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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Nov 01. 2023

고생 끝에 불행

경희대 병원을 막 퇴원 하던 때, 우리는 머지않아 우리의 삶이 안정을 찾으리라 기대했었다.

항암 2주기 동안 항암 받는 3일은 병원에서, 나머지 11일은 집에서 지내게 될 거라고.

물론, 항암 부작용으로 머리카락이 빠지고, 손 발끝이 저리고, 심한 무기력 감에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이 늘어나긴 하겠지만, 경희대 병원에서 겪었던 일에 비하면 아무 일도 아닐 거라고 상상했었다.

설이와 예전처럼 우리가 만든 캐릭터를 오려 나무젓가락에 붙여 우리가 만든 배틀 놀이를 하며 평범하지만 행복한 일상을 보낼 거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남편의 항암 부작용 중 이런 부작용들은 귀여운 증상일 뿐이었다.

세 번째 항암 이후 남편의 ‘숨쉬기 답답한 증상’이 시작됐다.

처음엔 사우나에 있는 정도의 답답함으로 시작해서 예고도 없이 갑자기 증상이 악화되면서 걷기도 힘든 상태가 되었다.

문제는 아무리 심전도와 심장초음파 검사를 해도, 산소포화도를 측정해도, 혈압을 재봐도 정상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부정맥 검사를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환자는 고통스러워했지만 원인의 실마리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심장 혈관에 혈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하에 심장 혈관을 확장시켜 주는 약이 처방되었다. 동시에 심리적인 문제일 수 있다는 가정하에 공황장애 약도 처방 되었다. 거기에 더해서 근육이완제도 처방되었다.

추가된 약을 아무리 먹어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자, 그저 약물의 용량이 증가될 뿐이었다. 하지만, 시도와 상관없이 증상은 완화와 악화를 반복할 뿐이었다.


얼마 전 숨 답답한 증상이 며칠간 완화되어 퇴원을 했었다.

그날은 남편의 컨디션이 나쁘지 않아 오랜만에 설이와 함께 배틀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침대에 누워있던 남편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일어났다.

“진아씨, 나 숨 쉬는 게 너무 힘들어. 응급실에 가야 할 것 같아. 지금 당장.”

아빠 얼굴을 본 설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안절부절못하며 말했다.

“고모한테 전화해 줘. 나 고모 집에 갈래.”

5분도 되지 않아 고모가 설이를 데리러 왔고, 설이는 손을 흔든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고모 손을 잡고 떠났다.

병원 응급실로 가는 길 설이가 불안해하던 얼굴과 황급히 떠나던 뒷모습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재생됐다.

암은 가장 편안하고 따뜻한 장소였던 집이라는 공간을 세상에서 가장 불안한 장소로 만들어 버렸다.

설이에게는 집이란 엄마 아빠가 언제 떠나버릴지 모르는 불안한 장소가 되어 버렸고, 남편에게는 언제 숨쉬기 힘들어질지 모른 채 불안에 떨어야 하는 장소가 되어버렸다. 

우리 가족은 마음 편히 쉴 곳 없는 불안한 상태로 살아가야 했다. 그리고, 이내 뿔뿔이 흩어졌다.

마치 집이 없는 난민처럼.




병원에서는 9시가 되면 취침 방송이 나온다.

“잠들기 전 화장실에 다녀오시고, 낙상의 위험이 있으니 보호자의 부축을 받고 화장실에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이제부터 주위에 피해를 주는 소리는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방송 후 휴대폰 진동소리가 느껴져 화면을 보니 ‘주인아주머니’라는 발신자명이 떠 있었다. 우리가 전세로 살고 있는 아파트 소유주의 어머니였다. 병실을 나와 병동 밖 배전실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네. 잘 지내시죠?”

“아…네…”

“다름이 아니라, 우리 아들이 이번에 결혼해서 신혼살림을 그 집에서 시작하기로 했어요. 갑자기 미안해요.”

‘전세 계약일이 언제였더라. 9월 중순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이 7월 20일이니까 두 달도 안 남았잖아.’

“지난번 전세 연장할 때 오래 살아달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코로나 때문에 결혼식을 못 올렸는데, 급하게 결혼 날짜가 잡혔네. 그 아파트 리모델링해서 들어간다나 봐요.”

“아… 그래요? 일단 알겠습니다.”

다른 이유도 아니고 소유주가 결혼해서 들어온다니 결혼을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한 달 반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집을 구할 수 있을까? 그것도 병원 안에서?

일단 병실로 들어와 주변 아파트 전세 시세를 검색했다.

최근 전세가격이 많이 하락했다고는 하지만, 4년 전에 비하면 60%가 올라있었다.

남편은 이제 직업이 없어 수입이 없었고, 나는 육아휴직 중이라 수입이 없는 거나 다름없었다. 목돈의 대부분은 주식에 묶여있었다. 어떻게 돈을 끌어 모은다 해도 어디로 이사해야 하지?

이사를 간다면 거실에 있는 남편 침대를 넣을 수 있는 3룸으로 가는 것이 좋을 것도 같다.

그런데, 무리해서 3룸 전세를 계약했는데, 설이와 나만 남아버리면 어떻게 하지?

만약에 그렇게 되면, 회사에 복직해야 하는데 여기에서 서울로 출퇴근을 해야 하는 것일까?

육아휴직 중인데, 전세자금 대출은 충분히 나올까? 나는 당장 복직해야 하는 것일까? 

머릿속이 복잡하게 뒤엉켜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 같아 속이 울렁거렸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당신 전화받고 온 뒤로 얼굴이 너무 심각해.”

“집주인이 결혼해서 들어온다고 집 빼달래.”

남편의 얼굴이 금세 어두워졌다.

“괜찮아. 올해 초 연봉이 꽤 올랐으니까 전세자금 대출받는데 문제없을 거야. 이번 기회에 당신 방도 만들어주고, 당신 거실에서 운동할 수 있게 좀 넓은 곳으로 가고 좋지.”

“전세 많이 올랐을 텐데?”

“알아봤는데 작년보다 많이 내렸더라.”

“그런데 얼굴이 왜 이렇게 심각했어? 뭔가 문제 있는 거 아니야?”

“아니야. 그냥 시세 알아보느라 집중해서 그래.”


밤새 고민하다 다음날 낮 주인아주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런 말씀 죄송하지만 사실 저희가 사정이 너무 안 좋아요. 개인적인 사정으로 부담드려서 죄송한데요, 저희 남편이 암 투병 중이라 병원에 입원해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한 달 반 안에 이사를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서요. 날짜를 미뤄 주시면 안 될까요?”

“아, 남편분이 암 투병 중이신가요? 우리 남편도 암 투병 중이에요. 많이 힘드시겠네요. 이런 말씀 죄송하지만, 우리 아들이 결혼 날짜가 잡힌 상황이라서요. 일단 내일 아들과 상의해 보고 알려드릴게요.”

삶이 불확실성이라는 소용돌이에 빠져 깊은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글 쓰는 속도가 나지 않아 7월 말 이야기를 지금 올리게 되었네요.

혹시 오늘 글로 걱정하시는 분들이 계실까 봐 염려되어 몇 자 적어봅니다.

곧 잘 해결한 이야기 올릴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


작가 이름을 본명에서 필명으로 변경했어요.

트리플 에이형이라 제 본명을 드러내고 글을 쓰자니 너무 부끄러웠어요.

많이 헷갈리시겠지만, 저의 새로운 필명이 편안하게 느껴졌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별일 없이 평안한 날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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