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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Nov 15. 2023

어쩌면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머물 집

아파트 소유주인 바쁜 아들을 대신해서 어머님이 부동산과 관련된 업무를 보고 계셨다.

하지만, 전업 주부로 평생을 살아오셔서 그런지 부동산에 대해 잘 모르셨고 여러모로 힘들어하셨다. 

그래서, 4년 전 전세 계약서를 작성했던 공인중개사를 통해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기로 했다.

우리의 요구사항은 정확하게 이사 날짜를 못 박지 않는 것으로 했고, 그저 최선을 다해 집을 구해 보는 것으로 했다. 주인아주머니는 상황이 닿는 때까지 기다려 주기로 했다.


처음엔 집 구하는 것은 일단 잊어버리고 남편의 치료에 집중하자고 마음을 먹었는데, 숙제를 안 한 어린아이처럼 이사를 가기로 마음먹은 이상 집을 빨리 구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커져갔다.

뉴스에서는 전세 매물이 쌓여 있다고 했지만, 막상 단지 근처 부동산에 전화를 하니 우리 동네는 뉴스와 전혀 달랐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은 토박이들이 많이 살고 있는 동네라서 그런지 대부분 소유주가 거주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사를 오가는 사람들도 많지 않아 전세 매물이 귀한 동네였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과 달리 이 동네의 시계는 느긋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게다가 이 아파트는 독특하게도 10평대부터 60평대까지 다양한 평수가 섞여 있었고, 우리가 찾는 25평과 30평 사이의 면적은 매물이 귀했다. 어플이나 포털 사이트에 전세 매물을 올린 부동산에 전화를 걸었지만 이미 계약이 완료 됐다는 답변이 돌아올 뿐이었다.


그렇게 보름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이었다.

우리는 모처럼 3주 만에 퇴원을 해서 집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제 곧 이사를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익숙했던 집안 풍경이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불편하게 느껴지지 시작했다. 하나하나 집안을 천천히 둘러보니 몇 달 사이 우리 집은 가정집과 병원의 공간이 뒤죽박죽 섞인 어수선한 공간이 되어 있었다. 크지 않은 거실에 남편의 커다란 모션배드가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고, 약을 보관하는 서랍장, 보행을 도와주는 워커, 링거대가 발 디딜 틈 없이 거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팔짱을 끼고 한숨을 쉬고 있던 찰나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중개했던 부동산 아주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찾고 있는 집 조건이 어떻게 되셔?”

“같은 아파트 단지의 방 3개인 곳을 찾고 있어요.”

“흐음… 매물이 잘 안 나오는 귀한 평수인데. 어디 보자. 얼마 전까지 매물이 두 개 나와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확인해 보니 하나는 어제 나갔고 하나는 리모델링 중인데, 아직 계약은 안 됐네. 빨리 보러 가는 걸로 해요. 매물이 나오는 족족 바로 나간다니깐.”

“그래요? 그러면 내일 낮 1시쯤 보러 갈 수 있을까요?”

“내일? 내일은 태풍 카논인가 뭔가 온다던데? 어렵지 않을까? 일단 날씨 상황 봐서 연락드릴게.”


거실 창가에 드리웠던 나무는 밤새 바람 소리에 맞춰 나뭇잎을 세차게 문질러댔다.

아침에 눈을 떠 거실 창가로 다가갔더니 빗방울이 유리창을 톡톡 경쾌하게 노크하고 있었다.

“태풍이 지나갔나 봐. 어느새 빗줄기가 잦아든 것 같아.”

“컨디션은 어때?”

“정말 좋아.”

‘남편 컨디션이 언제 나빠질지 모르니 오늘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으면 좋겠는데.’

때마침 전화가 울리고, 부동산 사장님과 매물이 있는 동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8월 내내 뜨겁게 달궈졌던 대기가 뜨거운 아메리카노에 얼음 한 스쿱을 넣은 것처럼 시원하게 식어있었다.

하늘에서 직선으로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물 웅덩이에 부딪혀 튀어 올랐다.

이 아파트 단지는 완공된 지 30년이 지난 아파트로 우리는 설이가 태어나자마자 이곳으로 이사 왔다. 감사하게도 맞벌이하는 우리 부부를 대신해서 큰 형님이 설이를 흔쾌히 돌봐주겠다고 하셨고, 형님이 사는 이 아파트로 이사를 오게 된 것이다. 덕분에 나는 출산한 지 100일도 되지 않아 복직을 할 수 있었다. 이 아파트는 설이가 1살 때부터 8살이 된 지금까지 자라고 있는 곳이며, 우리는 곧 이 아파트 단지 안에서 3번째 이사를 할 예정이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베란다 확장 공사를 한 넓은 거실이 눈에 들어왔다.

크지는 않았지만, 방이 3개라서 지금 거실에 있는 남편의 짐들을 남편 방으로 들어놓기에 충분해 보였다.

싱크대도 현관 신발장, 화장실도 모두 새것으로 교체되었고, 도배와 장판도 깨끗하게 완료되어 있었다. 

지금 사는 집과 비교했을 때 구조가 동일했으며, 차이점이라고는 방이 하나 추가된 것과 베란다가 확장되어 넓어졌다는 것뿐이었다. 줄자로 재보니 방의 크기도 거실도 주방 크기도 베란다도 지금 집과 동일했다. 

가구 배치는 지금 살고 있는 집 그대로 옮겨 넣으면 되리라.

“언제 계약할 예정이에요? 빨리 하는 게 좋을 거예요. 어제 집 보고 간 사람이 오늘 연락 주기로 했거든요.”

부동산에서 보통 이 시점에 이런 말을 공식처럼 하긴 하지만 이번엔 진짜일 것 같았다.


중개사무소 문을 열자마자 가장 먼저 나를 반긴 것은 갈색털이 반짝반짝 빛나는 강아지였다.

몸무게가 5kg 정도 되어 보이는 작은 몸집에 신중해 보이는 짙은 갈색 눈동자가 내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뾰족한 입 위에 촉촉한 검은색 삼각형 코를 킁킁 거리며, 앉아있는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더니 이내 꼬리를 흔들었다.

강아지 머리를 쓰다듬자 단단한 머리뼈가 손바닥 안에 쏙 들어왔고, 벨벳처럼 부드러운 단모가 스르륵 미끄러졌다.

“어머, 얘가 웬일이지? 엄청 까칠한 아이인데?”

오전에 만들었던 달콤한 딸기잼 향기가 몸에 배어서일까? 손바닥을 코에 가져 가 냄새를 맡아봤다.


한참 계약서를 작성하고 있는데 사무실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아, 지금 막 다른 분이 계약하셨어요.”

어제 집을 보고 간 사람이 전화를 한 것이었다.

위기 앞에서 나의 직감은 능력을 발휘했다.

“그런데, 이사 날짜는 언제로 할까요?"

우리 둘은 미신을 믿지 않았기에 결혼한 10년 동안 여러 번의 이사를 하면서 단 한 번도 손 없는 날에 이사를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만큼은 부동산에 오기 전 손 없는 날을 미리 메모해 뒀다. 이사는 손없는 날에 맞춰 9월 4일로 정했다. 손 없는 날은 귀신이나 악귀가 돌아다니지 않아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길한 날이라고 한다.


이제, 혹시 모를 불길한 일은 미세먼지만큼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사 날짜가 정해지자 해야 할 일이 가득 쌓였다. 먼저 1주일에 한 번 있는 분리수거 날짜에 맞춰 낡은 집기들을 버렸다. 일요일마다 10번 넘게 분리수거장을 분주히 오가며 집안의 공간을 잡아먹고 있던 물건들을 밖으로 꺼냈다. 결혼할 때 장만했던 세탁기, 에어컨은 너무 낡아 이사하면서 새로 구매하기로 했고, 새 제품을 구매하고 설치하는 일정을 조율해 나갔다. 그 외에 인터넷과 정수기를 이전 설치하는 일정도 잊으면 안 되었다.

처음 집을 구하기로 했을 땐 최대한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지금 집 크기와 동일하거나 작은 사이즈의 집으로 이사 가려고 했었다. 대부분 병원에서 지낼 테니 그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짧은 순간이지만 퇴원해서 집으로 들어왔을 때, 어수선한 집에서 우울해하는 남편을 보며 생각을 바꿨다.


지금 우리는 살기 위해 최선을 다 하고 있지만, 운명이 우리 편이 아닐 경우 이번에 이사 갈 집은 남편에게 이 세상에서 지낼 마지막 집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남편이 편히 쉴 수 있도록 안락한 집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더위에 약한 남편을 위해 남편 방에 별도의 에어컨을 설치했으며, 항암 이후 차가운 바람이 피부에 직접 닿으면 고통스러워하는 남편을 위해 무풍 에어컨으로 설치했다.

제품을 결정하는 데 있어 가격은 고려하지 않았다.

오로지 남편에게 가장 적합한 물건으로 집안을 채워 넣었다.


이사 당일 아침 8시 집 앞에 이삿짐센터 차량이 주차를 했다.

“안녕하세요.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서 이사하는 거니까 환자분이 바로 쉴 수 있도록 침대 먼저 이사할 집에 옮겨 둘게요. 침대 옮기면서 환자분 방에 들어갈 짐도 함께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흰 백발 머리를 단정히 빗어 한 갈래로 묶고, 달마처럼 형형한 눈빛을 가진 사장님이 말했다.

“그렇게 해주시면 저희는 너무 감사하죠.”

낮 11시가 되기 전 남편의 침대, 책상, 약수납장 등 남편방에 들어갈 짐들이 완벽하게 정리되었다.

“상호씨, 힘들지? 침대 설치 됐으니까 먼저 들어가서 눕자. 너무 오래 서 있었어. 먼지도 많고, 나머지 짐이 들어오면 소란스러울 테니 문 닫고 있어.”

“아니야, 나 이상하게 오늘 하나도 안 힘드네? 나랑 같이 편의점 가서 아저씨들 음료수도 사고, 간단하게 먹을 우리 간식도 사자.”



상호 씨는 편의점으로 가는 400미터 남짓한 길을 힘든 내색 한 번 없이 걸었다.

“당신 이상해. 어제까지 숨이 차서 잘 걷지도 못했었는데.”

“그러게, 나 오늘 너무 기분이 좋아. 내 방이 생긴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어.”

“당신이 좋아하니까 내가 다 기분이 좋네.”

우리는 서로 마주 보고 웃었다.

이삿짐이 모두 정리되자 우리 세 식구는 집안을 하나하나 둘러보았다.

거실에는 여러 명이 앉을 수 있는 소파와 따뜻한 색상의 조명이 아늑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베란다 창가에는 엄마에게 받은 붉은색 꽃이 핀 안시리움과 3년 전 상호 씨 동료가 선물한 유난히 진한 초록색 잎의 금전수가 자리를 잡았다.


베란다 문을 열자 반쯤 익은 감나무가 나타났다.

“설아 이것 봐. 집 화단에 커다란 감나무가 있어.”

“어디, 어디? 어, 진짜다! 엄마, 이거 봐. 감 색깔이 반은 초록색이고 반은 주황색이야. 그런데, 왜 까만 점이 있어?”

“글쎄, 엄마가 지난번에 감나무에 앉은 작은 새를 봤는데, 아마 그 새가 감이 잘 익었나 부리로 콕콕 쪼아본 게 아닐까?”

“아니야, 내 생각엔 애벌레가 갉아먹은 것 같아. 우리 감 다 익으면 따 먹자.”

“멋진 생각이긴 한데, 애벌레랑 새들에게 양보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그냥 사 먹자.”

“그래, 사 먹자.”

그날 밤 이 집에서는 부디 행운만 가득하길 기도하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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