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시절, 어렵던 교우 관계 탓에 눈물 젖은 도시락을 먹던 나에게.
나는 늘 주변인에 머무는 아이였다. 무리가 형성되어도 그 안에서 주류가 되지 못했다. 무리 안에 단짝에 생기면 그 옆의 주변인 2, 주변인 3 정도. '단짝 같은 건 바라지도 않으니 따돌림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생각했었다. 왜인지 늘 기운 좋고 당당하거나, 어른스럽거나 조금은 새침하거나 각자의 목소리를 잘 내는 친구들이 옆에 있었고. 나는 보통 약간 멍하고 흐린 눈으로 내 입은 닫은 채 웃는 역할로 머물렀다.
어쩌다 단짝이 될 기회가 찾아온다면 나는 늘 눈앞에서 놓치는 편이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단짝이 되어 본 적이 없으니 헛발질을 한 것인지. 아니면 나는 크게 매력적인 친구가 아니어서 상대가 일찌감치 나를 놓아준 건진 알 수 없다.
초등 5학년 경, 우리 반에서 제법 입김 센 여자아이랑 같은 무리를 이루었던 적이 있다. 왜였을까? 그 여자애는 무리 안의 아이들을 돌아가며 따돌렸다. 아직도 그의 마음은 이해를 할 수 없다. 재미였을까? 욕구불만의 한 표현이었을까? 그 아이도 어려 서툴러서 그랬던 거겠지? 마흔이 넘어서 조금은 넓어진 마음으로 포장해 보자.
어쨌든 돌고 돌아 내 차례가 왔고. 나보다 앞서 당했던 아이들이 그러했듯. 나는 설움의 시간을 견뎠다. 내 행동들이 비웃음을 샀고, 내가 가져오는 것들이 유희거리가 되었다. 수업 시간은 견딜만했고, 쉬는 시간은 꼬박꼬박 찾아오지만 그래도 짧으니 잠깐만 참으면 끝이 났지만 점심시간은 길기도 하고, 담임선생님도 부재중이라 여간 곤욕스러운 게 아니었다.
나를 따돌리는 그 무리가 아닌 새로운 무리를 찾아 나서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나는 그런 걸 해낼 수 있을 만큼 용기 있는 아이가 되지 못했다. 친화력이 좋거나 사교성이 좋은 성격도 아니었다. 또 그 아이의 입김이 거센 만큼 나를 끼워줬다가 괜한 불똥 맞을까 누구도 쉽게 같이 밥 먹자고 나에게 제의하지 못했다.
처음 한두 번은 호기롭게 또는 고고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도시락을 꺼내 먹어보려고 했다. 입안에 들어온 밥을 열심히 씹어야 하는데 아래턱을 오물 거리는 것마저도 천근만근이었다. 턱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게 마음이 막아섰다. 치아는 또 어떤가. 어금니는 입안의 밥알이 너무 버겁다고 파업을 선언했다. 혀는 무얼 했는가. 그는 입안의 어떤 반찬도 맛을 느끼지 못하겠다고 두 손 두 발을 들었다. 씹는 게 아니고 씹고 있는 척만 하다가 꿀꺽 삼켰다. 위장에라도 바로 잘 내려갔으면 좋으련만. 목구멍에서 음식들이 줄 맞춰 느릿느릿 내려갔다.
때로 나를 보며 아이들끼리 키득키득하기라도 할 때엔 목구멍이 뜨거워져 내려가던 음식들이 모두 일동차렷! 을 했다. 도무지 씹을 수도, 삼킬 수도 없으니 몇 번 시도 후 도시락 먹기를 포기했다.
하세가와 슈헤이의 <가슴이 콕콕>을 보니 그때의 내 심정이 되살아났다. 아직도 도시락 앞에서 밥을 씹지도 못하고, 삼키지도 못하고, 밥알만 세다가 목구멍 가득 찬 불타는 설움을 간신히 삼킨 내면 아이가 그곳에 있었다.
주인공은 리리와 일요일에 만나기로 했다. 동물원 앞에서 한참 동안 기다리지만 리리가 오지 않는다. 서로 생각했던 약속 장소가 달라서 약속이 어그러져 버린 것이다. 가까스로 리리와 통화가 되었지만 이미 잔뜩 화가 난 리리는 주인공에게 화를 내고 전화를 끊어버린다.
엉엉 울며 혼자 도시락을 먹는 주인공. 잠시 잠든 후 일어나 있었던 일을 삼촌에게 이야기한 주인공은 조언을 듣는다. 눈을 보고 사과하라고. (삼촌. 잘 알고 조언한 거 맞아요?) 삼촌을 바래다주는 길. 낮에 리리를 기다리던 동물원 앞을 지나는데 가슴이 콕콕거린다.
주인공은 리리에게 먼저 사과한다. 털털한 리리는 주인공의 사과를 쿨하게 받아넘기지만 제대로 사과해 주지 않는다. 나는 또 속상하다. 그래도 주인공은 또 리리와 새로운 약속을 잡는다. 더는 가슴이 콕콕거리지 않았을까?
내성적인 탓일까. 사회성이 부족한 탓일까. 소심한 탓일까. 예민한 탓일까. 어릴 땐 이렇게 가슴이 콕콕거릴 때가 참 많았다.
주인공은 용기를 내 사과를 했고 또 리리와의 약속을 잡았다. 리리와 새로운 시간을 보내는 주인공은 웃고 있다. 강인하고 유연하게 친구와의 관계를 겪어가는 아이들도 때론 울음 섞인 도시락을 먹곤 하는구나. 누구나 타인과의 관계가 어렵구나. 나만 그런 줄 알았어.
책에서 삼촌이 해준 조언 ‘눈을 똑바로 보고 사과하는 것’을 나에게 적용하자면,
그 친구에게 ‘나랑 잘 지내줄래? 내가 뭘 잘 못 했는진 모르겠지만 미안해.’하고 사과할 일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해야 할 일이었다.
너를 잘 다독여주지 못해 미안해. 끝까지 네 편이지 못했던 건 그 누구도 아니라 나. 스스로였구나. 꾸역꾸역 울음과 밥을 삼키던 나에게 삼켜내라고 윽박지른 건 나였구나.
편하게 먹어도 괜찮다고, 힘들면 먹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 다독여줬어야 했구나.
외로이 잘 견뎌줬어. 고마워. 또 가슴이 콕콕하는 날이 온다면 이번엔 꼭 지나치지 않고 너를 잘 다독일게.