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한테 인정받을 전략을 세웠다. 연봉을 높이고 싶었고 내 노력에 대한 인정을 받고 싶었다. '이 정도는 남들도 다 하고 살더라'는 각오와 함께 경력 있는 신입사원이라는 타이틀에 맞게 실장님들보다 뛰어난 디자인 능력을 발휘하리라 다짐했다. 과제를 받았을 때부터 디자인 자료를 하나하나 꼼꼼히 분석하고, 실장님들이 무심코 지나가는 디테일까지 질문했다. "이런 방식으로 설계를 풀어가도 괜찮지 않을까요?", "제작 사양에 스탠이 있던데 왜 값싼 스틸을 사용하지 않고 이것을 사용하나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배움을 갈망하며 회사에 충성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내가 얼마나 준비했는데, 이 정도는 해야지.' 자신이 누군가에게 무시당하지 않을 정도로 잘하고 있음을, 끊임없이 증명해 보이려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저녁이 되면 퇴근하던 동기들에게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하고 혼자 자리에 남았다. '야근도 다들 하고 사는 걸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스스로 결정한 일이라는 생각으로 매일 야근을 이어갔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책을 찾아 헤매며 다시 실장님께 달려갔고, 실장님의 조언을 바탕으로 수정과 또 수정을 거듭했다. 그렇게 완벽해지기 위해 모든 걸 바쳤던 나날이 이어졌다. 하루하루 작은 성취감이 있었고,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실장님들로부터도 차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고, 어느새 회사 생활이 익숙해지며 조금씩 자신감도 쌓여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 마음은 조금씩 지쳐가기 시작했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이 일을 왜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디자인이 나한테는 무엇이고 이것이 올바른 방향일까를 의심했다. 일과가 끝날 무렵, 나의 성취감보다는 묘한 허전함이 더 크게 다가왔다. '이게 과연 내 길이 맞는 걸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졌다. 야근도, 상사의 인정을 받기 위한 노력도, 디자인을 더 잘하려는 모든 열정도 어느새 버거운 일이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왜 즐거움 대신 불안감이 더 크게 자리 잡은 걸까?' 마음속에서 작은 의구심이 싹트기 시작했고, 매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나를 기다리는 것은 성취감이 아닌 공허함뿐이었다.
나는 대체 무엇일까?
문제 해결이나 실장님에게 좋은 피드백을 받아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때부터 불안감을 해소하려고 더 열심히 일했다. 실장님과의 대화에서 더 많은 피드백을 받고, 매일 야근을 자처하며 그 공허함을 채우려 했다. '더 잘하면 달라질까? 더 노력하면 행복해질까? 그렇게 야근은 당연한 일이 되었고, 평범한 일상이 되었다. 취미도 잊고 오직 회사와 디자인에만 집중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더 이상 만족스럽지 않았다. 내가 꿈꾸던 '경력 있는 신입'이라는 타이틀조차 부담으로 느껴졌다.
어느 날 퇴근길, 꽉 막힌 버스 안에서 생각했다. '남들도 다 하는 일인데'라는 말은 더 이상 위안이 되지 않았다. 나의 야근과 피드백 요청, 실장님들의 디자인 스킬에 대한 집착이 결국 나를 행복하게 해주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잘한다는 평가만 남고, 내가 즐기고 싶었던 디자인에 대한 설렘은 사라진 기분이었다.
그제야 알았다. 경력 있는 신입사원이 되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었지만, 그 과정에서 내 행복은 어디에도 없었다. 혼자 중얼거렸다. "이제는 남들처럼 사는 게 아니라, 나답게 사는 게 맞는 걸지도 몰라."
하지만 디자인을 그만두면 나는 무엇을 해 먹고살지에 대한 해결책은 없었다. 그저 행복과 잘하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