리 주치의 선생님도 있었는데 머리카락에서 땀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르신 몸에 부착된 각종 경보음은 정신없이 울려대고, 30분 가까이 교대로 심폐소생술이 이어졌다.
의사분들의 머리카락은 땀에 젖어 가닥가닥 얼굴에 붙어있었다.
다행히 호흡이 돌아왔고, 어르신은 하루종일 집중치료실에 머무르면서 경과 관찰을 했다.
같은 날 저녁 우리는 또다시 ‘가슴 답답함의 원인’을 주제로 복도를 걸으며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때 복도 끝 병실 앞에 웅성웅성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이 보였고 자연스럽게 우리 둘도 그 인파에 합류했다.
“강유진씨! 강유진씨! 대답해 보세요!”
파란색 수술복을 입은 의사 선생님이 누워있는 소녀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누워있는 소녀는 얼굴을 복도 쪽으로 향하여 모로 누워있었다.
창백하게 하얀 피부에 검고 긴 머리카락, 머리카락처럼 진한 검은 일자 눈썹.
소녀의 표정은 고요하고 평안해 보여서 마치 아름다운 단백질 인형처럼 보였다.
우리는 병실 입구 옆 벽에 붙은 이름표를 확인했다.
‘PU / F / 21세 강유진’
소녀의 자리는 창가였고, 그 창가 위에는 커다란 토끼 인형이 앉아있었다.
21살이 병원에 입원하면서 토끼인형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을까. 천천히 둘러보니 창가에는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소녀의 이불은 병원 이불이 아니라 소녀의 방에 어울리는 체크무늬였다. 소녀의 병실은 소녀의 방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았다. 안을 지켜보고 있자니 허락 없이 소녀의 방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멈춰진 소녀 주위의 공기와는 다르게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들은 부산하게 몸을 움직였다.
“강유진씨! 강유진씨!”
바쁘게 오가는 의료진 사이를 담담하게 움직이는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색 반팔티에 검은색 바지를 입고 긴 머리를 질끈 묶은 40대 후반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이 상황에 동요하지 않고 천천히 카트에 짐을 꾸리고 있었다.
마치 익숙하다는 듯 시간을 들여 물건들을 담고 있었는데, 이 상황이 언제 마무리되는지 아는 사람 같았다.
우리는 웅성이는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왔다.
“저 소녀 아침까지만 해도 복도에서 간병인 아주머니들과 웃으면서 대화하고 있지 않았어?”
“응, 맞아. 나도 봤어.”
“PU는 어느 과 지? 이 병동은 항암 병동이라서 이름 앞에 HO가 붙잖아?”
“금방 찾아봤는데 호흡기내과래.”
“호흡기내과? 호흡기내과 환자가 왜 항암병동에 있는 거지?”
“글쎄… 아무튼 제발 무사히 깨어났으면 좋겠다.”
소녀를 처음 마주친 건 이 병원에 처음 입원했을 때였다.
응급실을 거쳐 처음 이 항암병동으로 올라오던 날, 지하 1층 편의점에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이송직원이 침대를 끌고 나왔다.
침대엔 수술실 푯말이 걸려 있었고, 체크무늬 이불을 목까지 덮은 검은 머리 소녀가 누워있었다.
소녀의 까만 눈동자와 나의 갈색 눈동자가 부딪혔다.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6시 50분 아침식사 전 보호자들은 분주하다.
환자 입맛에 맞는 반찬과 보호자 식사를 데우려고 약속이나 한 듯 배전실에 모인다.
배전실에는 설거지를 할 수 있는 싱크대가 있고, 정수기 두 대, 전자레인지 두 대가 있다. 어제 위기를 넘긴 혈액암 어르신의 간병인이 정수기에서 물을 받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제는 오래 근무한 직장 동료처럼 느껴진다.
“안녕하세요, 아니, 어제 그 젊은 아가씨 말이야. 밤늦게서야 중환자실 갔어요. 아침까지 멀쩡하게 걸어 다니고 그랬는데 말이야, 매번 갑자기 그러네. 중환자실에서 올라온 지 얼마 안 됐는데 갑자기 또 그리 됐지 뭐야.”
‘한 동안 안 보인다 생각했는데 그때도 중환자실에 있었구나.’
“겉보기엔 건강해 보이던데, 어디가 아픈 거래요?”
평소 남의 일에 큰 관심이 없던 남편도 노인과 중환자들 사이에 어울리지 않게 밝게 빛나는 소녀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동생은 죽고 보상금이 1억 나왔는데 병원비에 다 들어간 지 오래지.”
어제 그 난리통에 담담하게 짐을 꾸리던 어머니의 얼굴이 떠 올랐다. 이미 이런 일이 10년이 넘는 동안 일상처럼 반복 됐으리라. 이 암병동에 있는 환자와 가족들은 갑작스러운 암 통보에 억울하고 암담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감히 이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처음 이 병원에 전원 와서 외래를 받던 날 복도 기둥에 붙어있던 현판이 생각났다.
가습기살균제보건센터.
‘아직도 가습기 피해자가 있나?’
라고 생각했었다. 철 지난 현판을 아직도 걸어놓다니,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나 보다고 생각했었다.
어쩌면 우리 같은 제삼자는 피해자들을 뉴스 이슈로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에게는 너무 지난 이야기고 기억에서 사라져 버린 철 지난 기사거리에 불과했다. 이미 과거에 너무 많이 소비해버린 지루한 기삿거리.
나는 찬 물을 끼얹은 듯 멍해졌다.
밝은 소녀의 얼굴과 창가의 토끼인형, 의식 없는 딸 옆에서 덤덤하게 짐을 싸던 엄마의 얼굴이 끊임없이 반복 재생됐다.
미디어에서 소비되는 영상이 아니라, 누군가는 평생을 언제 미끄러질지 모르는 젖은 낙엽을 잘근잘근 밟듯 살아내야했던 위태롭고 외로운 삶이었을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